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참 답 없는 양반이네.”

“TV조선은 없애야 하는 곳인데 거길 가면 어쩌자는 건가.”

“손석희옹처럼 소신 있게 잘 하리라 믿습니다. 안 그러면 안티 들어갑니다.”

정봉주 전 국회의원이 TV조선 교양 프로그램 ‘시그널’ 진행을 맡게 됐다. 누리꾼 반응은 나뉘었다. TV조선 비판과 더불어 정 전 의원에 대한 실망이 한 축이다. 일단은 반대하지 않겠지만 ‘지켜보겠다’가 또 다른 한 축이다. 환영하는 반응은 찾기 어렵다.

6년 전, 정 전 의원은 MBN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했다가 취소한 적이 있다. 그는 2011년 12월2일 “잠시 판단을 잘못한 것 같네요”라며 “민주언론상까지 받은 입장에서 종편 출연은 아닌 것 같다는 주변 권고를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조건’ 때문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정 전 의원은 “출연료를 많이 줘서 TV조선으로 간다? 다른 프로그램들 줄 서 있다”고 일축했다. 실제 그가 출연하거나 진행을 맡고 있는 TV프로그램만 3개다. 라디오와 팟캐스트도 진행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전 국회의원’ 보다 ‘방송인’ 수식이 어울려 보이기도 한다. 이런 의견에 그는 “묶여있지만(그는 2021년까지 피선거권이 없다) 제 나름대로 정치를 하고 있다”며 “풀리면 지금 잠재적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사람들, 제가 다 누릅니다”라고 말했다. 특유의 ‘깔대기’는 여전했다.

지난 1일 서울 양천구 목동 SBS 본사에서 라디오 녹음을 끝낸 정 전 의원을 만났다. 아래는 1문1답이다.

▲ 정봉주 전 국회의원이 11월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정봉주 전 국회의원이 11월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요즘 방송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바쁘겠다.

“보통 새벽 4시에 잠들고 새벽 5시50분에 일어난다. 새벽 4시까지는 주로 자료를 본다. 내가 진행하는 방송은 크게 어렵지 않다. 패널로 들어가는 방송이 어렵다. 채널A ‘외부자들’과 tvN ‘유아독존’에 패널로 출연한다. 거의 일주일 내내 준비한다. 부족한 잠은 주로 이동하면서 채운다.”

- TV조선 시그널 진행을 맡게 됐다. 비판 여론이 많다.

“제안이 들어왔을 때 친한 조선일보 기자들에게 먼저 물어봤다. 의견이 갈렸다. 조선일보 기자들도 TV조선 이미지에 대해서 우려했다. 언론 운동했던 사람들에게도 물어봤다. 의외로 찬성하더라. 한겨레와 TV조선이 ‘콜라보’하는 세상이 왔는데 방송국 이미지 보다는 프로그램을 보라는 거다. 그래서 하기로 했다.”

-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예전부터 이런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다. 실제 감옥에서 나온 직후에 외주제작사와 함께 민원해결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현대판 암행어사, 정봉주가 간다’ 프로그램 기획서를 방송국에 넣었다.(웃음) 어떤 방송국에서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 TV조선에서 비슷한 기획을 제안한 것이다.”


- 민원 해결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뭔가.

“정치는 큰 담론으로 간다. 계층문제, 계급문제, 복지문제. 물론 그게 맞다. 제도가 바뀌어야 많은 걸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어려운 사람은 있고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있다. 제도의 사각지대도 존재한다. 이런 것을 알려서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고 주변에서 신고해서 이런 상황이 좀 사라지게 하고 싶었다.”

- TV조선이라서 갈등했다면 직접 기획을 한 다음, 다른 방송국에 가도 되지 않나?

“나는 SBS 라디오와 tbs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다. 이때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 의원들이 오면 상대적으로 발언 기회를 더 많이 준다. 진행자로서 중립을 지키려고 하지만 제 관점 자체를 아예 드러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3:2 구도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채널A 외부자들이나 TV조선 시그널도 비슷한 맥락이다. 국정농단을 한 세력은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들을 지지하는 모두가 다 문제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 지지층에게 다른 이야기도 좀 들려줘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 사람들이 한겨레나 JTBC를 억지로 보지 않는 한 다른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없다.”

▲ TV조선 시그널
▲ TV조선 시그널

- 그걸 자신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의견을 알아야 한다. 알리려면 듣거나 보게 해야 한다. 듣거나 보게 하려면 재미있게 해야 한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그널을 통해서 TV조선만 보던 사람들이 조금 더 다양한 이야기를 부담 없이 듣고, TV조선을 보지 않던 사람들도 시그널을 보게 하고 싶다. 그 ‘브리지’를 정봉주가 하면 되지 않겠나.”

- 일각에서는 돈 때문에 TV조선 프로그램을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더라.

“지금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 출연료 조금 더 주겠다? 다른 프로그램들 줄 서 있다. 게다가 직전에 훨씬 더 좋은 조건으로 TV조선에서 예능 프로그램이 들어왔다. 안 한다고 했다. 내가 아니어도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시그널은 방송국이 어디든지, 우리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다.”

- 이야기 범위를 넓혀보자. 요즘 ‘나는 꼼수다’ 멤버들이 모두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니까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나꼼수는 이미 2011년에 1000만 15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그런 방송을 했던 사람들이 그동안 방송을 못한 거다. 지금 다 나꼼수 포맷대로 방송하고 있지 않나? 우리는 2011년 검증이 된 사람들인데 이후 6년 동안 방송을 못하게 막은 거다. 기회를 준 게 아니라 해야 할 사람들을 못하게 한 거라고 생각한다. 김용민 방송 잘하죠. 김어준 방송 잘하죠. 저는 방송인은 아니지만 뭐든지 잘하니까.”

▲ 정봉주 전 국회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정봉주 전 국회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방송에서 자주보다 보니 요즘은 정봉주가 정치인보다는 방송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방송은 정치를 잘하기 위한 무기다. 지금 묶여있지만 나름대로 정치를 하는 거다. 지금이 그냥 대포라고 한다면 (피선거권이 제한이) 풀리면 대륙간 탄도미사일 정도가 될 거다. 국회의원들은 아무래도 밑바닥 정서와 좀 멀 수밖에 없다. 저는 밑바닥 정서를 잘 안다. 방송을 하다보면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출연료 받으면서 정치 공부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돈 주고 공부까지 시켜주고 아무래도 ‘신의 아들’이 맞는 것 같다.”

-그렇다 해도 지금은 생활 정치보다는 방송에 치중한다는 느낌이 든다. 출소 직후에는 ‘봉봉협동조합’ 등 생활 정치도 했다.

“봉봉 협동조합은 지금도 잘 굴러가고 있다. 이 외에도 세월호가족 지킴이를 하고 있다. 4·16기억저장소와 관련해 가족들이 이동이 어렵다고 해서 얼마 전 차를 마련해드렸다. 촛불집회 할 때는 4000만 원 정도 기부했다. 이런 식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 방송을 하고 인기를 얻으면 사람이 오만해지기도 한다. 정봉주도 그렇게 보이는 측면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초심을 잃지 않고 오만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외모가 뺀질뺀질 하니까 그런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건방지거나 오만해질 정도로 세상 경험이 단편적이지 않다. 여러 좋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 이번 주 금요일에 TV조선 시그널 첫 화가 방영된다. 시청률 부담은 없나?

“좋은 취지의 프로그램이라서 맡은 거다. 그동안 TV조선이 가지고 있었던 이미지와 정봉주 이미지의 싸움이다. TV조선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하면 정봉주가 밀리는 거고. 드디어 전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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