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박연차게이트 수사를 지휘하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환조사했던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59)이 7일 기자들에게 입장문을 보내 ‘해외도피설’에 선을 그으며 조사요청이 오면 언제든 귀국해 조사를 받겠다고 밝혔다. 논두렁 시계사건 보도와 관련해선 국가정보원의 잘못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지난 8월 출국해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이다. 최근 들어 자신을 향한 여론이 악화되자 직접 기자들에게 입장을 밝혀 해명하는 쪽으로 여론전에 나서는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인규 전 부장은 입장문을 통해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일을 한 사실은 전혀 없다”고 주장했으며 “만일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해 제가 잘못한 점이 있어 조사 요청이 오면 언제든지 귀국해 조사를 받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자신의 상황을 두고 “일하던 로펌을 그만 둔 후 미국으로 출국해 여러 곳을 여행 중에 있다”고 밝혔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의 잘못을 회피하기 위해 해외로 도피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해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일은 없었으며 검사로서 소임을 다했을 뿐”이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수부장. ⓒ노컷뉴스
▲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수부장. ⓒ노컷뉴스
논두렁 시계사건 보도와 관련해선 국가정보원의 잘못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수사 중인 2009년 4월14일 퇴근 무렵 국정원 전 직원 강 모 국장 등 2명이 저를 찾아와 원세훈 전 원장의 뜻이라며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하되,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노 전 대통령에게 도덕적 타격을 가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내용은 당시 2009년 5월7일자 조선일보를 통해 일부 보도되기도 했다.

이인규 전 부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국정원이 노 전 대통령 시계 수수 관련 수사 내용을 어떻게 알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들의 언행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화가 난 제가 ‘원장님께서 검찰 수사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오전 기자 브리핑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려 감사한 마음을 표시하겠습니다. 원장님께도 그리 전해 주십시오’라고 정색하며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강 국장 등이 크게 놀라면서 ‘왜 이러시냐?’고 하기에 내가 화를 내면서 ‘국정원이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이냐?’고 강하게 질책했다. 강 국장 등 2명은 ‘자신들이 실수한 것 같다면서 오지 않은 것으로 해 달라’고 하고 사죄한 뒤 황급히 돌아갔으며 나는 이러한 사실을 위에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본인은 ‘공모자’가 아니라, 오히려 국정원의 ‘수사개입’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고 강조하는 대목이다.

그는 “그 후 2009년 4월22일 KBS에서 ‘시계수수 사실’ 보도, 같은 해 5월13일 SBS에서 ‘논두렁에 시계를 버렸다’는 보도가 연이어져, 국정원의 소행임을 의심하고 나름대로 확인해 본 결과 그 근원지가 국정원이라는 심증을 굳히게 되었다”고 밝혔으며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2015년 2월23일 경향신문 기자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검찰이 시계수수 사실을 흘려 망신을 준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보도하지 않을 것을 전제로 국정원의 노 전 대통령 논두렁 시계 보도 관련 사실을 언급했는데 (경향신문이) 약속을 어기고 보도한 것”이라 주장했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입장문의 행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해선 국정원을 수사하라. 나는 잘못이 없으니 그냥 잊어달라’는 의도가 담겨있다. 그러나 스스로 귀국해서 조사에 응하지 않는 한 그를 둘러싼 언론보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8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검 중수부에 출석했을 당시, 변호인으로서 마주했던 장면을 이렇게 남겼다.

“이인규 중수부장이 대통령을 맞이하고 차를 한잔 내놓았다. 그는 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이인규 전 부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보낸 입장문 첫 머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 도중 세상을 달리하신 것은 진실로 가슴 아픈 일”이라고 언급했다. 그의 ‘다급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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