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이 직선제 실시 후 두 번째 선거에 돌입한 지 2주가 지났다. 공직 선거를 제외하고는 전국적으로 펼쳐지는 최대 규모의 선거다. 민주노총 입장에서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 민주노총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밝힌 선거인원수는 79만 6,882명인데, 이는 직선 1기 선거가 있었던 2014년 11월 기준 67만 1,270명에 비해 12만 5천 명이 늘어난 숫자다.

주목받지 못하는 80만 선거

헌데 이번 민주노총 선거는 언론의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기성정당들이 22만 명(자유한국당), 7만 명(바른정당), 5만 7천 명(국민의당) 등의 숫자로 미디어의 압도적 주목을 받은 것을 상기하면, 80만 규모 선거에 대한 지독한 무관심이 의아할 수밖에 없다. 지난 19일 오후 6시 치러진 국민TV 주관 생방송 토론회 동시접속자는 최대 260여 명에 그쳤다.

물론 이는 후보들 간 쟁점이 또렷하게 드러나지 않은 탓도 있고, 그간 민주노총이 미디어와의 협업을 전략적으로 해오지 못한 탓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돌아봐야할 것은 이 현상이 오늘날 민주노총이 점하는 위치에 대한 방증이라는 점이다. 영향력 없는 조직이라 할 순 없지만, 시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신뢰받는 조직이 되진 못 했다는 점을 성찰해야 한다.

80만 명 규모의 선거가 이렇게 진행돼선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선 직선제의 취지를 살릴 수 없고, 깜깜이 선거 국면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조합원들은 투표 당일이 되어서야 단지 포스터에 담긴 후보 사진의 인상과 슬로건만 보고 투표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번 선거는 1년 전 있었던 촛불 항쟁과 정권 교체 이후에 치러진다는 점에서 민주노총에게나, 한국 사회에게나 매우 중요하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는 ‘노동 존중 사회’를 표방한 바 있고, ‘소득주도성장론’에 근거해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등 1997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이후 20년 간 네 정권이 보인 모습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 간 민주노총 운영을 책임질 집행부를 선출하는 만큼, 향후 문재인 정부와의 관계 설정 및 노동 체제 혁신에 있어서 어떻게 방향을 잡느냐가 중요한 시점이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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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감자, ‘사회적 대화’

이번 선거에서 가장 먼저 이슈로 드러난 쟁점은 ‘사회적 대화’다. 지난 15일 김명환 후보는 기존 한국노총이 제안한 8자 회의(노사 대표 4명·정부 대표 2명·대통령·노사정위원장 참여)에서 노사정위원장이 아닌 국회 대표자를 포함시키는 ‘신8자 회의’를 제안했다. 불과 며칠 전 제주도 유세에서 “노사정위 참가는 절대 않겠다”고 말한 것과는 꽤 다른 뉘앙스다.

이에 대해 이호동 후보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기조와 맞지 않는다”며 “사회적 대화 이전에 노정대화와 노사교섭·산별교섭이 제대로 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사회적 대화에 있어서 가장 강하게 거부감을 드러냈던 이호동 후보는 출마 직전 “사회적 대타협은 대화·합의·타협으로 위장한 노동자 양보의 강제”라고 주장했다.

기호3번 윤해모 후보는 기존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선본을 구성한 ‘사회연대노동포럼’은 현 문성현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이 초대 대표를 맡았었고, 윤해모 후보는 대선 당시 문재인 선거운동도 했었다. 다만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기존의 노사정위원회가 정부와 기업에 종속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비판에 대해 별 다른 표명이 없다.

기호4번 조상수 후보는 기존 노사정위원회가 노동유연화를 추진해온 종속적 기구였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노정 교섭을 정례화하고 산별교섭을 법제화 하는 가운데, 앞으로 새로운 대화기구를 만든다면 구성 과정에 적극 개입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대화기구 구성 전이라도 노동시간 단축과 청년고용 창출 등 사안별로 노사정 대화를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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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정치세력화’

정치세력화는 각 후보들이 가장 큰 차이를 드러내는 쟁점이다. 이는 곧 각 후보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1번 김명환 후보는 “제 진보정당과 전략적 동반관계 구축을 통해 실질적 진보대통합 노력”을 주장한다. 다시 말해, 진보정당 통합을 재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올초 대의원대회에서 비슷한 안건이 올라갔지만, 대의원 과반수는 이를 부결시켰다.

