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활비 상납’ 박근혜 정부 국정원장 3명 구속 초읽기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등과 관련해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장 3명 모두가 구속될 상황에 직면했다. 검찰은 남재준·이병호·이병기 전 국가정보원장을 상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이병기 전 원장이 매월 5000만 원이던 상납액을 1억 원까지 끌어올리고 2015년 3월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옮긴 뒤에도 같은 금액을 계속 상납하도록 국정원을 압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일보는 “전직 국정원장 3명 중 이병기 전 원장은 재임 기간이 불과 7개월로 가장 짧다”면서 “검찰이 2년3개월 재직한 이병호 전 원장, 박근혜 정부 초기 1년2개월가량 국정원을 이끈 남 전 원장과 달리 이병기 전 원장에게만 긴급체포라는 강수를 둔 것은 특활비 상납사건에서 그의 비중이 제일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각에선 이병기 전 원장이 청와대 특활비 상납을 원만하게 처리한 점이 박 전 대통령 눈에 들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영전한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한다”며 “만약 이병기 전 원장이 청와대에 건넨 특활비와 그의 비서실장 발탁 간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 뇌물죄가 명백히 성립한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라고 덧붙였다.

[세계일보] '靑 상납' 진술 받아낸 檢… 朴 前대통령 조사만 남았다_사회 05면_20171115.jpg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양석조)는 14일 오후 남재준·이병호(77) 전 국정원장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국고손실) 위반 및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수사·재판 과정에서 가짜 사무실을 만들고 직원들에게 허위 증언을 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는 남 전 원장에게는 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 혐의가, 이전 원장에게는 업무상 횡령 및 국정원법상 정치관여금지 혐의가 추가됐다.

세계일보는 “박 전 대통령 조사가 임박한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검찰은 아직 말을 아끼고 있다”며 “검찰은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이 모두 사임한 탓에 구치소에 수감 중인 박 전 대통령과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밝혔다.

법치주의 부정하는 보수신문의 궤변

그런데 조선일보는 전직 국정원장들이 청와대에 거액의 특활비를 상납한 초유의 사태를 “박 전 대통령 지시에 따른 것”이라며 “국정원장으로선 이를 거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을 수 있다”고 두둔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검찰 안팎에선 수사팀이 너무 무리하게 영장을 청구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며 “국정원 특활비 제공이 과거 정권에서도 관행적으로 이뤄졌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도 전후 사정 고려하지 않고 박근혜 정권 국정원장 세 명에 대해 싹쓸이하듯 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지나친 처벌이라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법치주의’을 지면이 닳도록 강조했던 조선일보는 15일자 “국정원장 3명 안보실장 2명 전원 구속 추진, 지금 혁명 중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선 권력자들에게 더 엄격해야할 법치주의마저 부정했다.

[조선일보] [사설] 국정원장 3명 안보실장 2명 전원 구속 추진, 지금 혁명 중인가_사설_칼럼 39면_20171115.jpg
조선일보는 “큰 위법이든 작은 위법이든 위법은 위법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한 행위도 위법이면 위법이다”면서 “그러나 이 정도 혐의를 갖고 국정원장들과 안보실장들을 싹쓸이하듯이 감옥에 넣겠다고 하는 것이 과연 정상인가. 이것은 법 집행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김관진 전 실장이 포승줄에 묶여 검찰에 출두하는 장면도 공개됐다. 그는 북한 김씨 왕조가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대한민국 군인이다. 김정은은 그의 구속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라고 했다.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이 장면을 보고 국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다 김정은의 생각이 궁금한 모양이다.

조선일보는 또 “이들이 모조리 감옥에 가는 것은 혁명 상황이 아니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이 만들어 준 정권 교체로 대선 공약을 이행 중이다.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 이런 적폐 청산이 지금 가장 중대한 개혁 과제라고 국민은 보고 있다.

중앙일보도 “공무원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고, 상관의 지시나 요구의 위법성 여부를 일일이 가려가며 업무를 수행하기는 쉽지 않은 게 엄연한 현실”이라며 “범죄에 가담한 적극성과 자발성 등의 정도(程度)을 참작하는 게 법치의 정신에 부합한다”는 사설을 썼다. 국가기관의 심각한 국기문란 범죄행위를 바라보는 보수신문의 시각이다.

중앙일보는 이어 “권력과 정권의 부침에 따라 권력자에 의해 기용돼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관행을 이겨내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싸잡아 법적 책임을 묻는 건 법적 편의주의에 불과하다”며 “‘현대판 사화(士禍)’의 피바람이 불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고 덧붙였다.

[한국일보] [사설] 국정원, 정권이 이용할 생각 못하게 법으로 못 박으라_사설_칼럼 31면_20171115.jpg
반면 한국일보는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듯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국정원은 헌법을 위반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문제 집단이었다”며 “두 정권의 국정원장 세 명이 사법처리 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는 나락에 빠진 국정원의 현실을 보여 준다. 충직한 검사를 자살로 몰고 간 것도 결국은 국정원이 정권 통치기구로 전락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근절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속히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며 “정권이 국정원을 충직한 손발로 활용하려는 마음을 아예 먹지 못하게 법으로 못 박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정원 연예인 불법사찰 직접 챙긴 ‘MB맨’ 임태희

한편 ‘MB맨’으로 불린 임태희 이명박 정부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 국정원으로부터 연예인들을 불법사찰한 문건을 직접 보고받은 사실이 경향신문 보도로 확인됐다.

