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입니다.” “저도 문과입니다.”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구글캠퍼스 서울에서 열린 데이터저널리즘 코리아 컨퍼런스에서 무대에 오른 기자들의 ‘필수 멘트’였다. 이날 행사는 미디어오늘, 구글코리아,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가 공동주관했다.

초등학생들도 ‘코딩’을 배우게 될 정도로 코딩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기자들에게는 ‘먼 세상’ 이야기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코딩’을 배우며 취재에 활용하는 기자들은 코딩이 어렵지 않고, 활용도가 높다며 입을 모았다.

황규인 동아일보 디지털통합뉴스센터 기자는 기자 경력 중 스포츠 분야를 가장 오랫동안 출입했으며 여전히 자신을 ‘스포츠 기자’라고 생각한다. 그는 ‘코딩’을 응용해 스포츠 기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야구를 좋아해 야구와 관련한 코딩 서적을 통해 ‘입문’했다. 책에는 한 투수가 던진 공의 기록을 스트라이크존 위에 찍어 종합한 내용이 있었다. “한국판으로 이걸 그리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투구위치를 기록하는 업체가 만들어졌고 제안이 들어와 함께 했다. 코딩은 잘 몰랐지만 책에 있는 걸 응용했다.” 황규인 기자의 ‘고군분투’ 결과 “손승락의 추락, 제구력의 추락”기사가 나왔다. 손승락의 제구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데이터로 드러낸 기사다.

(관련기사: 손승락의 추락, 제구력의 추락)

“스트라이크 판정만큼은 사람, 심판에 맡기자” 기사는 심판이 스트라이크라고 판정한 빅데이터 5만 건을 ‘R’로 분석해 스트라이크존을 그렸다. “신문이 사랑한 야구선수 오승환 박병호 니퍼트” 기사는 ‘파이썬’을 통해 신문 기사에 나온 키워드를 ‘크롤링’(키워드를 긁어 분석이 가능하도록 옮기는 것)해 만들었다. ‘R’과 ‘파이썬’은 코딩 프로그램이다.

▲ 2015년 9월9일 동아일보 '손승락의 추락, 제구력의 추락' 기사.
▲ 2015년 9월9일 동아일보 '손승락의 추락, 제구력의 추락' 기사.

황경상 경향신문 뉴콘텐츠팀 기자는 독학으로 코딩을 연구해 ‘인터랙티브’ 기사를 제작하고 있다. 그는 “처음에는 고화질 사진을 40장 붙이는 바람에 로딩이 오래걸리는 멍청한 사이트를 만들었는데, 하다 보니 자신감이 붙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정 사이트의) 소스값을 보고 따라하거나 구글에 검색해보는 식으로 배웠고 지금도 그런 식으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제작한 “나의 소득을 키로 나타낸다면” 인터랙티브 기사는 주목을 받았다. 국민의 소득을 키에 비유해 소득을 입력하면 자신이 어느 정도의 위치인지 보여주는 내용이다. 황경상 기자는 “인터랙티브 기사에는 공이 많이 들지만 생각만큼 많이 안 봐주시는 게 고민”이라며 “입력하도록 해보고 또, 게임처럼 만들면 참여를 높일 수 있지 않을까해서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 내 소득을 키로 나타낸다면 )

▲ 경향신문 '인터랙티브' 기사 '내 소득을 키로 나타낸다면'.
▲ 경향신문 '인터랙티브' 기사 '내 소득을 키로 나타낸다면'.

변지민 한겨레21 기자는 지난 4월 구글코리아와 미디어오늘이 주최한 해커톤 대회에 동아사이언스팀으로 참가해 우승했다. 당시 개발자, 디자이너와 호흡을 맞춘 일을 계기로 코딩 공부를 시작했다. 입문자를 위한 무료강좌인 ‘이고잉의 생활코딩’을 통해 입문해 공부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이 운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언론닷컴’이라는 매체를 폭로하는 기사에서 변 기자는 3000여개의 기사 내용을 분석해 ‘북한’과 관련된 키워드가 가장 많았다는 점과 선거 기간 기사가 급증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변 기자는 “선배 기자의 단독기사였는데 글 내용을 분석해달라고 해 크롤링을 배워 데이터를 분석하고 시계열 분석도 하고 ‘텍스트 마이닝’도 했다”면서 “지면중심 매체라도 코딩을 거쳐 데이터를 분석하는 기술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친노-종북’ ‘박근혜-개혁’ 편파적 짝짓기)

그렇다면 모든 기자들이 코딩을 공부해야 할까? 라운드 테이블에서 황규인 기자는 “일반 기사를 쓰는 것에 부가가치를 더하자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면서 “자신만의 스타일과 자신만의 감에 데이터가 올라가는 것이고, 내 분야에서 더 재미있는 기사를 쓸 수 있다”고 말했다.

▲ 변지민 한겨레21 기자. 사진=이치열 기자.
▲ 변지민 한겨레21 기자. 사진=이치열 기자.

황경상 기자는 “반드시 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오히려 협업을 잘하는 게 더 중요한데 코딩 공부를 통해 프로그램 언어에 대해 알게 되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여기저기 불려가서 엑셀시트 정리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고 프린트 설치하는 방법을 물어본다.” 변지민 기자는 웃으며 코딩 공부의 부작용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펜 기자를 하면서 당장 이번주 지면 기사를 써야 하는 분들이라도 배워두면 쓸모가 있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내 기사에 필요한 기술만 골라서 써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한운희 엔씨소프트 Media Intelligence TF장은 “문과면서, 독학을 하면서도 이렇게 할 수 있다”면서 “코딩이라는 게 ‘아주 먼 이야기가 아니구나’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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