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기(57)씨는 술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주말에 아들 정현(가명·31)씨와 가끔 마시는 게 전부였다. 손씨와 아내가 떨어져 지낸 지는 오래다. 정현씨는 외동아들이다. 지난달 29일에도 손씨와 정현씨는 술자리를 가졌다. 정현씨는 “그냥 일상적인 대화가 오갔다”고 기억했다.

술자리가 끝나고 부자는 한 방에서 잤다. 정현씨가 독립한 뒤 손씨는 원룸에서 혼자 지냈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월요일, 출근한 손씨가 정현씨에게 전화를 했다. “이번 주에 일이 늦게 끝날 것 같다. 집에 물 좀 끓여 놔라.” 정현씨는 물을 끓여두고 나왔다.

“물 좀 끓여놔라”가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정현씨는 말했다. 지난달 31일 오전 정현씨는 아버지 손씨가 회사 지하 주차장에서 숨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차에는 소주병, 타다 만 번개탄 그리고 비닐에 쌓인 20여개의 통장이 발견됐다.

손씨는 아들에게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다. 하다못해 일기 형식의 유서 같은 것도 없었다. 손씨가 남긴 것 중에 그나마 ‘유서’에 가까운 건 단 하나였다. 김아무개 쿠키뉴스 기자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다. 메시지 발송 시각은 지난달 31일 오전 2시2분이었다.

“당신은 펜을 든 살인자요. 당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글을 쓰지요. 언젠가는 많은 사람이 상처 받는 글을 못 쓰도록 할 것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당신 글로 인해서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 생각해보았는지요. 당신이 쓴 글에 대해서 책임을 질 것을 바랍니다.”

▲ 손진기씨가 10월31일 오전2시2분 기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사진=한국패션산업연구원 노동조합 제공
▲ 손진기씨가 10월31일 오전2시2분 기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사진=한국패션산업연구원 노동조합 제공
손씨는 대구에 위치한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의 책임 행정원이었다. 17년 동안 패션센터 건물을 관리하고 대관 업무를 했다. 업무와 관련해 손씨가 가진 자격증은 보일러 기사, 설비 기사, 전기 기사 등 8개였다. 대관 업무의 경우 문의가 오면 예약 가능 여부와 비용을 알려주는 수준이었다.

문제가 된 건 올해 10월 기사다. 김 기자는 제보자들과 연구원에서 자료를 받아 한국패션센터 대관 비판 기사를 두 차례 썼다. “한국패션센터가 개인 건물? ‘갑질’ 도 넘었다”(2017년 10월16일), “한국패션산업연구원, 패션센터 그대로 방치하나?”(2017년 10월30일)다. 현재 기사는 삭제된 상태다.

기사에는 연구원이 패션센터 관리를 장기간 동안 특정인에게 맡겼고, 이로 인해 특정인이 다목적공연장 및 대회의실 임대를 놓고 임의대로 주무르고 마음대로 결정하면서 업체들과 여러 차례 말썽을 빚어왔다는 내용이 담겼다. 뇌물을 받았다는 내용도 있다. 여기서 특정인은 손씨다.

하지만 김 기자와 손씨는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사이다. 전화 통화만 몇 차례 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이,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기자 때문에 목숨을 끊을 수 있을까. 기자는 “팩트에 근거한 취재”라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15일 고인의 빈소에서 아들 정현씨를 만나 의문점을 물었다.

▲ 손진기씨의 아들 정현(가명.31)씨가 15일 대구 패션센터 건물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손진기씨의 아들 정현(가명.31)씨가 15일 대구 패션센터 건물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돌아가신 날 상황은 어땠나.

“전날 아버지와 술을 한 잔 했다. 그리고 아버지 집에서 같이 잤다. 다음날 아버지가 출근하시고 전화가 왔다. 이번 주 내내 일이 늦게 끝날 거 같다고 물 좀 끓여놓으라고 하셨다. 그러고 저는 제 집으로 왔는데 다음날 새벽에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 고인이 유약한 성격이셨나.

