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25일 아침, 대통령 박근혜가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JTBC의 태블릿PC보도 바로 다음날이었다. JTBC는 민간인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을 미리 받아 보았고, 최씨의 지시에 따라 연설문이 고쳐졌다고 단독 보도했다. 팩트는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했다.
2016년 10월29일 토요일,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이 거리에서 타올랐다. 촛불집회가 23번 열리고, 주최 측 추산 1700만 명이 참여하면서 촛불은 횃불이 됐다. 박근혜는 무너졌다. 미국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고 일본에선 아베의 장기집권 체제가 완성되고 독일·프랑스에서마저 극우진영이 약진하는 가운데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시민혁명은 전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이변이었고, 그래서 국제사회의 높은 주목을 받았다.
대다수 방송기자들은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앞에 권력을 제대로 감시·견제하지 못했던 사실을 인정하며 반성문을 써냈다. 그리고 바뀌겠노라 다짐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방송보도는 촛불명예혁명 1주년을 어떻게 보도하고 있을까. 적어도 KBS·MBC 공영방송사만큼은 1년 전에 비해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모습이다. 박근혜 퇴진을 요구했던 촛불집회 1주년을 맞은 지난달 28일자 방송보도를 짚어봤다.
촛불집회 1주년 보도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방송사는 뉴스신뢰도 1위 JTBC였다. JTBC는 28일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과 여의도 국회 앞 촛불파티 현장을 생중계로 비중있게 보도했다. 묵묵히 촛불집회 무대 뒤에 있었던 자원봉사자들을 조명하는가 하면 1년 전 집회에 나섰던 학생들을 찾아내 감회를 묻는 인터뷰에 나서기도 했다. “촛불은 위대했고 민주주의와 헌법의 가치를 실현해 새로운 대한민국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도 보도했다.
JTBC와 가장 대조적인 방송사는 MBC였다. 같은 날 MBC ‘뉴스데스크’의 촛불 1주년 리포트는 단 한 건에 불과했는데, 그나마 친박 진영의 소위 태극기 집회와 5대5 기계적 균형을 맞춘 것이었다. MBC ‘뉴스데스크’는 <촛불 1주년 곳곳서 기념행사…태극기 집회 맞불>이란 제목의 리포트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 요구 촛불집회 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서울 도심 에서 열리고 있다. 앞서 오후에는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하는 태극기 집회도 열렸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KBS ‘뉴스9’에선 촛불 1주년과 관련해 리포트 두 꼭지가 잡혔다. KBS는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정치 변화를 이끈 촛불집회 1주년을 기념해, 오늘 광화문 광장에 다시 나온 사람들은 적폐 청산을 외쳤다”고 보도한 뒤 “당시 외쳤던 ‘박근혜 퇴진’ 구호는 ‘촛불혁명은 계속 된다’, ‘적폐청산’으로 바뀌었다”고 보도했다.
박근혜정부가 임명한 고대영 KBS사장이 국가정보원 200만원 금품수수 의혹 등으로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KBS는 촛불1주년을 맞아 ‘적폐 청산’보다 ‘국민통합’ 프레임을 강조하는 모양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통합 프레임은 적폐의 기준을 낮추거나 적폐를 포용하자는 요구와 같다. 실제로 KBS에 등장했던 시민인터뷰 역시 “적폐를 청산하고 정말로 미래를 위해서 모든 것을 화합하고 나갔으면 좋겠다”였다.
TV조선 보도의 경우 “촛불집회를 촉발시킨 ‘공’은 챙기고 싶은데 ‘집회를 무조건 칭찬하고 싶지는 않다’는 분열적인 태도를 보였다”(민주언론시민연합)는 지적이 나왔다. 이날 이상목 앵커는 “TV조선의 미르재단 특종보도로 시작된 ‘촛불 1년’ 저희는 좀 더 감회가 남다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1월부터 9월까지 도심 집회 등으로 인한 경찰의 교통 통제는 380여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0건 이상, 37% 증가했다”고 전하며 “도로 공사와 문화행사를 포함한 수치지만, 촛불 1년을 거치면서 경찰의 집회 통제 방법이 바뀌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집회 참가자들의 ‘편의’를 봐주는 교통 통제가 반복돼 교통 정체가 심했다는 맥락으로 읽힌다.
SBS는 같은 날 메인뉴스 ‘8뉴스’에서 김용태 앵커가 클로징멘트를 통해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촛불이 더 좋은 세상을 향한 외침이라면 제 마음속에도 작은 촛불 하나 켜둬야겠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방송사업자 재승인 심사를 앞둔 MBN은 “촛불 민심은 새로운 희망을 향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촛불명예혁명 1주년, KBS·MBC만 여전히 박근혜가 만든 그늘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