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기사에 대해 양상우 한겨레 사장이 기사 수정을 요청하는 등 편집권 침해 논란이 벌어진 가운데 한겨레21 기자들이 “경영진 부탁이 LG쪽 해명과 일치하다”며 다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해당 기사는 지난 6일자로 나온 “박근혜 때도 기업 보수단체 거액 지원 계속돼”, “청(청와대)·국(국정원)·대(대기업) 삼위일체로 지원”이라는 제목의 한겨레21 1186호 표지이야기 기사 2건이다. 표지이야기는 잡지 겉표지에 실린 기사로, 한 주를 대표하는 기사로 평가할 수 있다.

광고담당 임원, 취재기자 만나

한겨레21 기자들(16명)은 20일 한겨레 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메일을 보내 “광고국 임원이 취재 기자를 직접 접촉해 해당 기사와 삼성 광고 중단 등을 언급하며 ‘LG는 고마운 기업’이라고 말했다”며 “한겨레21 기자들과 편집장이 편집회의를 거쳐 표지기사로 최종 결정한 것을 (경영진이) 광고주 쪽 말을 듣고 번복할 것을 요구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담당 기자들은 이들의 말이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LG쪽 해명 및 ‘부탁’과 정확하게 일치해 깜짝 놀라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 지난 6일 한겨레 백면(28면) 광고
▲ 지난 6일 한겨레 백면(28면) 광고

한겨레21 해당 호가 나온 지난 6일자 한겨레 백면(28면)에는 LG전자 전면 광고가 실렸다. 김종구 편집인은 지난 1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LG 임원 만남 사실은 인정했지만 “광고 얘긴 모른다”고 말했다. 이날 양 사장 측 관계자 역시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최대 광고주인 삼성의 눈치를 보지 않는데 LG 눈치를 보겠느냐”며 “관계없는 일들”이라고 반박했다.

한겨레21 취재 기자를 만났던 광고 담당 임원은 2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취재기자만 만난 건 아니고 (취재기자의) 팀장을 함께 만났다”며 “한겨레가 삼성에 광고를 제대로 못 받고 있는 등 임원으로서 회사의 전반적인 상황을 설명하면서 다른 곳(광고주)들은 고마운 상황이라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팩트가 왜곡되면 (LG쪽에서) 섭섭해 하니까 충분히 얘기를 들어주는 게 좋겠다고 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편집인, LG 임원 만난 사실 처음엔 부인

김 편집인이 양 사장과 논의를 거친 뒤 고경태 출판국장(한겨레21 편집인)을 통해 길윤형 한겨레21 편집장에게 해당 기사를 표지이야기에서 뺄 것을 요구한 시점은 아직 기사가 작성되기 전인 지난 1일이었다. 이날은 LG 임원이 취재 중인 한겨레21 기사와 관련, 한겨레를 방문해 김 편집인에게 항의 내지 부탁을 하고 돌아간 날이다.

▲ 주간지 한겨레21 1186호 표지
▲ 주간지 한겨레21 1186호 표지

한겨레21 기자들에 따르면 김 편집인은 한겨레21 구성원들과 토론에서 “LG로부터 연락을 받은 게 아니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후 LG 임원을 통해 (기사 발제) 사실을 인지했다고 입장을 바꿨다. LG 임원의 한겨레 방문 이후 전례 없이 한겨레 사장까지 기사 ‘퀄리티’를 지적했고 김 편집인은 LG 임원과 만난 사실에 대해 말을 바꾼 것이다.

한겨레21 기자들은 “현 경영진은 그동안 단 한 번도 한겨레21 기사 품질에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다”며 “경영진은 유독 광고주가 강하게 어필한 이번 기사에 대해서만 품질을 문제 삼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편집인·출판국장, 기사 퀄리티 문제 지적

지난 17일 김 편집인과 고 출판국장은 각각 입장문을 냈다. 해당 기사가 표지이야기 감으로 적절하지 않았고, 콘텐츠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양 사장이 기사에 문제제기 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 양상우 한겨레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양상우 한겨레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김 편집인은 입장문을 통해 “박근혜 정부 때 권력의 종용에 따라 기업들이 보수단체를 지원했다는 것은 이미 구문 중에 구문”이라며 “(LG 기사 초고를 읽고) 기사 발제 계획을 읽어보고 아무래도 표지이야기로는 기사 함량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은 불행히도 적중했다”고 했다.

한겨레21 기자들은 “보수단체 지원 관련해 LG가 등장한 건 처음”이라며 “편집인이 직접 말했듯 LG 상무가 ‘박근혜 정권 시절 기업이 보수단체를 지원했다는 것은 세상이 아는 일’이라면서 정당성을 설파하려 했다면 이 기사로 LG가 수사 대상이 될까 우려한 홍보담당자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겨레21 기자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보수단체 지원을 크게 세 갈래로 나눴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기업과 보수단체를 국정원이 짝 지워주는 ‘매칭 사업’, 박근혜 정부 시절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통한 지원, 이번 기사와 관련한 ‘직접 지원’ 등이다. ‘직접 지원’ 형태의 수사가 최근 본격화했고, 이번 기사가 구체적인 물증을 입수한 것이기 때문에 경영진의 주장처럼 ‘함량미달기사’일 수 없다는 게 기자들의 입장이다.

한겨레21 기자들은 “과거 MBC·KBS에서 정치권력의 문제를 애써 취재해오면 ‘새롭지 않다, 품질을 높이기 위해 더 취재해 와라’ 등 이유로 보류 조치해온 것이 언론 장악의 가장 큰 황폐함이라고 알고 있다”며 “LG 취재에 대한 김 편집인 지시는 놀랍게도 그 대목과 닮아있다”고 했다.

고 출판국장은 입장문에서 “편집권 침해 논란을 넘어 더 치열하게 잡지의 생존과 미래를 고민하고 스스로를 엄격히 돌아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며 “기자들의 첫 성명서에 이러한 내용이 담기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장은 기사 출고 전에도 특별한 경우엔 콘텐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김 편집인은 “한겨레21 기자들은 출판국장의 의견과 판단에 귀를 기울였나”라며 “팩트가 틀린 기사, 앞뒤 논리가 맞지 않는 기사를 써놓고 편집권 독립을 내세워 누구의 권유에도 귀를 막고 그대로 기사를 내보내는 것이 과연 한겨레 편집권 독립의 실상인가”라고 비판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20일 성명을 통해 “한겨레21 사태의 본질은 LG 임원 만난 후 표지 교체를 지시한 것”이라며 “문제는 기사 품질이 아니라 경영진의 함량 미달”이라고 비판했다.

언론연대는 “한겨레21 기자들의 ‘편집권 침해 사과 및 재발방지’ 요구는 당연하다”며 “한겨레의 비극은 경영진들이 스스로 한 잘못된 행동에 반성하지 않는 데에서 출발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한겨레 양상우 대표이사를 비롯한 경영진은 이제라도 사태의 원인을 직시해야 한다”며 “책임은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된 ‘편집권 침해’에 대한 진정어린 사과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관련기사 : 한겨레21 ‘LG 영수증 기사’ 사장이 직접 수정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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