“절대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에 과로사인가? 생각했다. 건물을 관리하는 일이다 보니 행사가 끝날 때까지 아버지도 퇴근을 못 했다. 자살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믿기지 않았다. 누가 관련돼 있을 거라 생각해서 CCTV와 블랙박스를 수차례 돌려봤다. 절대로 그럴 성격이 아니다.”

- 고인이 그런 성격이셨다면 쿠키뉴스 기사 때문에 목숨을 끊었다는 게 더 이해가 안 된다.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 기사 하나 때문에 돌아가신 것 같진 않다. 뭔가 더 다른 게 있었다고 생각한다. 가령 기사가 나간 직후 회사에서 제대로 대응해주지 않았다. 정정보도를 요청하거나 언론중재위에 중재 신청을 한다거나 그런 과정이 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런 과정이 없었다.”

- 쿠키뉴스 기사를 보면 고인이 뇌물 등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혹시나 그런 생각도 했지만 평소 아버지를 보면 그러실 분이 아니다. 욕심이 별로 없다. 그러려니 하고 사시는 분이었다. 무엇보다 돈 쓸 일이 없다. 원룸에 혼자 사셨고 아침에 집에서 밥 해 드시고 가끔 볼링 치는 게 전부였다. 할머니가 병원에 계셔서 돈이 좀 나갔지만 월급으로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했다.”

- 쿠키뉴스 기자는 제보자가 있다고 말했다. 돈을 준 사람이 있다는 건데?

“쿠키뉴스 기자가 ‘지금 와서 반박하는 건 고인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말한 걸 봤다. 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사가 사실이라면 증거나 제보자를 공개해야 한다. 고인을 두 번 죽이고 말고는 그 기자가 판단할 게 아니다. 아버지가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면 그걸 인정하면 된다.”

- 쿠키뉴스 기사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나.

“기자가 증거를 공개하지 않으면 사실이라고 믿을 수 없다. 첫 번째 기사가 나간 뒤 아버지는 회사에 확인서를 제출했다. 쿠키뉴스에서 제기하는 부당한 업무 진행을 한 바가 없으며, 만일 일부라도 그런 일이 발견될 경우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내용이다.”

▲ 대구 패션센터에 자리잡은 고인의 빈소. 사진=이하늬 기자
▲ 대구 패션센터에 자리잡은 고인의 빈소. 사진=이하늬 기자
- 해당 기자가 왜 그런 기사를 썼다고 보나.

“아버지 업무용 컴퓨터에서 일련의 과정을 작성한 문서가 나왔다. 문서에 따르면 10월10일 김 기자는 아버지한테 A업체의 12월 행사를 도와달라고 했다. 아버지가 거절하자 김 기자는 ‘당신 십 몇 년간 성실히 근무한 것 박살낸다’ ‘나도 나이 많이 먹었다’ ‘대구시에 출입하는 기자도 알고 국장도 안다’ 등의 말을 했다. 협박해도 안 되니까 기사를 쓰지 않았을까.”

- 하지만 그건 문서일 뿐이고 음성 녹음은 없지 않나.

“그렇다. 하지만 아버지가 법무사를 통해 작성한 고소장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대구수성경찰서에 제출할 예정이었던 고소장이었다. 사실이 아니라면 고소장에 쓸 수 있었겠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날(10월30일)에도 고소장에 새로운 증거를 추가하려고 했다. 이건 법무사와 통화한 내용에 담겨 있다.”

- 다른 증거는 없나.

“두 번째 기사가 나가기 전인 10월27일 통화는 녹음돼 있다. 이 통화에서 김 기자는 아버지에게 ‘일을 자꾸 키워서 내 깡다구 테스트 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말을 했다. 또 ‘내가 마지막으로 물었을 때 손 차장이 한 발만 물러섰어도 일이 이렇게까지 안 오고, 나도 짜증도 덜 났고 감정도 안 상했다’ ‘나이도 많은데 그 정도의 융통성도 없는교’ 등의 말을 했다.”

- 김 기자가 왜 A업체와 관련해 고인에게 그런 말까지 했을까.

“김 기자와 A업체가 무슨 관계인지는 모른다. 다만 아버지가 남긴 문서에 따르면 올해 4월 김 기자가 아버지에게 연락을 해서 9월에 대관을 잡아달라고 했다. 그리고 7월 A업체가 대관을 신청했다. A업체 대표는 쿠키뉴스 김 기자 소개로 대관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 기자 소개로 대관을 신청하는 게 문제가 되나.

