김장겸 씨가 사장에서 해임된 후 MBC는 정상화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 지난 20일부터 라디오 프로그램이 정상 가동됐고, 예능과 드라마도 이번 주부터 방송을 재개한다. 하지만 뉴스와 일부 시사 프로그램이 ‘정상궤도’에 진입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김장겸 체제’를 지탱했던 간부들이 여전히 MBC에서 보직을 유지한 채 남아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경영진과 인사들이 진용을 갖추기 전까지 MBC 뉴스와 시사는 ‘이명박근혜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얘기다.

동료 언론인을 해고하고 징계의 칼날을 휘두르는데 동조·침묵했던 간부들은 모든 보직을 내려놓고 스스로 물러나는 게 온당한 태도다. 그것이 수년 동안 마이크를 강제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던, 제작현장에서 떠나 있을 수밖에 없었던 동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직을 유지한 일부 간부들은 이런 의사가 없는 것 같다.

▲ 김장겸 전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김장겸 전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MBC 관계자에 따르면 시사제작국장은 최근 청경을 불러 경호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청경들이 사무실에 올라왔고 이 가운데 한 명이 시사제작국장실 앞에서 방호 업무를 했다고 한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에서 항의해 청경은 철수했지만 당시 현장 사진이 SNS에 공개되면서 비난 여론이 제기됐다.

청경을 불러 방호업무를 요청했을 정도면 그만큼 급박한 상황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파업 종료 후 업무에 복귀한 MBC본부 조합원들은 방송 정상화를 위해 논의하고 고민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사제작국장은 왜 청경을 불렀던 걸까. 시사제작국 PD들이 ‘테러리스트’라도 되는 줄 알았던 걸까. 물러나야 할 인사가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황당한 행태를 보이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사장 대행을 맡고 있는 최기화 MBC 기획본부장 역시 반성과는 거리가 먼 인사다. 그는 파업 종료 후 첫 방송될 예정이던 MBC라디오 ‘시선집중’을 음악방송으로 대체할 것을 요구했다. 최 본부장은 이미 사표를 제출한 백종문 전 부사장과 함께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피의자 신분이다. 이런 인사가 제작진이 라디오국장, 편성제작본부장 등과 논의를 거쳐 결정한 사안을 번복하려 했다. 지난날 과오에 대해 참회하면서 물러나야 할 인사가 마지막까지 방송을 파행으로 끌고 가려 했다. 말문이 막힌다. 그는 취재차 전화를 걸었던 본지 기자에게 쌍욕과 막말을 해놓고도 아직까지 사과 한 마디 하지 않고 있다. 최소한의 예의도 없고, 최소한의 반성도 없다.

이진숙 대전MBC 사장도 염치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김장겸 사장이 해임된 이후 MBC본부 조합원들은 파업을 풀고 대부분 업무에 복귀했다. 하지만 언론노조 MBC본부 대전지부(지부장 이한신)는 지금까지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대전MBC지부는 21일 임시총회를 열고 27일 오전 9시부로 파업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작거부는 계속 이어갈 방침이다.

▲ 이진숙 대전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이진숙 대전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대전MBC지부가 이진숙 사장 퇴진 투쟁에 돌입한 것은 지난 5월부터다. 무려 7개월 가까이 사장 퇴진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대전MBC 보직자 대부분이 보직을 내려놓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하지만 이진숙 사장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내부 구성원은 물론 지역시민단체들까지 이 사장 퇴진 요구에 가세했지만 자신의 거취에 대한 입장 표명은 물론 최소한의 반성이나 유감 표명도 없다.

이 사장은 언론노조 MBC본부에 의해 국정원법 위반, 업무방해죄, 방송법 위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당한 상태다. 다수 구성원들로부터 퇴진 요구를 당하면서도 7개월 가까이 사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이해하기 어렵다. 구성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스스로 물러나는 게 온당한 태도일 것이다. 하지만 이 사장은 그럴 의사가 없어 보인다. 반성과 참회의 기회를 줘도 그것을 거부한다면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새로운 MBC 경영진은 프로그램 정상화와 함께 이들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둬야 할 것이다. MBC에는 또 다른 ‘최기화·이진숙’이 여전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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