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MB 특보’ 출신 김인규 전 KBS 사장을 포함한 KBS 경영진은 ‘수신료 인상’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앞서 미디어오늘은 김 전 사장 재직 시절을 기록한 KBS 임원회의록을 입수해 정황을 세세하게 보도했다.

김 전 사장은 종합편성채널 개국을 앞두고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등을 만나 우호적인 보도 협조를 요구했고 자사 기자들을 동원해 전방위적 국회 로비에 나섰다.

김 전 사장이 스스로 별명을 ‘천 원’이라고 칭할 정도로 KBS는 KBS 2TV 광고를 기존대로 유지한 채 수신료를 월 2500원에서 3500원으로 올리는 데 사활을 걸었다. 종편 개국을 앞둔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 신문 입장에선 KBS 광고가 줄어야 미래 종편의 ‘먹거리’가 풍족해진다는 점에서 KBS와 각을 세우던 상황이었다.

지금은 고인인 이준삼 전 KBS 정책기획본부장이 김 전 사장 재임시기 동안 작성한 3년치(2009년 11월~2012년 11월) KBS 임원회의록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수신료 인상을 논의하는 데 MB 정부 핵심 실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언급되기 때문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2013년 2월6일 청와대에서 열린 디지털방송 전환 유공자 포상에서 김인규 전 KBS 사장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이명박 대통령이 2013년 2월6일 청와대에서 열린 디지털방송 전환 유공자 포상에서 김인규 전 KBS 사장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KBS 임원들은 2010년 12월1일 오후 2시 수신료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 전 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안상수(당시 한나라당 대표) 전화, 일요일 당정청 9인 회의에서 (KBS 수신료에 대해) 결정한다더라. 안상수, 김무성, 임태희(당시 대통령실장), 정무수석(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 총리(김황식 국무총리) 등. 결론 나야 방통위 움직일 것이다. 정OO이가 움직인다. 광고 1500억 원을 뺄 생각이다. 발표는 못한다. KBS가 긴축 재정을 해달라고 의견을 달아주면 국회에 9일까지 처리해달라는 것이다. 송도균·이경자(각각 방통위 상임위원, 부위원장), 김준상(당시 방통위 방송정책국장)한테 전화했고 임태희 실장도 도와준다더라. 9인 명단 철저히 대비하라.”

MB 정권의 당정청 회의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하자는 이야기다. 국민을 설득하는 대신 정치권과의 협상을 통해 수신료 인상안을 통과시키려는 움직임은 김 전 사장 임기 동안 계속됐다. 

이어 김 전 사장은 “(KBS) 논리는 이번에 올리지 못하면 광고를 1년에 100억 이상씩 늘려야 한다는 것”이라며 “핵심은 지금은 (방통위를 담당하는 KBS) 문화부이고 다음이 정치부”라고 말했다. KBS 기자들 역할이 KBS 수신료 인상 국면에서 중요하다는 것.

원세훈 전 원장이 언급되는 부분은 이 다음이다. 김 전 사장은 “이윤성, 허원제, 류근찬을 만났다”며 “국정원장이 (KBS) 광고 못 줄여서 조중동 튄다더라”고 말했다. 먼저 이윤성(한나라당)·허원제(한나라당)·류근찬(자유선진당)은 KBS 기자 출신 정치인들이다. 

원세훈 전 원장이 KBS 수신료에 대한 논평을 KBS 출신 정치인들에게 직접 전달했는지 김 전 사장이 따로 들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또 단순한 원 전 원장의 논평 수준인지 수신료를 두고 KBS와 조율이 있었는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 다만 원 전 원장이 국내 정치 영역인 KBS 수신료와 광고, 그리고 조중동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정황으로 보인다. 

미디어오늘은 김 전 사장의 생각과 발언 맥락을 확인하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지만 김 전 사장은 일체 답변하지 않았다. 

국정원과 KBS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사건은 이보다 앞서 2010년 1월에도 있었다.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 등이 조계사에서 개최하려던 ‘사랑의 라면탑 쌓기’ 행사가 국정원이 조계사에 전화를 걸어온 뒤 전격적으로 취소된 것이다.

당시 시민단체 측은 행사기간 중 KBS 수신료 거부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점을 의식해 국정원이 조계사에 압력을 넣었다고 주장했고 실제 조계사 한 관계자는 국정원과 KBS 대외협력국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둘다 (KBS 수신료 거부에) 염려를 표시하면서 (행사를) 취소해줬으면 하는 뉘앙스였다”는 증언이었다.

▲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진=연합뉴스
▲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원세훈 전 원장과 김 전 사장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고 한다. 최근 김 전 사장을 만난 한 야당 의원에 따르면, 김 전 사장은 “MB 주변에 왜 원세훈 같은 사람이 있느냐”고 원 전 원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김 전 사장은 MB 정부 일부 핵심 인사들과 불편한 관계였다. 김 전 사장이 취임 직후인 2009년 11월 백운기 KBS 기자를 비서실장에 임명하자, MB 정부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호남 인사를 왜 뽑았느냐”고 따졌고 이에 김 전 사장이 “이런 것(KBS 인사) 갖고 또 이러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취지로 화를 냈다는 것.

2011년 9월27일 MB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 및 홍보기획비서관실 등에서 작성했을 것(당시 홍보수석은 김두우 전 수석)으로 추정되는 문건 ‘KBS 관련 검토 사항’을 보면, 청와대는 KBS 상황에 대해 “국회(민주당 최고회의) 도청 의혹 사건과 이로 인한 수신료 인상 추진 지지부진으로 김인규 사장 리더십 동력 상실과 입지 약화”라고 분석한 뒤 “김 사장은 ‘사장 평가’를 주장하는 노조 눈치보기에 급급”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 1월25일자 임원회의록을 보면, MB 청와대가 KBS 관련 소송을 관리한 정황이 기록돼 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KBS 새노조)는 채용 비리 등에 연루된 이길영 KBS 감사 임명을 문제 삼고 2010년 1월19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상대로 ‘이길영 감사 임명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KBS 임원회의록을 보면 이 감사는 그해 1월25일 회의에서 “김영호 이사(당시 KBS 이사), 엄경철(당시 새노조위원장) 등이 ‘임명취소청구소송’을 냈다”며 “사장이 어려운 시기에 면목 없다. 이미 정리된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와대), 민정(민정수석실), 사정(사정기관을 의미하는 듯)에서 면밀히 검토했다”며 “이사회의 공격이나 특정인의 공격이라고 보지 않는다. (중략) 법률적 테러이자 정치적 테러다. 재판 결과가 나오면 정확히 설명 드리겠다. 개인이 아닌 KBS 이사와 회사서 인정하지 않는 노조(새노조)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다니”라고 개탄했다.

KBS 감사 임명 취소소송을 MB 청와대 차원에서 검토해봤다는 내용으로, KBS와 청와대 간 공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행정법원은 2010년 7월15일 새노조 등의 청구를 ‘각하’(김 이사 청구에 대해서는 ‘기각’)하며 방통위와 이길영 전 감사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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