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원들이 신뢰하는 만큼 리더에게 권위가 생긴다. 최남수 YTN 사장 내정자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노종면·조승호·현덕수 등 복직한 후배들과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복직 기자들에게 충분히 많은 기회를 부여하고 그들의 상처를 보듬겠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최 내정자가 지난 8월 복직한 기자들을 언급한 데 대해 당사자들은 비판적이다. 현덕수 YTN 기자는 1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복직기자들을 ‘사장 입성을 위한 도구’로 쓰는 것 같아 불쾌했다”고 말했다. “지난 9년 공정방송 투쟁에서 기여한 적 없고 사소한 관심도 표하지 않았던 내정자가 어느날 온갖 사탕발림으로 복직자를 언급한다고 진정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게 현 기자의 생각이다.

▲ YTN 해직기자 3명이 지난 8월28일 복직했다. 2008년 10월 해직된 지 무려 3249일 만이다. MB정부의 낙하산 사장에 맞서 공정방송 투쟁을 하다가 해고됐던 노종면·조승호·현덕수 YTN 기자는 이날 오전 9시 동료 선·후배 기자 80여 명의 환대 속에 서울 상암동 YTN 사옥에 들어섰다. 사진=이치열 기자
▲ YTN 해직기자 3명이 지난 8월28일 복직했다. 2008년 10월 해직된 지 무려 3249일 만이다. MB정부의 낙하산 사장에 맞서 공정방송 투쟁을 하다가 해고됐던 노종면·조승호·현덕수 YTN 기자는 이날 오전 9시 동료 선·후배 기자 80여 명의 환대 속에 서울 상암동 YTN 사옥에 들어섰다. 사진=이치열 기자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YTN을 장악하려 해 구성원들이 혼란을 겪던 2008년 3월, 현덕수 기자는 노조위원장이었다. 최 내정자가 당시 YTN을 떠난다는 얘기가 들려오자 현 기자는 직접 최 내정자의 집까지 찾아갔다고 했다.

“회사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선배들이 자리를 지켜 흔들리지 않게 이끌어 달라고 제가 그분 집까지 찾아가서 부탁을 했습니다. 제가 개인자격으로 찾아갔겠습니까. 그런데도 회사를 떠났거든요. 2001년 회사가 어려울 때도 유학 갔다가 회사 떠났습니다. 그래서 2005년 재입사 당시에도 논란이 있었죠. 그때 ‘미국MBA 유학도 했고, 회사 경영에 이바지할 것’이라며 논란을 잠재우고 들어왔는데 2008년에 다시 나갔어요. 저는 그 때 이제 이 분은 YTN과 인연이 지속될 수 없다고 판단했어요.”

현 기자는 최 내정자의 이런 과거행적 탓에 2차 사장 공모에 지원했을 때도 그가 내정되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이사회 멤버로 김호성 YTN 총괄상무가 있는데 이런 일을 전혀 모르지 않는데도 문제제기 하지 않고 표결에 참여한 것은 최남수 내정 못지않게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 14일 서울 상암동 YTN 사옥에서 언론노조 YTN지부(지부장 박진수)가 최남수 사장 내정자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YTN지부 제공
▲ 14일 서울 상암동 YTN 사옥에서 언론노조 YTN지부(지부장 박진수)가 최남수 사장 내정자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YTN지부 제공

조승호 YTN 기자는 이날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최 내정자가 사내에 남긴 글이나 인터뷰에선 ‘적폐청산을 하겠다’고 했지만 최 내정자를 옹립하고 추대한 세력이 적폐청산의 대상인데 과연 자기 지지 세력을 청산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 뒤 “구호에 불과할 뿐 YTN이 망가져간 지난 9년이 연장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조 기자에 따르면 사내 ‘적폐세력’에선 ‘노조가 지지하는 사람을 막아야 한다’는 말이 돌았다. 그러다 최 내정자로 압축되자 회사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권교체와 함께 적폐청산·공정방송 쟁취 등의 바람이 부는 가운데 긴장하던 이들이 ‘의기양양해졌다’는 뜻이다. 이는 조 기자만의 생각은 아니다.

오랜기간 언론노조 YTN지부에서 공정방송추진위원장을 맡아온 임장혁 기자는 이날 점심시간 서울 상암동 YTN에서 열린 집회에서 “(최 내정자가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일부 후배들이 나서야 한다고 읍소를 해서 자기가 오기 싫었는데 YTN을 위해 온 것처럼 말했는데 그 후배들이 누구냐고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한다”며 “누구겠나, 지난 9년 간 배석규 밑에서 잘 나갔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와서 뭔가 달라질 것 같으니까 박근혜(때 임명한) 대주주 이용해서 생명 연장하는 것”이라며 “어려울 때 살짝 피해왔던 자들이 다시 살아난다”고 비판했다.

