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A : “이번에 좀 잘 만들어봐. 지상파에 한번 나오면 ○점이다. 상 한번 타보자.”

보좌관 B : “네, 그림 잘 나오도록 만들어보겠습니다. 통계 자료 중심으로 폼 나게 만들어서 보도자료로 뿌리겠습니다.”

여당 국회의원 보좌진의 증언을 바탕으로 구성한 가상의 대화 내용이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정당이 소속 국회의원의 국정감사 자료가 언론에 보도될 시 언론매체별로 차등 배점해 점수를 매기고 국정감사에서 활약(?)한 우수 의원을 선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정치권에서는 공공연한 비밀로 통했지만 실제 이를 명시한 문건으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2017년 국정감사 우수의원 선정 관련 자료 제출>이라는 더불어민주당 원내공지 문건을 보면 “원내행정기획실에서는 국정감사에 최선을 다하고 계시는 의원님들의 노고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해, 예년과 같이 국정감사활동 우수의원을 선정한다”며 첨부된 양식에 따라 내용을 작성해 제출하라고 공지했다.

그러면서 민주당 원내행정기획실은 방송사(지상파, 보도전문 종편, 기타 및 지역방송), 일간지(중앙지, 지방지, 경제지), 통신사, 인터넷(국회출입 인터넷기자단 회원사 기준)으로 언론 매체를 분류했다. 첨부된 양식은 이 같은 언론사 분류 기준에 따라 의원들의 국감자료가 어느 매체에 노출됐는지를 보도일시와 프로그램명을 함께 적게 돼 있다.

‘방송보도 성과 양식’이라는 첨부 문서에는 “실제 TV방송보도된 성과만 인정, 인터넷 기사 제외”라고 나와있고, 일간지 보도의 경우 “지면만 인정, 인터넷 기사 제외”라며 보도일과 보도면를 적게 돼 있다. “면 구분은 중앙지만 하고 지방지와 경제지는 면 구분 없이 제출”해달라는 요구사항도 있다. 통신사와 인터넷은 보도일과 기사 제목, 기사 URL 주소를 적게 돼 있다.

한 보좌관은 “양식에 따라 국감자료가 어디 매체에 실렸는지 취합해 원내행정기획실에 제출하면 언론사 매체 플랫폼에 따라 차등 배점한 점수를 매겨 높은 점수를 받은 의원을 우수 의원으로 선정한다”고 증언했다.

예를 들어 지상파는 ○점, 전문 보도채널 및 종편은 ○점, 통신사 ○점, 인터넷 ○점, 이런 식으로 차등적으로 점수를 매기고 있다는 것이다. 증언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에 국감 자료가 노출되면 가장 높은 점수를 받고, 인터넷 매체는 가장 낮은 점수를 받는다.

