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수사가 연일 확대되고 있으나 조선일보가 과거 정부마다 있었던 관행이라며 폄하에 나서고 있다. 특히 최보식 조선일보 선임기자는 어느 정권에서나 집권한 뒤 뜻을 이루기 위해 편법과 변칙을 썼다며 지난 정권 전체를 적폐로 몰 수 없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궤변이라는 반박이 나오고 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잘못된 관행 속에 기득권을 누리고 호가호위하던 세력의 아우성을 대변하는 낡고 초라한 언론이라고 비판했다.

최보식 조선일보 선임기자는 3일자 조선일보 38면 ‘최보식 칼럼-역사라는 게 이렇게 초라한 것인가’에서 현 정부의 적폐청산 활동에 대해 “지금은 보수 정권이 다시 못 나오게 아예 씨를 말리겠다고 작심한 것으로 비친다”며 “정말 ‘혁명(革命)’을 하는 것처럼 청와대 캐비닛 문건을 뒤지고 국정원 메인 서버까지 열었다.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마다 ‘적폐 청산’ 실적을 올리기 위해 스스로 과거의 행적을 고백하고 있다”고 썼다. 그는 적폐나 부조리의 발표를 두고도 “필요한 타이밍마다 과거 청와대나 국정원의 문건을 언론에 흘린다”며 “정말 탁월한 언론 감각과 홍보 역량”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최 선임기자는 부패한 관행도 합리화하는 주장을 폈다. 그는 “정권을 잡으려는 것은 자신들이 옳다는 방향으로 나라를 끌고 가기 위해서”라며 “이를 위해 대통령의 통치 행위가 있고, 검찰·국정원·국세청 등 권력기관이나 간혹 대기업까지 동원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보수 정권은 그 나름대로 자신이 옳다는 보수 가치와 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위해 그렇게 했을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편법과 변칙이 있었을 것”이라고 합리화했다.

최 선임기자는 “그런 편법과 변칙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진보 정권 시절에도 써왔고, 아마 현 정권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권력의 속성이고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편법과 변칙이 권력의 속성이자 정치적 행위라는 주장을 칼럼에서 노골적으로 펴고 있는 것이다.

▲ 최보식 조선일보 선임기자. 사진=조선닷컴
▲ 최보식 조선일보 선임기자. 사진=조선닷컴
그는 이어 “권력이란 그런 것”이라며 “어떤 권력도 투명하거나 순수할 수가 없다”고 훈계했다. 최 선임기자는 “이런 권력의 세상을 알면 지난 정권 전체를 ‘적폐’로 몰 수가 없는 것”이라며 “지금은 정권의 국정 방침에 따라 제도와 직책에서 관행적으로 해왔던 업무 행위까지 심판대에 세우고 있는 것”이라는 결론을 냈다.

심지어 최 선임기자는 국정원 전직 간부가 정국 안정을 위해 좌파 성향 유언비어와 선동 글을 막는 것도 직무에 속했다고 두둔했다. 그 간부가 댓글 외곽팀과 보수단체에 국정원 예산 10억 원을 지원해 ‘국고손실죄’ 죄목으로 구속된 사실과, 문 대통령이 건설 중이던 신고리 5‧6호기 원전을 법적 근거없이 중단시켜 1000억 원 이상 날린 사실을 나란히 비교했다. 최 선임기자는 “이런 경우에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며 “현 정권은 그런 국정원 간부의 적폐와는 ‘클래스’가 다르다고 보는 것 같다. 과연 1000억원 이상 공중에 날려버린 자신들의 행위는 ‘정의’이며 ‘공공선’을 위한 것이라고 홍보했다”고 주장했다.

정부 비판 목소리를 유언비어라 뒤집어씌우고 댓글을 달아 여론을 조작하는 일은 이 자체가 ‘정치개입 금지’를 규정한 국정원법 위반이며, 선거법 위반으로 판결이 났다. 불법을 상급자가 지시해서 이행했다고 정당한 직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그렇게 위법을 저지르는 과정에서 생긴 국고손실과 원자력정책에 따른 손실을 동일한 위치에 놓고 비교하는 것이 합당한 논리인 것인지 의문을 낳을 수밖에 없다.

