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노동부 고위관료를 통해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판정에 외압을 시도한 사실을 편집국에 보고했을 때 첫 반응은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동료 기자들 사이에서도 법원도 아니고 중노위에 일종의 민원을 한 것인데 부적절한 행위긴 하지만 과연 1면에 쓸 만한 가치가 있겠느냐는 얘기도 들었다. 다행히 한참 동안 설득 끝에 10월27일자 1면 톱으로 기사를 내보낼 수 있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보궐이사 2명을 선임한 것에 야당이 반발해 국감 보이콧을 선언한 직후라 더 의미가 있었다.

MBC가 국가기관인 중노위의 부동노동행위 판정을 막기 위해 외압을 행사한 것은 단지 언론윤리뿐 아니라 형사적으로 문제가 될 사안이다.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노위는 어떤 외압이나 부당한 영향력 행사도 허용해서는 안 되는 기관이다. 부당한 해고나 징계·차별·부당노동행위를 당한 노동자가 법원을 통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억울함을 하소연할 수 있는 준사법기관이기 때문이다.

▲ 김장겸 MBC 사장이 9월5일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에 출석한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 김장겸 MBC 사장이 9월5일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에 출석한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매년 1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지방노동위원회를 거쳐 중노위를 통해 권리구제를 시도하고 있지만 고질적으로 거론되는 문제는 판정의 공정성을 둘러싼 시비다. 특히 온갖 학연이나 지연, 대형 로펌을 동원해 공익위원들에게 부당한 청탁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인맥이나 자금 동원 면에서 노동자와 비교할 수 없는 우위를 가진 사용자들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공익위원들을 사전에 주물러 판정을 바꿔 놓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개별 사건별로 노동자위원, 사용자위원과 공익위원을 포함해 5명으로 심판부가 구성돼 심문을 진행하지만 판정 권한은 3명의 공익위원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주심 공익위원의 권한은 절대적이다. 밀실에서 3명의 공익위원이 모여 판정회의를 하지만 회의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속기록도 없기 때문에 은밀한 유혹에 넘어간 공익위원들의 석연찮은 행적은 사후에도 알기 어렵다.

이 점에서 MBC가 지난해 7월 중노위 공익위원에게 부당한 외압을 시도한 사실이 내 귀에 들어온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왜 그들은 이 비밀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했을까. 생각해보면 ‘공범자들’이 너무 많았다. 아직은 자세한 취재 과정을 공개할 수 없지만 MBC는 공익위원을 직접 접촉하지 않고 당시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을 비롯해 노동부 고위 관료들을 통해 청탁을 했다. 공익위원뿐 아니라 담당 조사관에게도 부당한 지시가 내려간 정황이 확인됐다. 수많은 부정한 청탁의 사슬 구조에서 누구 한 명 입만 뻥끗해도 치명적인 비밀이 외부로 유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제보 내용에 대한 확인을 요구했을 때 공익위원이 순순히 노동부 고위 관료를 통한 외압을 털어놓은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을 것이다. 공익위원 입장에서는 자신 혼자서 입을 다문다고 비밀이 지켜지기 어렵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장관도 그렇고 국장도 그렇고 난감했다고 하더라. MBC에서 난리를 치니까. 그러게 읍소하면서 굉장히 강하게 억울하다는 식으로 말을 하더래요. 노동부 입장에서는 그냥 무시할 수 없으니까 중노위에서 한 번만 더 검토해 달라고 한 거죠”

▲ 강진구 경향신문 탐사보도팀장
▲ 강진구 경향신문 탐사보도팀장

한마디로 박근혜 정권 시절 MBC는 부당한 권력에 대한 굴종을 넘어 스스로 오만한 권력이 돼 있었던 셈이다. 공익위원과 통화가 끝난 후 20년 전 서초동 기자실에서 동고동락했던 MBC 최기화(전 보도국장) 선배에게 착잡한 심정을 담아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일체 그런 사실 없습니다’라는 짤막한 답변이 돌아왔다. 김재철·안광한에 이어 김장겸 사장을 거치면서 MBC는 이미 언론기관으로서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돼 있었다.

▲ 2014년 8월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소속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세월호 보도 참사’를 현장조사하기 위해 MBC 상암옥 사옥을 방문했지만 직원과 청경들에 의해 사옥 안에 한 발자국도 들어가지 못했다. 왼쪽이 최기화 당시 MBC 기획실장. 사진=미디어오늘
▲ 2014년 8월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소속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세월호 보도 참사’를 현장조사하기 위해 MBC 상암옥 사옥을 방문했지만 직원과 청경들에 의해 사옥 안에 한 발자국도 들어가지 못했다. 왼쪽이 최기화 당시 MBC 기획실장. 사진=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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