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21일 서울 상암동 MBC사옥 1층 로비에 걸려있던 ‘음수사원 굴정지인’(물을 마실 때에는 그 근원을 생각하고,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한다) 휘호를 덮어버린 현수막의 문구다. 이 문구 위에는 세월호 참사 추모 리본이 그려져 있다. ‘음수사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수장학회에 내린 휘호였으며, 안광한 사장 재임 시절 MBC가 상암동으로 이전하면서 로비에 내걸린 김재철 체제의 상징 같은 문구였다. MBC 한 시사교양PD는 이날의 퍼포먼스를 두고 “권력의 MBC에서 국민의 MBC로 돌아가겠다는 다짐”이라고 말했다.
MBC정상화의 첫 신호는 ‘시선집중’이었다. 77일 만에 방송을 재개한 ‘시선집중’은 신동호 진행자가 하차한 가운데 ‘다시! 만나도 좋은 친구가 되겠습니다’란 캐치프레이즈가 담긴 현수막을 걸고 방송에 나섰다. 첫 아이템은 MBC의 금기어와 같았던 ‘세월호’였다. ‘굿모닝FM 노홍철입니다’ 진행자 노홍철씨는 20일 방송에서 “제자리로 돌아온 멋진 사람들이 오늘따라 귀하게 느껴진다”며 소감을 밝혔다. 파업 이후 음악만 송출했던 라디오는 20일부터 대부분 정상화됐다.
업무복귀에 나선 기자들은 팀을 꾸려 지난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보도 참사를 기록하는 백서작업에 나선 상황이며 조만간 작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한 편에선 특별취재팀을 꾸려 MBC보도국이 정상화 됐을 때에 맞춰 준비된 콘텐츠를 내놓기 위한 사전 취재에 돌입했다. 편성부문 PD들은 김장겸 사장이 내걸었던 ‘품격있는 젊은 방송’ 태그를 16일부터 내렸다. 현재는 뉴스를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에서 이 태그를 볼 수 없다.
‘PD수첩’의 경우 12월 중순 방송을 목표로 PD들이 취재 및 제작에 돌입한 상황으로, 새 사장이 온 뒤 곧바로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내보이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유배지 폐쇄 선언으로 ‘PD수첩’에 돌아온 박건식·김재영 PD도 아이템 준비에 한창이다. PD들은 조창호 시사제작국장의 업무 협의는 거부하고 있다. 조창호 국장은 자신의 방에 경비 인력을 배치했다가 사규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철수시키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21일 발행한 언론노조 MBC본부 노보에 따르면 가장 빠르게 정상화가 진행된 곳은 경영 부문이다. 대부분의 간부들이 경영에서 손을 뗀 상태로, 홍보국의 경우 실무자들이 업무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영상·미술 부문도 국장이 기본적 행정 처리만 하고 모든 업무를 실무자들에 위임한 상황이다. 영상 조합원들은 정상화국면이 올 때까지 보도·시사부문 불공정 프로그램에 대한 영상 지원은 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기술 부문의 경우 ‘PD수첩’과 ‘100분토론’ 등에 대한 기술 지원을 거부하고 있다. MBC 아나운서들은 신동호 아나운서국장의 부당노동행위 혐의에 대한 법적 대응을 이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