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노동부 고위관료를 통해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판정에 외압을 시도한 사실을 편집국에 보고했을 때 첫 반응은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동료 기자들 사이에서도 법원도 아니고 중노위에 일종의 민원을 한 것인데 부적절한 행위긴 하지만 과연 1면에 쓸 만한 가치가 있겠느냐는 얘기도 들었다. 다행히 한참 동안 설득 끝에 10월27일자 1면 톱으로 기사를 내보낼 수 있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보궐이사 2명을 선임한 것에 야당이 반발해 국감 보이콧을 선언한 직후라 더 의미가 있었다.
MBC가 국가기관인 중노위의 부동노동행위 판정을 막기 위해 외압을 행사한 것은 단지 언론윤리뿐 아니라 형사적으로 문제가 될 사안이다.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노위는 어떤 외압이나 부당한 영향력 행사도 허용해서는 안 되는 기관이다. 부당한 해고나 징계·차별·부당노동행위를 당한 노동자가 법원을 통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억울함을 하소연할 수 있는 준사법기관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MBC가 지난해 7월 중노위 공익위원에게 부당한 외압을 시도한 사실이 내 귀에 들어온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왜 그들은 이 비밀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했을까. 생각해보면 ‘공범자들’이 너무 많았다. 아직은 자세한 취재 과정을 공개할 수 없지만 MBC는 공익위원을 직접 접촉하지 않고 당시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을 비롯해 노동부 고위 관료들을 통해 청탁을 했다. 공익위원뿐 아니라 담당 조사관에게도 부당한 지시가 내려간 정황이 확인됐다. 수많은 부정한 청탁의 사슬 구조에서 누구 한 명 입만 뻥끗해도 치명적인 비밀이 외부로 유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제보 내용에 대한 확인을 요구했을 때 공익위원이 순순히 노동부 고위 관료를 통한 외압을 털어놓은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을 것이다. 공익위원 입장에서는 자신 혼자서 입을 다문다고 비밀이 지켜지기 어렵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장관도 그렇고 국장도 그렇고 난감했다고 하더라. MBC에서 난리를 치니까. 그러게 읍소하면서 굉장히 강하게 억울하다는 식으로 말을 하더래요. 노동부 입장에서는 그냥 무시할 수 없으니까 중노위에서 한 번만 더 검토해 달라고 한 거죠”
한마디로 박근혜 정권 시절 MBC는 부당한 권력에 대한 굴종을 넘어 스스로 오만한 권력이 돼 있었던 셈이다. 공익위원과 통화가 끝난 후 20년 전 서초동 기자실에서 동고동락했던 MBC 최기화(전 보도국장) 선배에게 착잡한 심정을 담아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일체 그런 사실 없습니다’라는 짤막한 답변이 돌아왔다. 김재철·안광한에 이어 김장겸 사장을 거치면서 MBC는 이미 언론기관으로서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