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아주 질 나쁜 경험을 했거나, 그런 행위를 한 사람을 욕할 때 ‘강간범’, ‘성추행범’이라는 비유를 쓰곤 한다. 그만큼 나쁜 일을 했다는 비난을 하고 싶은 의도겠지만 부적절하다. 이런 비유는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건드리고, 강간에 두려움을 가진 많은 이들이 듣기에 매우 불쾌한 일이다.

지난달 3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의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하 방문진) 국정감사에서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에 ‘강간범’이라는 비유를 썼다.

이날 신경민 의원은 "내가 과방위원장일 때, 고영주 이사장이 똑바로 하라고 하더라. 사실 대통령이나 장관도 이 자리에 오면 위원장 말을 듣게 돼 있는데, 고 이사장은 법을 위반한 것이다. 내가 하나 실수한 게 있다면 고영주 이사장을 사람이라고 착각한 것"이라며 “지난 10년간 방송을 추행하고 강간했던 범인이, 저를 성희롱하는 느낌을 받았다. 고 이사장의 편을 드는 건 상식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물론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의 잘못은 명백하다. 방문진의 구야권 이사(유기철·이완기·최강욱)가 ‘고영주 이사장 불신임 안’을 제출한 사유는 △MBC 경영진의 불법 경영과 부도덕 은폐・비호 △MBC 구성원에 대한 부당노동행위를 MBC 특정 임원과 함께 모의하고 교사 △편파적으로 이사회를 이끌고 다수를 내세워 정관이나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등 부당한 방식으로 방문진 운영 △MBC 본사·자회사·계열사로부터 골프 접대와 고가의 선물을 받는 등 개인적 비위로 이사장 명예와 품위 실추 △선을 넘어선 이념 편향적 발언 등 공인으로서 부적절한 언행 등 한 두 가지가 아니다.

▲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MBC 출신이며 뉴스데스크에서 강제하차를 당한 신경민 의원이니만큼 고영주 이사장에 대한 분노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강간범’, ‘사람도 아니다’ 식의 비유는 도가 넘은 일이다.

▲ 2009년 MBC 뉴스데스크 진행을 맡았던 신경민 의원.
▲ 2009년 MBC 뉴스데스크 앵커였던 신경민 의원.
이런 신 의원의 행동은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동안 방송장악에 동조해왔다가, ‘방송 정상화’의 절차를 밟아나가는 상황을 ‘방송장악’이라고 부르고 있는 자유한국당에게 비판의 여지를 제공하는 일이다. “국정감사서 강간추행범 막말 논란…과방위 또 파행”이라는 MBC 뉴스데스크 방송 리포트 외에도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이 해당 이슈를 같은 주제로 다뤘다. 신 의원의 발언 이후 국감이 발언에 대한 논의로 틀어졌고, 이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자유한국당에게, 할 말을 만들어준 셈이다.

게다가 이런 행위는 지난 2012년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이 민주통합당을 ‘강간범’, ‘살인범’에 비유하는 막말을 했을 당시 민주당이 취한 행동과도 맞지 않는다. 권성동 전 새누리당 의원은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로 내곡동 사저 특검의 추천권을 야당에게 준 데 대해 “살인범이나 강간범이 자신한테 유리한 재판부를 지정한 것과 똑같다”고 비난했다. 당시 민주당은 권 의원을 비판하고 국회 윤리위에 회부하기로 논의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의 막말 행진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권 의원은 살인범, 강간범에 비유하며 막말 행진을 이어갔다”고 지적했다.

‘강간범’ 비유를 한 권성동 의원을 윤리위에 제소하는 논의를 해놓고, 지금 와서 민주당 의원이 ‘강간범 비유’를 사용하는 것은 누가 봐도 불합리하다.

강간이라는 비유를 쓰지 않더라도 충분히 고영주 이사장의 비윤리성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국회뿐 아니라 그 어디에서도 이런 비유가 사용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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