최 선임기자는 칼럼 뒷부분에는 돌연 1995년 김춘수 시인과의 만남에서 들은 얘기를 옮기면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경고를 하기도 했다. 김춘수 시인이 전두환 정권에서 얻은 전국구 국회의원을 한 뒤 교단에 돌아오려 할 때 학생들이 ‘어용학자 물러가라’고 방해했을 때의 사연이다. 김 시인이 학생들에게 왜 그러냐고 묻자 학생들이 ‘역사에 반동을 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김 시인은 ‘역사라는 게 이렇게 초라한 것인가’ ‘역사는 저런 애들이 만드는구나’라고 느끼고 사표를 썼다고 한다. 최 선임기자는 “좋은 말을 너무 자주 외치면 그걸 이용하는 무리가 생긴다”며 “문 대통령도 이 뜻을 알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 궤변에 불과하다는 반론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이자 적폐청산위원을 맡고 있는 박용진 의원은 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합리적인 지적과 우려라기보다는 기득권층의 잘못된 관행 속에서 호가호위하고 호위호식했던 사람들의 아우성을 대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칼럼”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문 대통령 인식에도 공감하지만, 특정인과 정치세력을 향한 공격으로 가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도 공감한다”며 “그럼에도 문제를 드러내고 잘못 지적하는 일은 단호하게 계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적폐청산을 두고 혁명하는 것 같다는 최 선임기자 주장에 대해 박 의원은 “지금 상황을 혁명적 상황으로 규정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우선 왜 이런 상황이 오게 됐을까부터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또한 혁명적 상황이라 볼 수도 없다. 국민의 의식수준을 따라오지 못한 정치 권력기관의 문화 지체현상에서 생겨난 파열음을 바로잡는 과정일 뿐 이 과정을 정치적 프리즘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반박했다.

▲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적폐청산위원. 사진=이치열 기자
▲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적폐청산위원. 사진=이치열 기자
박 의원은 “지금도 국정원 하듯이 하면 되겠느냐”며 “다시는 민간인사찰, 야당탄압을 위해 권력기관을 동원하는 것을 못하게 해야지 (최 기자 주장대로면) 똑같이 하라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박 의원은 “쌓아있는 쓰레기 더미와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며 “역사가 초라한 것이 아니라 언론인의 인식이 초라하고 낡은 인식”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편법과 변칙이 권력의 속성이라는 최 선임기자의 주장에 대해 박 의원은 “궤변처럼 보이는 주장”이라며 “최 기자의 주장이 ‘지나치면 아니함만 못하니 법과 제도 안에서 시스템을 바꿔나가자’는 것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모든 행위를 권력과 정치의 프리즘으로만 들여다보면서 위법한 행위와 국기문란조차 놔둬야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를 바로잡는 것에 반대한다는 것으로 비춰지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국정원 간부의 외곽 댓글 지시에 10억 원을 쓴 국고손실죄와 문 대통령의 신고리 5,6호기 중단으로 생긴 1000억 원 손실을 동일한 잣대로 비교한 것을 두고 박 의원은 “궤변이다.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고 비판했다.

김춘수 시인의 사례를 든 것에 대해 박 의원은 “자꾸 지금 상황을 혁명적 상황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만약 이렇게 부패한 구조를 그대로 놔두고 바로잡지 않으면 최 기자가 두려워하는 혁명 상황이 진짜 벌어질 수 있을 것”이라며 “(적폐청산 활동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것처럼 얘기하고 싶은지 모르겠으나 별로 공감이 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편, 조선일보는 앞서 지난 2일자 칼럼 만물상에서도 최재혁 논설위원이 “청와대 수석들은 사람들과 만나 밥을 먹어야 했다. 모두가 활동비 조달에 허덕였다. 그럴 때 '국정원장 업무추진비'가 쉽게 눈에 들어왔을 것”이라고 관행임을 강조했다.

▲ 조선일보 2017년 11월3일자 38면
▲ 조선일보 2017년 11월3일자 38면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