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사고 소식을 듣고 잠을 못잤다. 계속 사고 당시 기억이 떠올라서 가위까지 눌렀다.”(한국타이어 직원 김정우씨)

지난달 22일 한국타이어 노동자 최아무개씨(33)가 컨베이어 설비에 끼여 목숨을 잃기 이전부터 한국타이어 공장에선 컨베이어 협착 사고가 꾸준히 발생했다. 불과 한 달여 전인 9월 초에도 유사한 사고가 있었다. 사망 피해자와 같은 공정인 정련공정 ‘Q 반바리(원료 배합 설비)’에서 한 작업노동자의 다리가 롤러 사이에 끼이는 골절 사고가 났다.

재해자 김정우씨(가명)는 지난 사망사고 소식을 듣고 “나도 아차했으면 전신이 기계에 말려 들어갔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년 전 정련공정 컨베이어 설비에 팔꿈치 아래가 딸려 들어가 골절상을 입었던 진현배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 법규부장도 “허망한 사고가 안타까워 몇 일 간 잠을 제대로 못잤다”며 “안전 환경만 제대로 갖춰졌다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고 말했다.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이 지난달 25일부터 한국타이어 금산공장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위반 점검에 돌입한 가운데, 미디어오늘은 실제 사고를 겪은 현장 노동자들의 얘기를 들었다.

“사고자리, 입사할 때부터 되게 위험해 보였거든요”

정련은 타이어 생산 공정 중 첫 번째 공정으로 천연·합성고무, 철, 보강재 등 원·부재료에 여러 약품을 투입해 배합고무를 생산하는 작업이다. 정련을 거친 고무는 평평한 원단 모양으로 생산돼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운반해 적재대 위에 쌓은 후 뒷 공정으로 옮겨진다. 정련은 타이어공장에서도 대표적인 위험 작업장이다. 화학물질 노출 위험을 비롯해 설비 규모가 커 사고 규모도 클 뿐더러 작업장이 넓어 재해자 발견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다.

▲ 10월3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금속노조 소속회원들이 한국타이어 근로자 사망 관련 장관 면담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10월3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금속노조 소속회원들이 한국타이어 근로자 사망 관련 장관 면담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처음 입사했을 때 여기 사고난 곳, 되게 위험해 보였거든요. 근데 다들 그렇게 일하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직원 이정렬씨(가명)의 말이다. 그런 이씨도 시간이 지날 수록 작업 방식이 익숙해져 위험하다는 생각을 잊게 됐다고 말했다.

가동 중인 기계를 세운다고 명시적으로 질책을 받진 않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공장 내엔 여전히 기계 가동률에 영향을 주는 데 “눈치를 보는 문화”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기계를 세우지 않고 트러블(작업 오류) 조치할 수 있는 사람이 적지 않으니 내가 세울 때 눈치가 보인다”면서 “원래는 기계를 세우고 방송으로 알리는 게 정상적인 절차”라고 말했다.

김씨도 트러블을 수동으로 조치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김씨는 뒷 공정에서 불량으로 판정된 고무 원단을 다시 개선하는 재처리 업무를 맡았다. 그러다보니 가동 중 트러블 발생 횟수가 적지 않았다. 부적합 판정을 받고 쌓아 둔 고무 원단이 자주 달라붙어 컨베이어 벨트를 지날 때 롤러 사이를 제대로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는 고무가 끼인 롤러를 발로 누르다 정강이까지 롤러에 말려 들어갔고 인대파열 및 골절상을 입었다.

김씨에게 지난달 사망사고는 남 일 같지 않았다. 트러블을 수작업으로 조치하려던 정황이나 사고가 발생한 조건이 유사했다는 것이다. 식사교대 시간은 그 중 한가지다. 김씨는 오후 5시 45분 경, 최씨는 7시10분 경 사고가 발생했다.

진 부장에 따르면 식사교대 중 작업이 위험하다는 지적은 공장에서 꾸준히 지적됐다. 진 부장 스스로가 문제제기를 한 사람 중 한 명이다. 정련공정에선 보통 설비 한 대 당 주 작업자가 1명씩, 설비 두 대당 보조작업자가 1명씩 배치된다. 설비 한 대 당 1.5명이 배치된 셈이다.

이 비율은 식사 시간에 무너진다. 김씨는 “교대시간을 잘 못 맞추면 한 사람이 두세 대를 동시에 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설비가 미리 지정된 ‘세팅값’ 대로 가동되면 문제가 없지만 트러블이 발생하면 작업자가 설비를 보러 갈 수밖에 없다. 김씨는 “작업자가 적은 만큼 트러블 조치도 늦어져 작업자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며 “사람이 없으니 사고 발견도 늦어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씨도 사고 발생 즉시 발견되지 않았고 진 부장의 경우도 20여 분 간 협착된 채로 기계에 매달려있었다.

▲ 사고가 발생한 컨베이어 벨트와 동일한 설비 사진.
▲ 사고가 발생한 컨베이어 벨트와 동일한 설비 사진.

진 부장은 당시 늦게 발견됐던 기억을 떠올리며 “공포스러웠다”고 말했다. 정련 공정은 배합 설비 및 컨베이어 벨트 소리 등으로 큰 소음이 발생해 작업자들이 귀마개를 낀다. 김씨도 사고 발생 후 소리를 질렀으나 불과 10여 미터 옆에 있는 동료 작업자가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씨의 경우는 다행히 손 닿는 거리에 설비를 멈추는 ‘안전로프’가 있었다. 그는 “발목이 들어가자 마자 안전바를 당겼으나 정강이까지 기계에 빨려 들어갔다”며 “아차했으면 더 큰 일이 났을 것”이라 말했다. 사망사고 발생 후 금산공장을 둘러 본 진 부장은 “안전로프가 손 닿는 위치에 설치돼있지 않았다”며 당시 “‘대전공장의 모든 노하우를 가져가 금산공장을 지었는데 어떻게 안전관리는 하나도 안 가져갔느냐’, ‘너희들이 사람이냐’고 회사에 소리를 쳤다”고 말했다.

