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김어준의 블랙하우스’가 방송됐다. 파일럿 프로그램이지만 정규편성 가능성이 높다. 동시간대 시청률 1위라는 성적과 방송 전후 이슈 파급력 등을 감안하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를 이렇게 프로그램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곤란하다. 프로그램 외적인 요소, 즉 ‘김어준’과 ‘주류 언론’의 역할 등을 연관시켜 바라볼 때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는 방송의 형식과 내용 모두 정통 지상파 방식에서 벗어나 있다. 팟캐스트 형식을 차용해 지상파에 적용했다는 얘기다. 형식만 변용시킨 게 아니라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기존 지상파와 궤와 결을 달리했다. 주류 언론이 외면한 사안을 지상파로 끌어올렸고, 전통적인 인터뷰 방식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함을 선보였다. 김어준은 ‘블랙하우스’를 통해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주류 언론에 일종의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 지난 11월4일 첫 방송된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 지난 11월4일 첫 방송된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사실 일부 프로그램을 제외하곤 현재 지상파 시사프로그램은 존재의미를 잃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사프로그램이 방송되기 전, 시청자들 관심을 이렇게 많이 받았던 게 언제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옛날 일’이 됐다. 이명박근혜 정부 9년 동안 지상파 시사프로그램은 암흑기나 마찬가지였다. ‘주류 언론인’들은 파헤쳐야 할 사안을 회피했고, 질문해야 할 대목에선 눈치를 보거나 주춤거렸다. 막대한 조직과 인력을 갖춘 방송사였지만 그들은 ‘비주류 팟캐스트 방송’보다 존재감이 없었다. 시청자들이 외면한 결과였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는 침체상태인 지상파 시사프로그램에 충격파를 던졌다. 이제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이 ‘정통이냐 아니냐’를 따지지 않는다. 프로그램 전달자가 ‘정통 언론인이냐 아니냐’ 역시 따지지 않는다. 시청자들이 궁금해 하는 사안을 제대로 전달해주는 사람, 질문해야 할 대상에게 정확히 질문을 던지는 사람을 주목한다. 지난 9년 간 ‘주류’와 ‘정통’을 강조하며 언론인 명함만 앞세웠던 사람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주류와 비주류간 경계는 이미 오래 전에 무너졌다. 그것을 상당수 ‘주류 언론인’들만 모를 뿐이다.

일부 언론은 이런 현상을 못마땅해 한다. 불편해하는 기색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방송인’ 김어준에게 쏟아지는 대중의 관심과 주목 역시 폄훼로만 일관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대표적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7일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를 향해 ‘나꼼수식 막말이 지상파에서 난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전문가 입을 빌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송에 기우는 성향이 있다”고도 했다.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은 해당 언론사 자유지만 ‘막말 난무’와 같은 비판을 조선일보가 할 자격이 있는지 먼저 자문해봤으면 싶다.

그동안 패널들의 막말과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재를 수차례 받았던 대표적인 종편이 TV조선이기 때문이다. ‘나꼼수’를 비난한 조선일보가 최근 ‘나꼼수’ 멤버 가운데 한 명인 정봉주 전 의원을 진행자로 영입한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김어준에 대한 비난보다 그동안 ‘정통 언론’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지난날의 과오에 대해 반성하는 게 우선 아닐까.

‘김어준 열풍’에 대한 불편한 시각은 비단 보수신문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다. 개혁진보 진영 일각에서도 현재의 ‘김어준 열풍’을 불편하게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존재한다. 이들은 김어준과 같은 ‘비정통 언론인’이 사안을 엄밀하게 분석하고 추적하기보다 지나치게 대중적 호기심에 기대어 음모론을 확산시키고 있다고 우려한다.

물론 이런 우려와 비판은 일정부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이나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끈질긴 추적보도는 주류언론이 아니라 ‘비주류 방송인’이나 ‘해직언론인’ 다큐멘터리를 통해 나왔다는 점이다. 지난 9년간 권력자 앞에서 주류언론은 질문도 제대로 못한 채 침묵했다. 하지만 비주류·비정통 언론인들은 끊임없이 권력자들이 불편해할 만한 사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질문을 던져왔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가 주류 언론에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도 이런 부분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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