경향신문은 2011년 7월 무렵 국정원이 작성한 ‘등록금 집회 참가 연예인 신원사항’ ‘좌파 연예인들의 등록금 불법시위 참여 제어’ ‘MBC 좌편향 출연자 조기 퇴출 확행’ 등의 문건을 확인했다.

이에 따르면 권재진 당시 민정수석과 박범훈 교육문화수석(69)도 해당 문건을 보고받았다. 당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반값 등록금 실현 요구’를 비롯한 정부 비판적 사회 활동을 해오던 배우 김여진·김규리씨, 방송인 김미화씨, 가수 고 신해철·윤도현씨 등 연예인들을 ‘강경 좌파’로 분류하고 직원들을 통해 이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이어 이들 연예인을 출연 중이거나 출연이 예정된 방송에서 하차시키는 등의 공작을 했다.

[경향신문] 국정원 연예인 불법사찰 문건 'MB맨' 임태희가 직접 챙겼다_종합 01면_20171115.jpg
경향신문은 “국정원 문건에 적시된 계획대로 연예인들에 대한 공작은 실행됐다”며 “2011년 무렵 활발한 사회 참여 활동을 하던 김여진씨는 그해 7월부터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 고정 출연하게 돼 있었지만 국정원과 김재철 당시 사장 등 MBC 경영진의 방해로 출연이 좌절됐다”고 설명했다.

경향신문은 “국정원의 ‘문화·연예계 블랙리스트’ 실행에 이명박 전 대통령 최측근 인사까지 가담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이들에 대한 수사 가능성과 함께 이 전 대통령의 개입 의혹도 더욱 짙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경향신문은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이 2010년 5월 MBC가 준비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특집 방송에 대해 불방 압력을 가한 정황 문건도 확인했다.

2010년 5월17일 국정원이 작성한 ‘노무현 보도 관련 선거법 위반 명분 보도 제재 방침’ 문건에 따르면 2010년 5월13일 MBC를 담당하던 국정원 관계자는 MBC 임원 ㄱ씨에게 “원세훈 원장님 등 우리 원 지휘부에서 노무현 서거 1주기를 맞아 MBC가 이를 부각 보도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당시 국정원은 MBC ‘시사매거진 2580’이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당일인 그해 5월23일 노 전 대통령 특집 방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ㄱ씨는 다음날 국정원의 입장을 김 전 사장에게 보고했다.

한명숙·유시민·송영길을 “노무현의 졸개”라고 한 김재철

김 전 사장은 당시 지방선거를 ‘여권 대 노무현의 선거’로 규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평상시 전직 대통령 서거 1주기라면 나름대로 특집도 해볼 만한 상황”이라면서도 “이번은 선거 국면이고, 한명숙·유시민·송영길 등 노무현의 ‘졸개’들이 대거 수도권 등 전면에 나서 자신들의 상품성이 아니라 노무현을 내세워 치르는 선거”라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김 전 사장이 “공영방송을 자칭하는 MBC가 선거가 코앞에 다가와 있음에도 ‘노무현 서거 1주기’를 명분으로 대대적인 노무현 특집을 하는 것은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문건에 적시돼 있다.

[경향신문] _원세훈 원장님이 '노무현 1주기 특집' 우려_ MBC에 불방 압력_종합 03면_20171115.jpg
경향신문은 또 “사정당국에 따르면 검찰은 원 전 원장이 관여해 국정원이 작성한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문건이 MBC를 담당하던 정보관(IO) ㄱ씨와 전영배 전 MBC 기획조정실장을 거쳐 김 전 사장에게 전달됐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김 전 사장은 이 방안을 기초로 수시로 국정원의 지시를 전달받아 ‘PD수첩’ 제작진을 교체하고, 김미화·김여진씨 등 정부에 비판적인 출연자들을 프로그램에서 퇴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 전 실장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PD수첩 PD를 교체하는 게 말처럼 쉬운 줄 아나. 당신이 직접 와서 MBC 사장을 하라’고 ㄱ씨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향신문은 “하지만 이 같은 갈등은 일시적인 것이었을 뿐 국정원과 MBC는 밀월 관계를 이어가며 MBC 친정부화 전략 논의를 계속해 간 것으로 보인다”며 설명했다.

ㄱ씨는 검찰에서 “김 전 사장이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문건을 받았다고 생각했다”며 “문건에 적힌 내용이 시행되는 것을 보고 ‘족보대로 운영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 전 실장도 “ㄱ씨와 얘기한 내용을 모두 김 전 사장에게 보고했다”고 검찰에서 말했다.

검찰은 김 전 사장이 재임 당시 원 전 원장과 2차례가량 만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전 사장 측 관계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만난 것”이라며 MBC 친정부화 논의 의혹에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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