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개.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남의 부하 노릇을 하면서 잔심부름을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번은 선거 국면이고, 한명숙·유시민·송영길 등 노무현의 ‘졸개’들이 대거 수도권 등 전면에 나서 자신들의 상품성이 아니라 노무현을 내세워 치르는 선거다.”

지난 2010년 5월 김재철 당시 MBC 사장은 ‘시사매거진 2580’에서 방송 예정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특집 방송을 막기 위해 MBC 임원과 논의하면서 이같이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15일 경향신문은 2010년 5월17일 국정원이 작성한 ‘노무현 보도 관련 선거법 위반 명분 보도 제재 방침’ 문건을 입수해 보도했다. 이 문건에 따르면 김 전 사장은 당시 6·2 지방선거를 보름 정도 앞둔 시점에서 MBC 임원에게 “노무현 서거 1주기를 맞아 MBC가 이를 부각 보도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국정원 관계자의 말을 보고받았다.

▲ 김재철 전 MBC 사장이 지난 6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김 전 사장은 MB 정권 국가정보원과 공모해 공영방송 장악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김재철 전 MBC 사장이 지난 6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김 전 사장은 MB 정권 국가정보원과 공모해 공영방송 장악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이에 김 사장은 지방선거를 ‘여권 대 노무현의 선거’로 규정하면서 “공영방송을 자칭하는 MBC가 선거가 코앞에 다가와 있음에도 ‘노무현 서거 1주기’를 명분으로 대대적인 노무현 특집을 하는 것은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문건에 적시돼 있다.

김 전 사장은 또 사내 임원진 기구를 통해 노 전 대통령 특집 방송을 제재할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건에 따르면 김 전 사장이 격주 화요일마다 사장 주재로 보도부문 간부들이 모여 시사 프로그램의 편향성 여부를 점검하는 ‘리뷰보드’를 통해 선거법 위반 가능성을 거론하며 방송 저지를 시도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선거관리위원회와 법률 전문가 등에게 ‘2580’ 특집 방송이 선거법에 위반되는지 등을 문의하라고 MBC 임원에게 지시했다.

이 문건대로라면 김 전 사장은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당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후보들에 대한 폄훼 발언을 하고, 야당에 유리한 상황을 우려해 국정원과 방송농단을 기획한 셈이다.

물론 MBC ‘시사매거진 2580’의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보도는 선거법 위반이 아니었기에 예정대로 5월23일 방송될 수 있었다. 하지만 국정원이 이 같은 요청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직권남용과 방송법 위반 등의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김 전 사장이 ‘졸개’라고 폄훼한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1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발언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노 전 대통령과 동지적 관계였지 졸개는 아니었다. 김 전 사장이 졸개라고 표현한 것이야말로 자신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졸개임을 자백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송 의원은 “당시 MBC를 비롯해 언론 보도가 전반적으로 우리에게 불리한 상황이었고 공격을 많이 받았다”며 “김 전 사장 등이 한 발언과 행위가 방송법과 공직선거법 등 어떤 법에 저촉되는지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으로 당선된 송 의원을 제외하고 서울시장 후보였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경기지사 후보였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낙선했다.

지난 9월19일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공개한 이명박 정부 시절 공영방송 장악 문건 중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2010년3월2일 작성)에는 “지방선거 이후 시사교양국 ‘해편’(해체)에 초점을 맞춘 조직 개편과 함께 일선 기자·PD들에 대한 전면적 물갈이 추진”이라도 적시돼 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이 문건이 MBC를 담당하던 정보관(IO)과 전영배 전 MBC 기획조정실장(현 MBC C&I 사장)을 거쳐 김 전 사장에게 전달됐다고 보고 있다. 김 전 사장은 이후 수시로 국정원 등의 지시를 받고 ‘PD수첩’ 제작진을 교체하고, 김미화·김여진씨 등 정부에 비판적인 출연자들을 프로그램에서 퇴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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