“원래 이야기됐던 9월에 행사를 하는 거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남긴 자료를 보면 A업체는 9월에 대관 신청을 해놓고 12월에 행사한다고 광고했다. 그런데 12월에는 이미 B업체가 예약을 해 둔 상황이었다. 이건 증빙할 자료도 있다. B업체는 이미 5월에 대관을 확정했다. 그러니까 B업체가 행사 일정을 확정한 날에, A업체가 행사를 한다고 광고를 한 거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황당했을 것이다.”

▲ 11월15일 쿠키뉴스는 해당 기사와 관련된 입장문을 게재했다. 사진=쿠키뉴스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11월15일 쿠키뉴스는 해당 기사와 관련된 입장문을 게재했다. 사진=쿠키뉴스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그럼 이후에 김 기자가 A업체 부탁으로 고인에게 또 연락을 한 건가.

“A업체 부탁을 받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10월에 김 기자가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서 A업체가 12월에 행사를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다. 아버지가 안 된다고 하자 김 기자는 아버지 회사 간부도 찾아갔다. 그 간부에 따르면 김 기자는 A업체가 행사할 수 있게 해달라는 발언을 했고 ‘패션센터 운영에 문제점이 많다’는 식으로 압력을 행사했다. 이것도 증빙할 자료가 있다.”

- 이후 두 차례 기사가 났다. 16일부터 30일까지 2주의 시간이 있었는데 왜 고인은 대응하지 않았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대응하지 않은 게 아니다. 노동조합 위원장 이야기를 들어보니 첫 기사가 난 다음날, 노조위원장과 아버지 그리고 간부 두 명이 이사장실에서 회의를 했다. 그 자리에서 쿠키뉴스에 반박보도 요구, 언론중재위 중재신청, 민형사상 대응 등의 이야기가 오갔다고 들었다.”

- 실제 그런 과정이 진행됐나.

“진행되지 않았다. 그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그때 적극적으로 나서 주었다면 아버지 혼자 모든 걸 떠안게 되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혼자 고소를 준비했던 것도 그렇고. 법무사와 통화한 내용을 보면 ‘안 그래도 지금 위에서 자꾸 만류를 해가지고’ 라는 대목이 나온다. 회사에서는 아버지가 혼자 대응하는 것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 지금 회사(한국패션산업연구원)은 어떤 입장인가. 유족이 회사에 요구하는 건 뭔가.

“일단 조문을 했고 유감스럽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적극적으로 하는 게 없다. 회사는 ‘하겠다’는 말만 한다. ‘했다’는 말은 없다. 아버지가 업무와 관련한 일을 계기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회사의 사과가 필요하다. 관계자 중징계도 필요하다. 기사가 나간 이후 도와주기는커녕 만류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회사가 진상을 규명하는 데 도움을 줬으면 한다.”

- 쿠키뉴스에서 ‘입장문’을 냈다. 해당 기자와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쿠키뉴스 입장문은 받아들일 만한 수준이다. 아버지 명예가 조금은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김 기자가 조문을 오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받고 싶지 않다. 그 기자는 억울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안다. 억울하면 증거를 내놓으면 된다. 김 기자와의 소송은 끝까지 갈 것이다.”

- 조심스럽지만 만약 고인에게 문제가 있었다면 어쩔 것인가.

“그것까지 생각해보진 않았다. 머리가 아프다. 하지만 아버지가 대관 업체들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면 아버지 장례식장에 대관 업체 사람들이 왔을까 싶다. 장례식에 대관 업체 사람들이 많이 오셔서 슬퍼했다. 어떤 사람들은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확인서’까지 써주셨다. 그런 분위기를 보면 알지 않나.”

-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가.

“아버지 차에 통장이 20개 정도 비닐에 쌓여 있었다. 생활비 통장, 적금 통장, 체크카드가 연결된 통장 등이다. 아버지가 이걸로 억울함을 표현하고 가신 게 아닐까. 일단 은행에 거래내역 조회를 신청해놓았고 회사와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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