‘사내119’는 무용지물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고무산업의 경우 산안법은 상시근로자 500명 이상 작업장의 경우 안전관리자 2명, 50~500명 규모 작업장의 경우 안전관리가 1명을 의무적으로 두게 한다. 김씨의 경우 동료 작업자가 사내119를 즉각 호출했으나 당시 이들은 부목, 들것을 챙겨오지 않는 등 응급 상황에 대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40여 분 후 도착한 119 구급대원에 의해 을지대 병원으로 후송됐다.

진 부장은 이와 관련해 “방재실을 사내119로 부르는데, 화재가 났을 때 대처하는 훈련은 굉장히 잘 돼있지만 인명사고엔 전혀 준비돼있지 않다”며 “쉽게 말해 사람이 먼저가 아니라 설비와 생산이 우선인 셈”이라고 비판했다.

‘설비 트러블’은 얼마나 자주 발생할까. 김씨는 “작업에 따라 다르지만 많이 날 땐 5분에 2~3번도 난다”며 “평상시엔 1시간에 1~2번 정도 난다”고 말했다. 고무 제품 특성 때문에 생기는 트러블도 있고 고무 원단을 오랜 시간 쌓아두는 등 관리가 제대로 안되는 요인도 있다. 작업자들에 따르면 ‘재고가 오래 쌓여 문제가 많이 발생하니 해결을 해달라’고 공장에 건의했지만 아직 적절한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안전 문제, 대통령이 말 바꿔도 제자리 지켜야 할 표준이자 기준”

현장 노동자들이 ‘법’이 아닌 ‘실질적인 안전 프로세스’를 주장하는 이유는 이런 연유에서다. 기계 오작동, 작업 오류 등은 기계 성능이 좋아지거나 고가의 안전 설비를 설치해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법은 설비 마련 및 개선, 책임자 지정 등 형식만 갖출 뿐이므로 실질적인 안전 작업 지침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인명 사각지대”는 근절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이들에 따르면 정련공정만 해도 컨베이어벨트 외 다양한 위험 요소가 있다. ‘지게차 충돌’은 빈번히 일어나는 산재 중 하나다. 운반 설비가 사람 키보다 높은 위치에 쌓여있는 철제 적재대를 잘못 건드려 적재대가 떨어져 노동자를 칠 뻔한 상황도 종종 발생했다. 무게가 20kg에 달하는 원료 포대를 옮기면서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전도 사고가 발생한 적도 적지 않다.

▲ 한국타이어 공장 내부 모습.
▲ 한국타이어 공장 내부 모습.

김씨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차단과 격리’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벨트 부분에서 이미 사망 사고가 난데다 동종 사고도 많이 나는 만큼 이제 트러블이 발생하면 노동자가 접근 자체를 못하게 막아버리는게 필요하다”며 “이를 거리낌없이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장 시급하게 바뀌어야 할 과제로는 관리자의 자세 변화가 지적됐다. 이씨는 “위험하다고 개선해달라고 말을 해도 회사는 묵묵부답”이라면서 “반장, 주임, 팀장 순으로 건의가 올라가는데, 보통 주임에게 많이 말한다. 주임에게 물어보면 ‘아직 답이없다. 회사가 기다리라고 한다. 예산이 없으니 다음에 해준단다’ 이런 식으로 답을 준다”고 말했다.

진 부장은 현재 공장 점검을 진행 중인 노동청에 대해 “작업일지를 한 번 검수해보라”고 말했다. 작업자들이 얼마만큼 안전 문제를 건의하고 이에 대해 공장이 어떻게 답하는 지를 제대로 감독하라는 지적이다. 진 부장은 “산안법 적용은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라면서 “적발하는 당국이 안전 문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민감도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작업자의 안전불감증을 지적한다’는 말에 김씨는 “그 자체가 회사에서 만들어낸 문화”라며 “작업자들을 그냥 앉혀놓고 ‘안전하게 작업하세요. 서두르지 마세요’라고 하면 누가 그렇게 하겠느냐. 현장 문화나 속도는 이미 바뀌어 있는데”라고 반박했다. 진 부장 또한 “매뉴얼·프로세스를 제대로 만들어서 현장에서 주기적으로 교육시켜야 한다”며 “조회시간에 말로만 떠드는 교육말고 설비 내에서 이 교육이 될 수 있게끔, 작업자가 이해할 수 있게끔 만드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전이 강화되면 작업자들이 불편을 호소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진 부장은 “회사가 임금협상할 때 우리가 요구하는 데로 주더냐”면서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하니 안전장치를 축소시킨다는 건 회사에 이윤이 되는 말만 들어주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그는 “그렇다면 규제가 왜 있고 취업규칙이 왜 있는 것이냐. 안전설비를 설치하면 당연히 불편하다”면서 “안전이란 대통령이 말을 바꿔도 함부로 바꿀 수 없는 표준이자 기준”이라고 덧붙였다.

“아차 사고가 100건 나면 경상 사고가 10건 나고, 경상 사고가 10건이 나면 중상 사고 1건, 이렇게 전조 현상이 쌓여 사망사고가 난다.” 진 부장은 노동청이 진정으로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면 이번 기회에 공공기관에 보고된 ‘한국타이어 안전사고 사례’를 전수 분석하라고 제안했다. 그는 “그 자료를 훑어 보기만 해도 위험 수준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을 것”이라며 “공무원들이 ‘이 고비를 어떻게 넘어갈까’를 생각하지 말고 전향적인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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