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KBS가 남았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들은 방송 공정성 회복을 위한 파업에 돌입한 지 75일째인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앞에서 17번째 ‘불금파티’ 집회를 열고 끝장투쟁을 예고했다. 지난 13일 김장겸씨가 MBC 사장직에서 해임되면서 ‘돌마고(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였던 집회 이름도 이제 ‘돌리고(돌아오라 리셋 고봉순)’가 됐다.

비가 내려 궂은 날씨에도 300여명의 시민들이 두툼한 패딩 점퍼 등을 입고 전국언론노조 KBS본부·MBC본부 조합원들과 함께 고대영 KBS 사장 퇴진과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가수 박원씨와 정인씨, 밴드 데이브레이크도 무대에 올라 분위기를 띄웠다.

▲ 지난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돌리고 불금파티'에서 박대기 KBS 기자를 비롯한 각 직종 대표자 7명이 '댓글 읽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 지난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돌리고 불금파티'에서 박대기 KBS 기자를 비롯한 각 직종 대표자 7명이 '댓글 읽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이날 행사에서는 박대기 KBS 기자를 비롯해 KBS 각 직종별 대표자 7명이 뉴스와 페이스북 등에 달린 댓글 중 가장 아픈 댓글을 꼽고 답을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박 기자가 고른 댓글은 ‘기계적 중립 좀 하지 마라, 중립 방송이 아니라 그냥 좀비 방송이다’였다. 그는 “너무나 정확한 비판이어서 가슴이 아팠다”며 “답글을 단다면 ‘진정한 중립은 진실 보도’라고 달겠다”고 말했다.

“가로수에 이파리가 달랑 두 개 붙어 있는 게 보입니다. 하나는 이인호 KBS 이사장이고 하나는 고대영 KBS 사장인 것 같습니다.” 연대 발언을 위해 무대로 올라온 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장이 이렇게 말하자 박수가 이어졌다. SBS노사는 사장 임명동의제를 쟁취하며 지상파3사 중 방송정상화 움직임에 가장 앞서있다. 

앞서 ‘파업 승리’를 이뤄낸 언론노조 MBC본부 집행부 10명도 참석해 응원의 말을 전했다. 김연국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함께 싸울 수 있어서 외롭지 않았고 함께 싸울 수 있어서 행복했다”는 말로 발언을 시작했다. 그는 “지금까지 라이벌 KBS가 있었기에 MBC도 좋은 방송을 만들 수 있었다”며 “잠시 먼저 올라가지만 곧 승리하실 거라는 것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MBC 조합원들은 특별한 선물도 전했다. 지난 13일 방송문화진흥회에서 김장겸씨의 해임 결의안이 통과되던 날 그들이 집회를 벌이면서 깔고 앉았던 스티로폼 방석이다. 김민식 MBC PD는 “수능 때도 성적 좋은 선배들이 깔고 앉은 방석을 후배들이 물려 받고 기운을 받아가지 않았느냐”며 “‘사장 한번 쫓아내봤니?’ 방석을 전달하겠다”고 말해 분위기를 띄웠다. 

▲ 지난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돌리고 불금파티'에서 김연국 언론노조 MBC본부장이 집행부와 함께 나와 말하고 있다.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 지난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돌리고 불금파티'에서 김연국 언론노조 MBC본부장이 집행부와 함께 나와 말하고 있다.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백승주 KBS 아나운서와 함께 진행을 맡은 이광용 아나운서는 “MBC 동지들이 어떻게 싸우고 어떤 고통의 시간 보냈는지 잘 알기에 먼저 가서 기다리라는 얘기를 할 수 있다”며 “승리의 기운을 한번 나눠보자”고 화답했다.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도 이날 현장에 등장해 파업 조합원을 위한 선물로 ‘바람떡’을 전달했다. 황 칼럼니스트는 “떡에 공기가 들어 있어서 ‘바람떡’이라고 하는데 공기가 빠지면 모양이 개떡처럼 된다”며 “방송도 공기나 바람 같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지난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돌리고 불금파티'에서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가 백승주 KBS 아나운서에게 바람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 지난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돌리고 불금파티'에서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가 백승주 KBS 아나운서에게 바람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지금 대한민국이 모양을 잘 잡아가고 있긴 한데, 공영방송 KBS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바람 빠진 개떡같아요. 앞으로 바람처럼 일어나서 다시 제 역할을 해주길 바랍니다.” 그가 성재호 KBS본부장에게 떡을 전달하며 말했다.

성재호 본부장은 “외견상으로 우리가 혼자 외롭게 싸우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며 “오늘 MBC 동지들의 기운을 받았고 또 시민분들이 이렇게 함께 해주신다면 저희가 곧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KBS경영진은 최근 포항 지진과 관련해 입장을 내고 “KBS의 취재진 상당수가 제작현장을 떠나 있어 국민들 볼 면목이 없다”고 밝힌 뒤 “KBS는 재난방송을 충실히 수행할 의무가 있다”면서 노조를 향해 재난주관방송사로서의 역할을 다 하기 위해서라도 조속히 업무에 복귀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KBS본부 측은 “국민여러분께 송구할 따름이다”라고 밝히면서 “재난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측의 태도에 유감이다. 재난방송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사측은 어떤 대화의 노력을 했느냐”며 날을 세웠다. 이들은 고대영 사장과 이인호 KBS이사장이 즉각 물러난다면 바로 업무에 복귀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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