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스공사·현대상사·효성그룹 일가가 조세도피처에 유령회사를 세워 조세를 회피한 정황이 드러났다.

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 언론인협회(ICIJ)와 공동으로 버뮤다 등 조세도피처에서 활동하는 로펌 애플비(APPLEBY)의 내부 자료를 입수해 6일 오전 공개했다.

이번 자료 역시 지난해 조세도피처 파나마의 로펌 모색 폰세카의 문건을 입수했던 독일 언론 ‘쥐트도이체 차이퉁’이 입수해 ICIJ에 공동 취재를 제안했다.

▲ 효성파워홀딩스는 2006년 조세도피처인 케이맨아일랜드에 효성이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로 알려졌다. 사진=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 효성파워홀딩스는 2006년 조세도피처인 케이맨아일랜드에 효성이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로 알려졌다. 사진=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애플비와 아시아시티 등 두 역외로펌 유출 자료 규모는 1.4TB(테라바이트), 애플비 자료 680만 건 등 1350만 건에 이른다고 뉴스타파는 전했다. 이번 자료에는 한국 기업뿐 아니라 미국 대통령, 캐나다 총리 최측근, 영국 여왕, 세계적인 스타 등의 명단도 등장해 향후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가스공사-현대상사의 수상한 거래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애플비 자료에서 한국가스공사와 현대상사의 수상한 거래 정황이 드러났다. 예멘 마리브 지역 천연가스를 개발하기 위해 만든 회사 예멘LNG(YLNG)에는 현대상사, 한국가스공사 등 한국기업이 지분 참여를 하고 있다. 건설 자금을 대고 판매 수익을 배당받는 구조인데 2006년 현대상사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이를 공기업인 가스공사가 지원하기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간접적으로 현대상사 지분 절반가량을 사들인 것이다.

▲ 한국가스공사와 현대상사의 거래는 국내가 아닌 영국령 버뮤다에서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이루어졌다. 사진=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 한국가스공사와 현대상사의 거래는 국내가 아닌 영국령 버뮤다에서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이루어졌다. 사진=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가스공사는 해당 거래에 대해 “이중과세를 피하기 위해서”라고 뉴스타파에 답했다. 가스공사 지분을 신설 회사에 넘기고 신설 회사가 현대상사에 다시 넘기는 두 번의 과정에서 세금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뉴스타파는 거래 당시 이중과세를 막기 위해 세금을 감면해주는 국내법이 있었지만 아예 세금을 면제받기 위해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스타파가 국내법에 대해 다시 묻자 가스공사 측은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자는 것은 현대상사 측 제안이었으며 세금을 모두 납부할 경우 이는 자동적으로 요금에 반영돼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되기 때문이라고 말을 바꿨다.

또한 현대 예멘LNG 2011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상사가 예멘LNG 지분을 사들일 때 가격이 약 167억 원이다. 약 절반을 가스공사에 넘겼으니 가스공사가 약 82억 원만 지불하면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스공사가 현대상사에 지불한 금액은 470억 원에 이른다.

가스공사 측은 뉴스타파 질문에 2007년부터 10년 간 현대상사가 지출한 금액 전체 중 약 절반을 지불했다고 해명했다. 많은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해 비싸게 주고 산 건 아니라는 게 가스공사 해명이었지만 뉴스타파는 “지난 2015년 발발한 예멘 내전으로 예멘 LNG 가동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배당금 수입은 중단됐으며 현재 현대 예맨 LNG에 대여한 돈 가운데 223억 원은 회수하지 못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1심 유죄 효성 일가, 또 연루

조세도피처를 통한 탈세와 횡령 혐의로 지난해 초 조석래 효성그룹 전 회장과 아들 조현준 현 회장은 유죄를 선고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조 회장 일가가 어떻게 조세도피처를 악용했는지 드러났다. 이런 가운데 애플비 자료에 효성그룹이 또 등장했다. ‘효성 파워 홀딩스’라는 회사는 2006년 2월 조세도피처인 케이맨아일랜드에 설립됐으며 효성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회사라고 뉴스타파는 전했다.

해당 회사 이사 명단에는 조 전 회장 차남인 조현문이란 이름이 등장했다. 그는 미국 변호사로 조석래 일가 조세도피처 설립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인물이라고 알려졌다.

자료에 따르면 그는 2008년 8월부터 최소 2013년 3월26일까지 이 페이퍼컴퍼니 이사로 재직한 것으로 돼 있다. 취재진은 전·현직 효성 임원에게 이에 대해 물었지만 이 회사의 존재조차 모른다고 답변했다.

▲ 효성그룹의 페이퍼컴퍼니인 효성 파워 홀딩스 관련 국내 공시자료와 애플비 자료 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진=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 효성그룹의 페이퍼컴퍼니인 효성 파워 홀딩스 관련 국내 공시자료와 애플비 자료 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진=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효성그룹 공시자료에 따르면 효성 파워 홀딩스 자산은 706억 원이라고 돼 있지만 애플비 문서에는 882억 원이라고 돼 있다. 효성 일가에 대한 2심이 진행되는 가운데 한 회사에 대한 두 개의 다른 자료의 수상한 점을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편, 북한 사람 이름도 이번 자료에서 발견됐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의 초대 상무장관인 윌버 로스 등 트럼프 대통령 최측근과, 대선 당시 트럼프에게 고액을 후원한 재계 인사들이 대거 발견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일부 인사들이 조세도피처에 만든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국제 제재 대상이던 러시아 자본과 은밀한 거래를 통해 큰돈을 번 사실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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