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구회사 한샘의 신입사원 성폭행 사건 기사가 쏟아지는 와중에 함께 쏟아지는 기사가 있다. 한샘의 ‘11월 감사대전’ 할인 홍보 기사다. 기업에 부정적인 뉴스가 터질 때, 사건과 관련 없는 ‘홍보 보도자료로 기사 밀어내기’를 시도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우연의 일치로 행사와 부정적 이슈가 겹칠 수도 있다. 하지만 큰 이슈가 터졌을 때, 독자들은 궁금한 기사 대신 홍보기사를 보게 되고, 이는 비판의 여지가 된다. 기자들은 “사건과 관계없이 출입처 관리 차원에서 기사를 쓰는 시스템”이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한샘 성폭행 피해자가 맨 처음 ‘네이트판’에 글을 올린 것은 10월29일 새벽 3시 경이다. 하지만 이후 피해자의 글은 지워졌다. 그러나 몇몇 커뮤니티와 트위터 등에서 구글 서버에 남은 피해자의 글 기록을 전달했고, 11월3일 이후 공론화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 한 블로그에서 한샘 성폭행 피해자 글을 전달하는 게시물. 한샘 사건은 기사가 나오기 전부터 피해자가 네이트판에 썼다가 지운 글이 공유되면서 퍼지고 있었다.
▲ 한 블로그에서 한샘 성폭행 피해자 글을 전달하는 게시물. 한샘 사건은 기사가 나오기 전부터 피해자가 네이트판에 썼다가 지운 글이 공유되면서 퍼지고 있었다.
11월3일 ‘한샘 직원, 동료 여직원에 성폭행 파문…경찰 수사 중’(뉴스1) 등 오후 6시부터 한샘 성폭행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이미 여러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해당 기사가 나오기 전인 3일 오전부터 한샘 성폭행 관련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그러나 3일 오후 3~4시에 나온 기사는 성폭행 기사가 아니라 ‘한샘 11월 감사대전…가구·생활용품 최대 60% 할인’ 기사였다.

소위 이런 행위를 ‘보도자료로 기사 밀어내기’라고 한다. 기업에 부정적 기사가 쏟아질 것이라 예상되는 시기 기업 홍보팀은 보도자료를 뿌리고 부정적 기사를 덮으려 한다. 하지만 독자들은 이제 포털 사이트의 기사 외에도 커뮤니티 등에서 사건을 미리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이런 기사들이 ‘부정적 기사 밀어내기용’이란 것도 알아차리고 있다.

11월3일 오후 3시 51분 송고된 연합뉴스의 ‘한샘 11월 감사대전…가구·생활용품 최대 60% 할인’기사의 댓글만 봐도 그렇다. 한샘의 할인 홍보 기사지만 댓글이 2600개 이상이 달렸다. 대부분의 댓글은 “묻힐 줄 생각하지 마세요. 빠른 피드백 갖고 오세요”, “강간 사건 터지니까 할인하네요. 대단한 우연이네요”, “기사 좀 올려주세요. 강간 성폭행 관련 기사요. 어떻게 하나도 없을 수가 있나”와 같은 내용이다.

▲ 연합뉴스의 '한샘 11월 감사대전'관련 기사와 그 댓글.
▲ 연합뉴스의 '한샘 11월 감사대전'관련 기사와 그 댓글.
한국에서 누구나 알 만한 회사에서 성폭행 사건이 터졌는데, 기사가 나오지 않는다. 알고 싶은 내용의 기사는 없고 홍보 기사만 마주치게된다. 한샘 할인 홍보 기사는 11월3일~4일 이틀 동안 33건이 보도됐다. 성폭행 관련 기사가 나와도 홍보 기사는 계속 나온다. 이런 보도 행태를 보며 독자들은 “성폭행 사건에 대해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데도 기자들은 그저 보도자료를 베끼기에 바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경제지 기자들은 “사건의 흐름과 관련 없이 출입처 관리 차원에서 보도자료를 기계적으로 쓰는 시스템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 경제지 A 기자는 “경제지 기자와 기업의 커넥션으로 볼 것까지는 없을 것 같다. 출입처에서 나온 보도자료니까 기계적으로 받아쓰는 것”이라며 “너도나도 다 받아쓰니 관리 차원에서 별생각 없이 쓰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 기자는 “데스크에서 ‘보도자료 하나 써주자’ 하는 경우도 있고, 출입처에서 부탁하니 기자 스스로 쓰는 경우도 있다”라며 “어차피 이런 경우는 기업 입장에서도 밀어내기 효과를 거두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안 할 순 없으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제지 B 기자 역시 “한샘 사건의 경우 어차피 성폭행 사건은 사회부에서 처리하니까, 산업부 소속 기자들은 평소처럼 보도자료를 쓰는 것”이라며 “평소 일하던 것처럼 보도자료 나오면 다 쓰는 거다. 어떤 큰 의도를 가지고 기사를 써주는 차원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기자들의 입장에서는 매일 하던 일을 처리하는 것뿐이지만 결과적으로 중요한 기사를 밀어내는 효과를 거두게 한다. 한 종합일간지 C 기자는 “하루 이틀 지나고서는 기사들이 어차피 나오니까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커뮤니티 등에서 이미 떠도는 이야기들이 한참 후에나 기사가 되고, 그 사이 ‘한샘 성폭행’을 검색했던 독자들은 홍보기사만 보게 된다”며 “기자들은 매일 하던 일을 기계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독자들이 ‘홍보자료로 중요한 이슈 덮기’로 생각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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