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가 의처증으로 폭력을 일삼던 남성을 아내의 ‘불륜’에 괴로워하던 남편으로 묘사한 기사를 썼다가 정정보도문을 냈다.

지난 8월8일자 연합뉴스 기사는 다음의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했다. “저는 그저 가정을 지키고 싶었을 뿐입니다. 자식들한테 말도 못하고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기사 제목은 ‘법원, 15년간 외도 아내 통화내용 몰래 녹음한 남편 선처’였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2부가 진행한 국민 참여재판에서 피고인 A씨(61세)는 최후진술에서 눈물을 흘렸다. A씨는 아내의 불륜 증거를 잡으려고 2014년 2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스마트폰으로 아내의 통화내용을 다섯 차례 불법 녹취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숨겨놓고서 녹음 기능을 켜놓은 채 외출했고, 그 사이 아내가 다른 남성과 통화하는 내용을 몰래 녹음했다.

▲ 연합뉴스 보도화면 갈무리.
▲ 연합뉴스 보도화면 갈무리.
보도에 따르면 A씨가 아내의 ‘외도’를 알아챈 것은 2001년이었다. A씨는 2001년 아내가 다른 남성과 함께 차를 타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고 이후 그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지만 4년 뒤인 2005년에도 둘이 연락을 주고받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2013년에는 아내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한 남성과 다정하게 있는 모습을 보고 그 남성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2014년에는 외국에 나간 딸을 보고 오겠다던 아내가 아무런 언질도 없이 귀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의심이 깊어졌다고 했다. 모두 A씨의 관점에서 서술된 대목이다.

A씨는 불륜 증거를 잡으려고 녹음을 시작했고, 2015년 아내가 이혼소송을 제기하자 이혼 귀책사유가 아내에게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해당 녹음파일을 증거자료로 법원에 제출했다가 불법 녹취사실이 알려지게 돼 아내가 고소했다. 그 결과 검찰이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2년을 구형했다는 게 보도의 요지였다. 7명의 배심원단은 “범행 동기가 불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고, 범행 당시에는 큰 죄의식이 없었다고 보인다. 정상을 참작할만한 사유가 있다”며 구형량의 절반인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 평결을 내놓았다.

해당 보도는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지 않았고, 남편 A씨의 입장에서 쓰인 것과 다름없었다. 당시 연합뉴스 기사에는 “남편분만 억울한 사건”, “불륜 저지른 주제에 녹음했다고 고소를”, “아내가 너무하다”처럼 A씨를 지지하거나 A씨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댓글이 주로 달렸다. 하지만 추천을 가장 많이 받은 베스트 댓글은 “불륜 저지른 여성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사에) 없네요”였다. 정작 기사에서 불륜을 저질렀다고 묘사된 아내의 입장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3개월이 흐른 지난 7일 연합뉴스는 정정보도문을 냈다. 연합뉴스는 “사실관계 및 이혼소송 판결문 확인 결과, 아내가 15년간 외도를 했다는 것은 60대 남성의 일방적인 주장에 의한 것이었음이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게 된 이유도 아내의 외도 때문이 아니라 결혼 기간에 이유 없이 아내의 남자관계를 의심한 60대 남성의 의처증 및 아내에 대한 폭언·폭행 때문이었고, 이에 60대 남성은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아내에게 위자료 25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음이 확인돼 해당 기사를 바로 잡는다”고 밝혔다.

▲ 채널A 보도화면 갈무리.
▲ 채널A 보도화면 갈무리.
당시 채널A는 연합뉴스 보도를 바탕으로 “이혼의 책임이 아내에게 있음을 입증하려고 녹취파일을 증거로 제출했다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되레 역고소를 당한 것”이라며 남편 A씨의 입장에서 리포트를 냈다. SBS와 MBN, 세계일보와 중앙일보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언론사 역시 정정보도문을 내야 했다. 의처증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던 아내는 불과 3개월 전 연합뉴스 보도에 의해 ‘불륜을 저지르고 남편을 고소한 사람’으로 묘사되어 정신적 고통을 받았고, 이에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다.

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서울가정법원 이혼소송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지난 6월 두 사람의 이혼을 주문했다. 두 사람은 1981년 혼인관계가 되었는데, A씨는 혼인 초부터 아내의 남자관계를 의심해 여러 차례 폭행했고, 아내는 폭행을 피하기 위해 2003년 5월부터 7월까지 가정폭력피해자 보호시설에 입소하기도 했다. A씨는 2003년 6월 경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며 앞으로 아내에서 폭언, 폭행을 하거나 집착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작성했으나, 그 후에도 계속 아내를 폭행했고, 2013년 7월에는 아내가 운영하던 옷가게에 손님으로 온 남자와의 관계를 의심해 두 사람을 폭행하기도 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의 의처증과 폭행이 계속되자 아내는 2015년 남편을 피해 딸이 거주하고 있는 해외로 출국했다. 재판부는 혼인관계 파탄 책임을 두고 “혼인기간 중 아내의 남자관계를 의심하고 계속해서 아내를 폭행해 온 남편에게 있다”고 명확히 밝혔다. 남편의 불륜 주장에 대해서는 증거가 부족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연합뉴스 기자가 국민 참여재판에서 A씨가 보인 눈물어린 호소를 본 뒤 아내 쪽 입장을 취재하지 않고 기사를 쓰며 결국 오보로 이어지게 됐다. 이미 나와 있던 이혼소송 판결문만 확인했더라도 피할 수 있는 오보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