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사건으로 박근혜씨가 파면당하고 구속수사를 받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목격하는 가운데 새롭게 터져나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불법 비리 심각성이 예사롭지않다.

나날이 드러나는 또 다른 불법행태는 왜 국민이 촛불을 들 수 밖에 없었는가를 더욱 실감하게 된다. 국민을 상대로 리스트를 만들어 분리하고 관리대상으로 삼아 일감을 몰아주거나 아예 배제시키는 것은 물론 주요 공기업에 권력층 자녀들을 부정입사 시키는 행태는 관행처럼 지속됐다.

권력의 무능과 불법행태를 감시, 견제해야 할 KBS·MBC 공영방송은 물론 SBS 같은 민영방송조차 완벽하게 장악하여 정권홍보용 방송으로 전락시켰다. 국민은 있었으나 바보취급 당했다. 언론은 있었으나 저널리즘은 실종됐다. 부도덕한 권력은 방송사 앵커나 주요 임원을 청와대 홍보수석, 대변인, 국회의원 등의 자리를 내주며 권언유착의 과거로 회귀했다.

▲ 2014년 2월6일 당시 박근혜 정부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 2014년 2월6일 당시 박근혜 정부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더 놀라운 것은 국가 공조직인 국정원이 여론조작에 불법적으로 동원된 것도 부족해 청와대 문고리 권력과 정무수석, 장관 등에게 수십 억 원의 뇌물을 상납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거대 마피아 조직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박 전 대통령 측근들이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를 ‘쌈짓돈’처럼 불법으로 마구 사용했던 정황이 검찰 수사로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국정원의 청와대 상납’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국정원이 청와대의 비공개 여론조사 비용 5억원을 대납한 증거를 확보했으며,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과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국정원으로부터 매달 1억 원의 특활비를 받아온 것 외에 별도의 ‘검은 돈’을 받아 챙긴 혐의도 조사 중이라고 한다.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이 ‘윗선’ 보고 없이 정무수석 등의 딴주머니를 챙겨준 사실도 드러났다.

청와대와 국정원이 국민 세금으로 서로 돈놓고 돈먹기식의 야바위짓을 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는 무능한 대통령이 국정을 외면할 때 벌어질 수 있는 흔한 역사의 사례에 불과하다. 국민은 대통령 측근들이 청와대 안에서 이런 이율배반적인 매국행위를 하리라고는 상상조차하지 못했다. 

▲ 이른바 ‘문고리 3인방’으로 불려온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왼쪽부터),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 연합뉴스
▲ 이른바 ‘문고리 3인방’으로 불려온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왼쪽부터),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 연합뉴스
이 문제에선 이명박 정부도 자유롭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간 망신주기 작전은 검찰과 국정원, 언론이 합작한 작품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논두렁 시계 보도’는 2009년 5월13일 SBS가 단독 리포트로 내보낸 뉴스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에서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준 명품 시계를 받아 봉하마을 논두렁에 버렸다’고 진술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와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을 수사를 맡았던 이인규 전 대검 중앙수사부장은 지난 2015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논두렁 보도 등은 국정원 주도로 이뤄진 것”이라고 말해 국정원의 정치공작 의혹에 불을 붙였다.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는 이명박 정권 때 국정원 직원 4명이 ‘논두렁 보도’ 직전인 2009년 4월 하금열 당시 사장과 접촉해 노 전 대통령 수사 보도를 적극 요청했다고 발표했다. 하 전 사장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1~2013년 대통령실장을 지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공영방송 사장을 낙하산 심복으로 앉히고 민영방송 사장 등 주요 간부는 대통령 실장이나 홍보수석 등으로 요직에 기용하면서 언론을 통제하고 요리했다. 조중동에게는 요구대로 모두 방송사를 허가했고 의무전송을 통해 특혜를 부여했다.

언론 감시가 사라진 곳에 이명박 정부의 부정과 비리는 악취를 풍겼지만 언론도 한 축이 돼 실리를 챙겼다. 국가 공조직이 중립성과 합법성을 망각하고 선거에 직접 개입하여 특정후보를 밀어주기 하거나 낙마에 앞장서는 행태를 노골적으로 했다. 관제데모를 사주하고 여론몰이로 상대를 무조건 ‘빨갱이’ ‘종북좌파’로 낙인찍어 사회매장을 시도했다.

이명박이 사악했다면 박근혜는 무능했다. ‘경제 대통령’을 내세운 이명박은 자신의 이익은 조금도 손해보지 않는 치밀함으로 도곡동 땅과 BBK, 다스로 연결되는 명백한 불법행위에 자신을 놀랍게도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둔갑시켰다. 이명박은 이권대통령으로 자신의 배를 불리는데 완벽하게 성공했다.

▲ 2012년 5월17일 이명박 대통령과 하금열 대통령실장, 어청수 청와대 경호처장(왼쪽)이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2012 전국 중소기업인 대회’에 참석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 2012년 5월17일 이명박 대통령과 하금열 대통령실장, 어청수 청와대 경호처장(왼쪽)이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2012 전국 중소기업인 대회’에 참석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이명박은 무능한 박근혜를 국정원을 총동원하여 공을 세워줌으로써 안전을 보장받았다. 모든 것이 예상대로 잘풀렸지만 박근혜가 중도 하차하며 이렇게 대통령직을 파면당하고 수사대상까지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 무슨 보수, 진보 이념문제가 끼어들 틈이 있나. 오직 정치적 이익과 집권야욕에 따른 이합집산이 있을 뿐이다. 정의나 법은 물론 민주주의 정치 최소한의 기본도 보여주지 못했다. 사악하고 무능했던 정권의 부정, 비리 백태가 앞으로 어떻게 더 나올지 망연자실할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전 정권에서 자행된 더럽고도 지저분한 역사에 대해 설거지를 해야하는 사명이 주어져 있다. 하지만 지난 정권 집권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을 비롯해 조중동과 종편 방송사들이 노골적으로 반발하며 ‘정치보복’과 ‘이제 그만’을 소리치고 있다. 

국민적 지지가 워낙 높은 문 대통령의 국정 드라이브에 밀려 저항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작은 틈만 보이면 자유한국당과 조중동은 또 다시 손에 손잡고 지난날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몸부림 칠 것이다.

이제 국민은 안다. 국가란 어떻게 해야 하며 정치 지도자는 어떻게 국민을 보호하고 정의를 수호해야 하는지. 언론 또한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지 학습효과를 통해 배웠다.

조급해서도 안되고 이념논란, 정치보복 프레임에 휘말려서도 안된다. 법과 원칙에 따라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것은 9년간 깊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던 대한민국호를 정상궤도에 올려놓는 일이다. 이것만 제대로 한다면 문 대통령은 성공한 지도자로 역사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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