▲ <2017년 국정감사 우수의원 선정 관련 자료 제출></div></div>
                                <figcaption>▲ <2017년 국정감사 우수의원 선정 관련 자료 제출> 문건에 첨부된 양식.</fig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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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br><p></p><p>국민의당 역시 비슷한 방식에 따라 국감 우수의원을 선정하고 있다. <국정감사 우수의원 선정 관련 자료 제출> 국민의당 원내공지 문건에 따르면 방송 1, 방송 2, 방송 3, 신문 1, 신문 2, 신문 3, 인터넷 포털(메인화면)로 분류해서 국감 자료 언론 보도 노출 여부를 제출하도록 했다.</p><p>방송을 예로 들면 방송 1은 “공중파(KBS, MBC, SBS) 등 메인뉴스(20:00 OR 21:00)”이고, 방송 2는 “공중파 뉴스(메인 외), 보도전문채널(YTN, 연합Y), 종합편성채널(JTBC, 채널A, TV조선, MBN), OBS”를 말한다. 방송 3은 “BBS, CBS, EBS, PBC, 아리랑TV, 한국경제TV, 지역방송사” 등이다. 이 같은 분류 기준에 따라 국감 자료가 노출된 내용을 방송일시와 프로그램명을 함께 적도록 했다. </p><p>신문의 국감자료 노출 분류 기준을 보면 중앙신문사 1면은 신문 1로, 중앙신문사 단독보도, 지방신문사 1면은 신문 2로, 연합‧뉴시스 등 통신사, 지방신문사 단독보도, 중앙신문사 인용보도는 신문 3으로 분류했다.</p><p>인터넷 포털은 메인뉴스 화면에 등재한 것만 적도록 했다. 국민의당은 “이름만 기사에 인용하거나, 사진자료 만의 보도는 배점에서 재외된다”고 설명했다. </p><p>국회 관계자는 “분류 기준에 따라 방송-신문-인터넷 순으로 점수를 차등화해 배점하고 점수를 매겨서 취합해 우수 의원을 선정하게 된다”고 말했다.</p><p>파급력이 클 수 있는 매체일수록 높은 점수를 주고 언론에 자주 노출될수록 점수를 받는 방식이기 때문에 내용의 깊이보다는 주로 방송에 쉽게 노출되는 데 중점을 둬서 국감자료를 만드는 행태가 벌어지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다. </p><p>일례로 국감 자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통계자료는 언론에 쉽게 노출되도록 하기 위한 꼼수로 통한다. 한 보좌관은 “국감 자료에서 통계에 집착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 통계 자료는 언론이 쉽게 인용할 수 있고, 기사도 잘 나온다. 어느 자치단체가 교통사고 사망율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데 그런 자료를 준비해서 뿌리면 언론이 쉽게 받아쓰고 우리는 점수를 얻는다”며 “지역구 의원들은 이거라도 잘해서 우수 의원이 선정되면 의정보고서에 넣을 수 있으니 사활을 건다”고 말했다.</p><p>국정감사 취지는 한국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점검하고 개선점을 찾는데 있지만 국회의원들이 우수 의원에 선정되기 위해 언론이 받아쓰기 좋아하는 자료만을 만드는 데 혈안이 돼 있다는 얘기다.  </p><p></p><div style=
▲ 국민의당 <국정감사 우수의원 선정 관련 자료 제출></div></div>
                                <figcaption>▲ 국민의당 <국정감사 우수의원 선정 관련 자료 제출> 문건 내용.</fig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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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br><p></p><p>언론 매체별 점수가 차등 배분돼 있다 보니 점수 배분이 높은 방송 매체에 줄을 대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글로 풀어 자세히 설명해야할 국감자료가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방송에 내보내기 위해 기자들과 접촉하고 의견을 타진한다. 방송 보도가 성사되지 않으면 신문과 인터넷 매체 순으로 언론보도 노출을 부탁한다고 한다. </p><p>한 보좌관은 “지역구 의원들은 상에 어마어마하게 집착을 한다. 그래야지 지역에 내려가 성과로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을 못 받으면 나가는 보좌관도 수두룩하다”고 털어놨다.</p><p>보좌관은 “국감이라는 게 우수, 최우수 이렇게 나누는 성질이 아니지 않느냐”라며 “개별 의원마다 중시하는 문제 현안이 있는 건데 그걸 정량화해서 평가하는 게 불가능한데도 점수를 매기는 꼴”이라고 비판했다.</p><p>국민의당 원내행정기획실 관계자는 “국감자료가 언론에 보도된 횟수가 많다 보니 의원별로 이렇게 분류해서 제출하라는 내용이며 지금까지는 매체별로 차등화해 점수를 배분하지 않았다”면서도 “다만 인터넷 기사가 방송, 신문과는 동등하지 않다고 봐서 그런 부분은 차등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p><p>민주당 한 보좌관은 “매체별로 분류해 국감자료 노출 여부를 적도록 한 것은 채점표에 따라 점수를 매기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채점표가 존재하는 것은 맞다. 차등 배분 점수가 공개되면 언론사들도 가만있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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