반면 4번 조상수 후보는 기존의 정치세력화 논의를 비판하며 새롭게 사회세력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진보정당 통합 재추진 노력’은 조급한 전략이라고 비판한다. 그간 무리한 정치세력화 추진이 민주노총의 내부 갈등과 역량만 소모시켜왔으니, 민주노총이 미조직 노동자들을 포함한 시민들로부터 인정·신뢰받는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번 이호동 후보와 3번 윤해모 후보는 ‘정치세력화’에 대해 구체적 언급이 없다. 가정컨대 윤해모 후보는 친민주당 성향이라 평가받는 만큼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부정적일 것으로 보인다. 이호동 후보의 경우, “국회의원 몇 명이 우리를 대신해 이것을(노동3권 전면 쟁취) 해줄 순 없다”고 주장한다.

강조점 다른 ‘노조 할 권리’

‘노조 할 권리’를 강화하겠다는 것은 모든 후보들이 강조하는 이슈다. 따라서 포스터나 공약집만 봐서는 차별성이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역량에 대한 평가나 실현 방안에 있어선 조금씩 차이를 드러낸다. 정책자료집에 적힌 공약 순서로 따지자면 1번, 3번, 4번은 ‘노조 할 권리’를 가장 먼저 강조한다.

1번은 “노동기본권 혁명 : 노동기본권 전면 보장”

3번은 “노동3권 강화 3번이 주도합니다”

4번은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노조하기 좋은 나라”를 내걸고 있다.

2번의 경우 “노조 간부의 기간 대오화”를 가장 먼저 내세운다. 노동기본권 강화 항목에서도 세부 방안을 제시하기보단 “실질적 총파업을 조직할 수 있는 힘”을 강조하고 있다.

지속, 폐기, 변화로 나뉜 사회연대 공약

최근 민주노총에 대해 ‘귀족노조’라는 비판이 있다. 이는 노동자 간 임금 격차와 갈등이 심화된 현 상황의 반영이기도 하다. 정규직-비정규직, 조직-미조직, 남성-여성 노동자 간 격차를 좁히고 내재된 갈등을 해소하지 않으면, 노동운동이 주구장창 외치는 ‘단결’이란 구호는 무색할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명쾌한 문제가 아니다. 노조 내외의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노동운동의 지향인 ‘계급적인 단결’을 어떻게 이룰 것이냐의 문제는 민주노총이 다루는 거의 모든 사안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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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1번 김명환 후보는 이전 노동운동의 연대 투쟁 노선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민중전선체의 구축 △민족통일 운동 복원 △시민사회운동과 연대 강화 △민주민족연대전선 확대강화 등 과거 NL계열의 투쟁 전략을 계승하고 있는 셈이다.

기호2번 이호동 후보는 “노동자-민중연대 강화”를 목표로 △노동사회단체-민중단체들이 함께하는 상설공동투쟁체 추진 △노동자-대학생 연대 강화 등을 제시한다. 이 역시 투쟁 방식에 초점을 맞춘 전략이라 할 수 있으며, 최근 지적되는 노동시장 양극화 등에 대한 전략적 해법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기호3번 윤해모 후보는 자신을 ‘사회연대 선본’이라 자임한다.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노동자 연대를 위한 사회연대 임금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호동 후보를 추대한 구 좌파 진영은 “정규직 양보론”이라고 비판해왔다.