이날 집회에는 YTN지부 조합원들 100여명이 참석했다. 취재 등 일정을 고려할 때 적지 않은 수가 참석해 뜻을 모은 것이다. 박진수 언론노조 YTN지부장은 “YTN노조는 정권교체 이전에 보도국장 임명동의제를 이루고 해직자 복직을 이뤄냈다”며 “제도적 장치 시스템을 이용하면 합리적인 사고에서 상식적인 틀에서 사장 선임이 이뤄질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사장 선임 과정에서도 석연찮은 대목이 많았다는 설명이다. 

예컨대 YTN 사장 1차 공모 때 노종면 기자가 출마했지만 서류에서 탈락했다. 노 기자를 배제해놓고 새 사장은 뽑지 않고 끝난 것이다. 2차 공모에서는 1차 때 응시하지 않았던 최 내정자가 지원했다. 사장추천위원회가 심사를 진행하는 동안 YTN 구성원들은 최 내정자에 대한 반대의 뜻을 표명해왔다. 조 기자에 따르면 사추위에서 최 내정자를 포함해 3명으로 후보를 압축해 이사회에 명단을 올렸다. 그런데 사추위에서 평가한 장·단점, 항목별 점수 등은 빼고 명단만 이사회에 넘겼다는 것. 

게다가 현재 대주주인 한전KDN, 한국마사회, KGC 인삼공사 등의 사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한 사람들이다. ‘박근혜 잔당들이 YTN의 개혁을 막고 있다’는 의심이 가시지 않는 이유다. 언론노조 등은 14일 YTN 대주주인 한국마사회를 찾아 “만에 하나 ‘박근혜가 심어놓은 회사 내부와 외부의 잔당들이 YTN의 개혁을 막기 위한 준동’에 나선 결과라면 결코 용인할 수 없다”며 “YTN 이사회의 결정이 왜 계속해서 YTN 구성원들의 의지와 민심에 어긋나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최 내정자 철회를 요구했다.

▲ 최남수 YTN 사장 내정자가 12일 오후 서울 시청 인근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 내정자는 복직기자들의 상처를 보듬겠다고 말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최남수 YTN 사장 내정자가 12일 오후 서울 시청 인근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 내정자는 복직기자들의 상처를 보듬겠다고 말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임 기자는 “자기가 MTN(머니투데이방송)에서 뭔가를 한 것을 내세워 YTN을 먹여 살릴 것처럼 얘기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우리가 왜 우리 싫다고 두 번이나 나가고 우리가 별로 의식하지도 않는 언론사에서 일한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하나”라고 비판했다.

‘말’이 아닌 ‘과거 행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조 기자는 “어떤 사람에 대한 평가를 그의 말로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전두환도 정의사회를 구현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최 내정자가 말로 평가를 받으려면 그 말을 충분히 실행할 만큼 신뢰를 얻어야 효력이 있는데 YTN에서 보여준 걸로는 레토릭에 그치지 않을까 싶다”라고 덧붙였다. 현 기자 역시 “최 내정자가 (내정 이후) 많은 말을 했는데 자신이 살아온 과거 행동을 미사여구로 덮으려 든다면 그건 약속이 아니라 기만”이라고 비판했다.

조 기자는 “우리가 특정인을 사장으로 밀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대신 부적격 인사에 대해 반대를 표명하는 게 우리의 권리이자 책임이고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내정자 반대투쟁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기자는 “중립적인 대주주 이사들로 구성해 사장공모절차를 다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YTN 측은 ‘사추위에서 평가한 장·단점, 항목별 점수 등은 빼고 명단만 이사회에 넘겼다’는 조 기자의 주장에 대해 관련 규정에 따라 사추위가 운영됐다고 밝혔다. YTN에 따르면 현 YTN 사추위 운영규정에는 사추위에서 이사회에 사장후보를 추천할 때 추천의결서, 선발경과요약서, 후보자가 제출한 서류를 함께 제출하도록 규정돼있고, 이에 따라 3가지 서류가 제출됐다. 또한 ‘후보자가 제출한 서류’에는 이력서, 자기소개서, 직무수행계획서가 포함돼있다. 따라서 YTN 측은 “‘사추위에서 평가한 장·단점, 항목별 점수’는 이사회에 전달할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사추위 운영규정에는 ‘위원회는 개인별 심사표 등 심사 내용은 공개하지 아니 한다’라고 명시돼 있어 점수를 공개하는 것은 규정 위반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기사 내용 추가 : 11월 15일 18시 30분]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