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국감파행… 한국정치는 촛불에 답하지 못했다.’

10월28일 중앙일보 5면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촛불 1주년’에 대한 평가를 담았다. 중앙일보 뿐만 아니라 많은 언론이 ‘촛불 1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사를 내놓았다. 평가는 엇갈렸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지난 1년간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변화가 진행됐는지에 방점을 찍었다. 반면 동아일보 등 보수신문은 부정적이었다. ‘보수정권=적폐’ 낙인찍기에 급급했다며 대한민국이 적폐청산에 갇혔다고 비난했다. 의미부여 없이 집회만 단순 소개한 언론도 있었고, 태극기집회와 묶어서 ‘사건 기사’ 정도로 보도한 곳도 있었다. ‘촛불 1주년’에 대한 무게중심과 평가는 언론마다 극과 극이었다.

평가는 달랐지만 많은 언론이 변화와 미래비전을 얘기했다. 씁쓸하다. 그런 단어를 입에 올릴 자격이 있는 언론이 얼마나 될까. 이런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1년 전 시민들은 서울 광화문 광장과 전국 각지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거리에 나와 촛불을 들고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했지만 근저에는 우리 사회 변화를 바라는 다양한 바람이 있었다.

▲ 1월14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2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 1월14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2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그 바람에는 ‘언론개혁’과 ‘언론적폐 청산’도 포함돼 있었다. 이명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정권에 굴욕적이고 자본에 예속적인 주류 언론의 문제점을 시민들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JTBC 태블릿PC 보도에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국정농단 사태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던 KBS MBC기자들이 시민들에게 냉대를 받았던 이유다. 제대로 취재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당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점을 거론하며 많은 언론인들이 반성문을 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 다짐을 한 지 이제 1년이 지났다. 언론은 그동안 얼마나 바뀌었고 무엇이 변했는가. 물론 이명박근혜 정권 9년 동안의 퇴행적 모습에서 일부 진전된 모습을 보인 언론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언론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라기보다 정권교체에 따른 수동적 변화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지는 권력’에서 ‘뜨는 권력’을 향해 무게중심을 옮겼을 뿐 여전히 대다수 언론은 1년 전 모습과 달라지지 않았다. 재승인을 앞두고 정부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종편과 방송사들을 중심으로 이런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문제는 이런 ‘거시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부분에서도 언론은 예전 그대로라는 점이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배우 김주혁씨 보도는 왜 한국 언론에게 ‘기레기’라는 단어가 꼬리처럼 붙어 다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유명 연예인의 급작스런 죽음이란 점에서 언론의 집중적인 보도는 이해가 가는 대목이 있다. 하지만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이후 포털 등을 중심으로 무수히 쏟아졌던 보도 중에 유의미한 내용을 담고 있던 뉴스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의미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켰던 보도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상당수 언론은 ‘배우 김주혁씨 죽음’을 어뷰징으로 클릭 수 높이는데 이용했다.

권력과 자본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건 언론의 당연한 역할이다. 하지만 여기에 충실하게 노력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언론이 몇이나 될까.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부분에서나마 언론은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상당수 언론이 ‘배우 김주혁씨 보도’를 통해 했다고 본다. 언론은 1년 전보다 퇴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촛불 1주년’을 맞아 언론은 정작 본인들에게 던져야 할 질문을 하지 않았다. 서두에서 언급한 중앙일보는 해당 기사에서 시민들의 요구에 정치권이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하지만 이 질문은 정치권이 아니라 언론 스스로에게 향해야 한다. 변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요구에 언론은 제대로 답을 내놓고 있는가. 회의적이다. 분명한 것은 이런 식으로 가다간 촛불이 언론을 향해 점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언론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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