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청와대 시절 작성된 ‘비서실장 지시사항 이행 및 대책 세부분석’ 문건의 내용 중 일부는 그대로 실행됐다. 이번 청와대 문건은 2015년 3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당시 박근혜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이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오간 내용이 담겨 있다. 당시 비서실장은 이병기·이원종 전 실장이다. 미디어오늘은 해당 문건이 어떻게 실행됐는지 따져봤다. - 편집자주

2015년 11월22일 오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직접적인 사인은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이었다. 가신정치와 파벌주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나 유신정권에 정면으로 맞섰고 군사정권 32년에 종지부를 찍은 인물의 죽음이었다.

김 전 대통령 장례는 국가장으로 치러졌고 영결식은 2015년 11월26일 거행됐다.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씨는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당시 청와대는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참석을 원했으나 건강이 호전되지 않자 결국 주치의 의견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주치의였던 서창석 교수는 “박 대통령은 만성 피로에다 고열과 인후염을 동반한 감기 몸살 증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다가 내주 순방을 못 갈 것 같아 강력하게 쉬라고 권고했다”고 밝혔다.

현직 대통령의 전직 대통령 영결식 불참 사례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9년 5월과 8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영결식에 참석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6년 10월 최규하 전 대통령의 국민장 영결식에 참석했다. 박씨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었다.

▲ 10월21일 SBS 그것이알고싶다 방송화면 갈무리
▲ 10월21일 SBS 그것이알고싶다 방송화면 갈무리

이번에 드러난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비서실장 지시사항 이행 및 대책 세부분석’ 문건을 보면 정작 청와대가 신경 썼던 것은 영결식 불참에 대한 비판 여론이 아니라 창조경제박람회였던 것으로 보인다. 영결식 전날인 11월25일 당시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이렇게 주문했다.

“내일부터 창조경제박람회가 개최되는데, 이제까지 창조경제 성과가 상당하고 실제 이 박람회가 그런 성과를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으로 인해 성과홍보가 묻힐 가능성이 있으므로 경제지를 중심으로 집중홍보가 이루어지도록 할 것.”

청와대의 지시는 이행됐을까. 2013년과 2014년에 비해 2015년 창조경제박람회는 보도가치가 높지 않았다. 청와대에서 우려했듯이 당시 가장 큰 이슈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었다. 실제 창조경제박람회 개막식인 26일 김 전 대통령 영결식 관련기사는 3910건에 이른다.

더욱이 이날 박람회는 대통령이었던 박씨가 참석하지 않아 더욱 주목도가 떨어졌다. 2013년, 2014년에는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축사를 하고 아이디어 제안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2013년과 2014년 박람회에서는 대통령의 행보가 주로 기사화됐다. 2014년에는 박씨가 “창조경제가 모호하다”는 비판을 두고 “일각에서 창조경제가 모호하다, 방향이 잘못됐다고 얘기하는 분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그것은 창조경제의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직접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홍보의 ‘악조건’ 속에서도 2015 창조경제박람회의 보도 량은 2013년과 2014년을 압도했다. 박람회가 열린 2015년 11월26일부터 29일까지 관련기사는 933건이고 청와대의 지시가 있었던 25일을 기점으로 5일간 관련기사는 1160건에 이른다. 2013년과 2014년 창조경제박람회 관련 기사는 각각 374건과 838건이었다.

▲ 2015년 3월30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씨가 경기도 성남시 판교 공공지원센터에서 열린 경기창조경제혁신 출범식을 마친 뒤 센터를 시찰하던 중 사물인터넷(IoT) 기반 거미로봇의 갑작스런 작동에 놀라고 있다. 왼쪽부터 황창규 KT 회장, 박근혜씨, 남경필 경기도지사. ⓒ 연합뉴스
▲ 2015년 3월30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씨가 경기도 성남시 판교 공공지원센터에서 열린 경기창조경제혁신 출범식을 마친 뒤 센터를 시찰하던 중 사물인터넷(IoT) 기반 거미로봇의 갑작스런 작동에 놀라고 있다. 왼쪽부터 황창규 KT 회장, 박근혜씨, 남경필 경기도지사. ⓒ 연합뉴스

현장분위기를 전하고 창조경제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기사는 1160개 중 극소수에 불과했다. 파이낸셜뉴스와 한겨레 정도가 ‘자율주행자동차’를 다각도로 살펴보는 기사를 냈고 스카이데일리와 이코노믹리뷰 정도가 창조경제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현장르포를 썼다.

스카이데일리는 “화려해지고 다양해진 볼거리와는 달리 관람객들과 참여기업들 사이에서 정부의 보여 주기식 전시성 행사라는 지적이 나왔다”라며 정작 지원이 필요한 벤처 기업들은 소외됐고 기술체험이나 사은품 등을 주는 부스에만 관람객들이 모였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믹리뷰는 “자율주행차의 비전은 훌륭했으나, 주스 따라주는 로봇의 기술력도 훌륭했으나, 가상현실을 통한 무한한 미래의 비전도 고무적이나 도대체 ‘왜 이것이 창조경제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없었다”며 “박람회의 화려함에 가슴이 뿌듯해지면서도 왠지 모를 허전함을 느낀 이유”라고 보도했다.

박람회와 관련된 기사 내용은 알맹이 없는 홍보가 대부분이었다. “포스코, 2015년 창조경제박람회에서 성과 알렸다”, “SKT, 2015 창조경제박람회 참가”, “두산, 2015 창조경제박람회 참가…친환경 녹색기술소개” 등 대기업 보도 자료를 그대로 옮긴 기사가 가장 많았고, 박람회를 주최한 정부부처 입장에서 행사를 소개하는 기사가 다수를 이뤘다.

“집중홍보가 이루어지도록 하라”는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는, 적어도 양적으로는 성과를 낸 셈이었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회적인 애도 분위기 속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으로 인해 성과홍보가 묻힐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청와대 비서실장의 인식수준은 국민여론과 한참 괴리된 것이어서 이 대목은 훗날 대통령 파면을 예고한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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