기호4번 조상수 후보는 ‘연대노총’을 만들겠다는 걸 자신의 정체성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노동운동의 지평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금 격차 등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에 대해서도 ‘하후상박 임금 인상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각 후보가 갖는 장점과 단점

당장 어떤 후보에 표를 던질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는 쉽지 않다. 따라서 출신 산별노조나 유명세, 어떤 현장 조직이 뒷받침하느냐 등이 득표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언론들이 이번 선거가 각 후보들 간 큰 우위를 점치기 어려운 가운데 ‘조직력’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실제 선거 과정에서는 1번 김명환 후보가 다소 앞서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철도노조 파업에서 얻은 유명세가 한 몫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보 스스로도 이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정책이나 조직력보다 ‘인물’이 결과를 좌우한다는 평가를 얻는 직선제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기호2번 이호동 후보는 슬로건(‘또 한 번의 승리를!’)에서 알 수 있듯 지난 직선 1기 집행부의 연장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한상균 위원장에 비해 사회적으로 덜 알려졌고, 발전 파업이 15년이나 지났다는 점 등이 다르다.

기호3번 윤해모 후보는 현대차지부 출신이라는 점이 되려 강점이자 약점이다. 현대차지부는 단위 사업장으론 최대 조직(5만1천 명)이지만, 오늘날 민주노총을 사회적으로 표상하기엔 부족하지 않냐는 시각도 있다. 또, 실리주의를 지나치게 쫓다가 노동조합 운동의 자주성과 원칙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기호4번 조상수 후보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편이다. 그런 점이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임기 3년 간 조합원수를 15만에서 19만 명으로 늘리는 등 전략조직화 사업을 강화한 점, 지난해 성과연봉제 저지 파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지금 민주노총에 어떤 리더가 필요한가

박근혜 정부 시기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은 매우 엄혹했다. 야당은 꽤 오래 맥을 못 췄고 양극화와 노조에 대한 탄압, 평범한 사람들의 ‘바닥을 향한 경주’가 심화됐다. 정부의 노동개악 등에 맞서 강하게 저항하는 리더십이 필요했다. 3년 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조직세와 무관하게 한상균을 택한 것은 이런 시대적·조직적 조건을 배경으로 한다.

앞으로 3년은 어떨까. 세계 경제는 일시적 안정을 되찾았지만 전문가들은 이 호황이 앞으로 지속되진 않을 것이라 분석한다. 자본의 유동성을 방어할 장치를 해체해버려 세계적 금융위기에 취약하다. 정치적으로는 노동자운동에게 ‘기회이자 위기’다.

문재인 정부 초중기 다소 우호적인 조건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ILO 미비준 협약 체결과 비정규직 정규직화, ‘노조하기 좋은 나라’ 등을 약속했던 만큼 이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교섭하고 압박해야 한다. 청와대와 여당은 2020년 총선까지 지지율 고공행진을 지키는 게 절대적 과제인 만큼, 이를 현명하게 관철시키는 여우의 지혜가 필요하다.

또한 민주노총은 정규직들만 위한다는 비판을 극복하고 ‘다음 세대’의 전망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보다 노동자계급 전체를 대표하는 방향으로 혁신을 거듭해야 한다. 지난 1년 간 여러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이 생겼다.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파리바게뜨, 현대모비스, SK엔카, 삼성웰스토리, 삼성엔지니어링, 에스원 등 다양하다.

이렇게 가입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30대의 젊은 조합원이거나, 삼성 등 극심한 ‘무노조’ 방침을 고수하던 사업장에서 일한다. 민주노총으로선 새로운 노동자들인 셈이다. 민주노총 차원에서보면 휴업 상태나 다름없었던 ‘전략조직화 사업’이 다시 강조되는 이유다.

이런 점들을 고려했을 때, 이후 3년의 민주노총은 조직적 비전과 전략을 효과적으로 잘 구사할 수 있으며, 실제 그런 방향에서 성과를 만들어온 리더가 필요하다. 어쩌면 직선제 도입으로 출범한 지난 3년보다 앞으로의 3년이 이후 민주노조 운동의 향배를 결정짓는 중대한 분기점인지도 모른다. 언론의 주목과 조합원들의 관심을 통해 이 선거가 보다 현명하게 치러지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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