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푸드가 있는 것처럼, 뉴스도 ‘슬로우 뉴스’가 필요합니다.”

댄 길모어 애리조나주립대학교 월터 크롱카이트 저널리즘스쿨 교수가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KPF 저널리즘 컨퍼런스’ 강연에서 한 말이다. 이날 마련된 ‘뉴스와 신뢰’ 세션에서는 길모어 교수를 포함해 이언 마틴 ‘스토리풀’(Storyful) 아시아 에디터와 정은령 서울대학교 팩트체크센터 센터장이 저널리즘과 팩트체크, SNS에서 가짜뉴스를 판별하는 방법과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해 발표했다.

기존 언론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고 가짜뉴스를 비롯해 모든 정보가 빠르게 유통되는 시대에 이들이 한 목소리로 강조한 것은 ‘기본과 원칙’이었다. 알고리즘 등 자동화된 기술에 팩트체크를 맡기기보단 오히려 기자가 천천히, 그러나 철저하게 검증하는 일이 지금 상황에서 답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 이언 마틴 스토리풀 아시아 에디터가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KPF 저널리즘 컨퍼런스’에서 발표하고 있다.
▲ 이언 마틴 스토리풀 아시아 에디터가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KPF 저널리즘 컨퍼런스’에서 발표하고 있다.

이언 마틴 스토리풀 에디터가 동료들과 함께 가짜뉴스 판별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것도 기술이나 알고리즘이 아니라 누가, 무엇을, 어디서, 언제, 왜 등을 직접 따져보는 ‘5W’였다. 마틴 에디터는 “기자들은 SNS에서 일을 할 때는 이런 질문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일반 뉴스를 취재할 때와 동일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틴 에디터가 밝힌 가짜뉴스 판별의 노하우는 누구나 따라할 수 있을 만큼 간단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크게 위치와 날짜, 출처를 확인한다. 이들은 가짜뉴스로 의심되는 사진이나 동영상이 올라오면 구글 이미지 검색에서 해당 사진을 역으로 검색한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은 게 누구인지 해당 인물의 소셜 미디어 계정에 들어가 ‘SNS 발자국’을 살펴본다. 구글 위성 지도 등을 활용해 사진이나 동영상이 찍힌 현장을 살펴보기도 한다.

그는 이 같은 방식으로 지난 미국 대선 국면에서 가짜 트럼프 지지자 트위터 계정을 밝혀내기도 했다. 당시 해당 트위터 계정은 7만여 명이 팔로우하고 있었고 많은 주요 언론사들이 트윗 내용을 인용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가짜 계정이었다.

마틴 에디터가 공급자 측면에서의 가짜뉴스 대책을 말했다면 댄 길모어 교수는 수용자 측면에서는 뉴스 리터러시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 리터러시는 뉴스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올바르게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길모어 교수는 “쓰레기 같은 정보들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이를 걸러내고 무엇이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뉴스인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무조건 의심해야 됩니다.” 길모어 교수가 제시한 답이었다. 그는 “나는 뉴욕타임스도 의심하고 페이스북도 의심한다”면서 그게 뉴스 소비자들이 지켜야 할 원칙이라고 했다. 길모어 교수는 더 나아가 기존 매체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편견까지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안락한 곳에서 나와 불편해져야 한다”며 “내 편견이 뭔지 정확히 알고 있으면 누군가가 나의 잘못을 지적했을 때 방어적으로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브라이언 스텔터 CNN 기자의 말을 인용하며 “어떤 정보를 공유하기 전에 세 번 확인하라”고 말했다. 그는 CNN에서 ‘믿을 수 있는 정보원’(Reliable Sources)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뉴스 리터러시를 강조하고 있는 기자다.

▲ 댄 길모어 애리조나주립대학교 교수가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KPF 저널리즘 컨퍼런스’에서 강연하고 있다. 사진=한국언론진흥재단 페이스북 생중계 캡쳐
▲ 댄 길모어 애리조나주립대학교 교수가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KPF 저널리즘 컨퍼런스’에서 강연하고 있다. 사진=한국언론진흥재단 페이스북 생중계 캡쳐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도 이 지점이다. 정은령 교수는 “팩트체크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진실의 판정자가 돼야 한다는 데에 기자들이 어려움을 느끼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팩트체크센터는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가짜뉴스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던 3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법으로 가짜뉴스를 규제하면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 침해 위험이 있고, 알고리즘으로 팩트체크를 하면 참·거짓 등 진실 판정이 어려웠다”며 “오히려 전통적으로 팩트체크를 해오던 기자가 이를 수행해 대선 등 공적 사항에 대한 일반 시민의 식견을 높이는 게 근원적인 해결책이라 봤다”고 말했다.

마틴 에디터는 “우리 가짜뉴스 판별 결과가 틀린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짜뉴스 판별과 팩트체크 자동화에 대해서는 “실행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정보의 진위 확인에 대해서는 자동화 기술이 나와 있지 않고, 기자가 갖고 있는 이해를 토대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비가 온 어젯밤 찍었다는 사진인데 비가 내리고 있지 않거나 땅이 젖어있지 않다면 어제 날씨가 어땠는지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길모어 교수는 “뉴스 리터러시를 촉진시키기 위해서 기자들뿐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업그레이드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들도 느리게 갈 필요가 있다”며 “모든 속보는 흥미롭지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한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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