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병원 간호사 춤 강요 논란으로 촉발된 전국 간호사들의 열악한 근무실태와 관련해 이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지난 11일 ‘간호사, 의료인인가요? 하인인가요?’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전국 간호사 처우개선 청원(전국의 간호사/간호학생 올림) 내용에 따르면 “언론에 노출되고 공론화되기 전까지는 신규간호사를 대상으로 실시되는 장기자랑은 전국에 있는 병원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관행”이라고 밝히고 있다. 선정적인 춤 강요 논란이 성심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병원의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는 증언이다.

실제 간호사들이 송년회와 같은 행사에서 ‘장기자랑’이라는 이름으로 선정적인 춤을 추는 등 관련 영상은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서울지역 금천구에 위치한 H종합병원은 유튜브를 통해 병원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팀을 나눠 춤을 추는 영상을 올려놨다. 병원은 블로그를 통해서도 개원을 기념한 ’송년의 밤‘이라 무대에 올라 춤을 춘 모습이라고 소개했다. 인천지역 한 병원의 2016년 송년의 밤 행사에도 간호부 소속 여성들이 교복을 입고 춤을 추는 사진을 볼 수 있다. ‘병원’, ‘송년’, ‘장기자랑’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비슷한 사진과 영상이 넘쳐난다. 심지어 한 댄스학원이 사내 장기자랑을 위해 간호사들이 학원에 등록하고 춤을 추고 있다고 설명한 게시물도 찾을 수 있다.

춤 강요 문제가 성심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병원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관행일 가능성이 높아 추후 비슷한 폭로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사내 화합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송년회와 같은 행사에서 여성의 몸을 상품화시키는 것이 한국 직장 사회 문화의 고질병처럼 돼 있어 병원 뿐 아니라 다른 직군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례가 봇물처럼 쏟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대학병원 간호사는 “사내에서 장기자랑을 하면 관행적으로 야한 춤을 추는 걸 당연시 하는 문화가 있어 불편한 것도 사실인데 이번 기회에 이런 잘못된 문화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청원글에서 전국의 간호사 및 간호학생들도 “저희는 4년을 간호대학교에서 공부하고 간호사 국가고시를 통과한 면허증을 가지고 있는/있을 의료인이다”라며 “4년 동안 교수님들께 환자를 위한 간호, 환자를 위하는 나이팅게일의 정신을 배워오며 마음속에 작은 간호철학과 직업윤리의식을 배워왔다. 그러나 사회에 나가서 누구를 위한 혹은 왜 간호사라는 직업과 관련이 없는 행위를 하는지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이들은 “곯은 상처가 이제야 터졌다는 반응”이라며 근무환경과 간호사 인력난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무시간은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간호사들은 하루 8시간 이상, 심할 경우 14시간을 근무한다. 인력이 부족한데 해야할 일은 많기 때문이다. 초과근무를 해도 추가 수당을 받지 못하고 근무시간보다 더 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의례적”이라며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

흰색 간호사복에 대해서도 “환자분들의 피가 튀기도하고 소변이 튀기기도 한다. 흰색으로 된 근무복은 오염이 쉽게 될 수 있는 간호사의 근무 환경과는 맞지 않다”며 개선을 촉구했다.

선배간호사가 후배간호사들의 말과 행동을 트집 잡아 신체적,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태움’이라는 문화도 인력 부족 문제에서 비롯됐다면서 간호사 인력의 충원도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에 올라온 간호사 처우개선 청원글에 대한 추천은 이틀 만에 1만 2천여 명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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