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었습니다. 배우 김주혁씨가 30일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언론은 기사를 쏟아냅니다. 유명 연예인의 급작스런 사망 소식이니 집중적으로 보도할만한 사안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포털에서 쏟아지고 있는 적지 않은 기사들은 한 사람의 죽음을, 그 죽음으로 인한 안타까움을 클릭 장사에 이용하는 ‘악질’입니다.

‘단독’. 다른 언론사가 쓰지 않은 독자적인 내용을 보도할 때 제목에 붙이는 문구입니다. 오늘 언론은 김주혁씨의 죽음을 이용해 단독장사에 나섰습니다. MBN은 오후 6시경 “[단독] 배우 김주혁 교통사고로 사망”기사를 처음으로 썼습니다.

사람이 죽은 소식이라도 남들보다 먼저 썼으니 ‘단독’이라는 표현은 붙일 수 있지 않냐고 지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첫 보도 후 2시간 50분이 지난 8시50분 기준 MBN의 ‘단독’기사는 무려 9건에 달합니다. 인터넷용 기사, 방송용 기사, 이것들을 재탕한 기사까지 쏟아낸 겁니다. 누가 보더라도 비정상적인 상황입니다.

▲ 김주혁씨 사망 사고 관련 MBN의 '단독' 기사들.
▲ 김주혁씨 사망 사고 관련 MBN의 '단독' 기사들.

이상한 ‘단독’기사들도 있습니다. 머니투데이의 계열매체인 더리더는 “[단독] 김주혁, 교통사고 사망 연인 소식에 이어 영화 준비 중... 안타까움 더해”라는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배우 김주혁이 교통사고로 오늘 오후 6시30분쯤 사망한 가운데, 결혼을 앞둔 여자 친구 소식에 이어 최근 영화를 준비 중이었다는 사실이 머니투데이 더리더에 확인되어 더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준비 중인 작품에 대한 소식은 이미 여러차례 기사화된 적이 있습니다. ‘단독’이라는 말을 붙이기 위해 무리수를 쓴 것이죠.

▲ 김주혁씨 사망사고 관련 '월간조선'의 단독기사
▲ 김주혁씨 사망사고 관련 '월간조선'의 단독기사

▲ 김주혁씨 사망 관련 '뉴스웍스'의 보도.
▲ 김주혁씨 사망 관련 '뉴스웍스'의 보도.

조선일보의 계열매체인 월간조선은 “[단독] 배우 김주혁 교통사고로 사망... 현장 사진 단독공개”라고 보도합니다. 사진 출처는 정체불명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데다 이미 해당 사진은 몇시간 전부터 보도되고 있기도 합니다. 가치도 없고 출처도 불분명한 사진을 월간조선은 ‘단독’이라고 포장하고 있는 겁니다.

쏟아지는 기사 중에는 이상하게도 김주혁씨와 관련한 다른 이슈가 ‘한편’ ‘눈길’을 끌거나 ‘관심’이 쏠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뉴스웍스의 보도는 특히 황당합니다. “배우 김주혁이 차량 전복사고로 안타깝게 사망한 가운데 그가 사고 당시 몰았던 차량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보도입니다. “가격만 무려 2억500만원으로 메르세데스 벤츠의 지프형 가운데에서 가장 비싸다”는 정보도 이어집니다. 차의 가격을 왜 알아야 할까요.

▲ 김주혁씨 사망사고 관련 '한국경제TV'의 보도.
▲ 김주혁씨 사망사고 관련 '한국경제TV'의 보도.

무리한 연결짓기는 이 뿐이 아닙니다. 월간조선은 “30일 오후 교통사고로 사망한 배우 김주혁의 ‘명대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며 드라마 아르곤 속 명대사를 나열합니다. “교통사고 사망 김주혁, 생전 故 김무생 향한 사부곡 재조명”(국제신문) “김주혁, 父 김무생 생각에 눈물 지은 사연”(한국경제TV) 등 배우였던 그의 아버지가 언급됩니다. “‘1박2일’ 김주혁, 발언 재조명 ‘개런티 6만원 받던 때가 더 행복했다’”(톱스타뉴스) 등 예능 프로그램 발언도 다시 보도됩니다. 

그의 연인에 대한 이야기도 쏟아집니다. “김주혁 교통사고 사망, 연인 이유영과 결혼 계획까지… ‘안타깝다’”(뉴스웍스)는 식입니다. 몇몇 매체는 김주혁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가운데 결혼 계획을 밝힌 과거 발언이 눈길을 끈다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 내용을 수정하기도 했습니다. 

왜 이런 기사가 뜨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 포털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는 ‘김주혁’ ‘교통사고’ ‘아르곤’ ‘이유영’ ‘1박2일’ ‘김무생’ 등 그와 관련한 키워드가 떠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뜨는 인기 검색어를 사람들이 클릭하고, 그 검색 결과 상단에 기사가 노출돼 트래픽을 늘려 돈을 벌기 위해 이런 억지 기사를 쓰는 것이죠.

키워드를 많이 나열할수록 노출이 잘 되다 보니 “교통사고 과거 1박2일 든든한 기둥, 아르곤 김주혁 ‘예상 못한 사고...어제만 해도’”(KNS뉴스통신) “김주혁 교통사고 참사 충격, 연인 이유영 남기고 선친 김무생 따라간 그 먹먹한 영이별”(업다운뉴스)이라는 말도 안 되는 키워드 나열 제목도 보입니다.

사람 죽음 갖고 이렇게 장사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인권보도준칙이나 윤리강령,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의 규정같은 걸 굳이 끄집어낼 필요도 없지 않겠습니까.

“포털이 이런 환경을 만들었다.” 부적절한 어뷰징이 벌어질 때마다 언론이 하는 말입니다. 포털 역시 욕을 먹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론의 잘못이 가려지지 않습니다. 언론부터 적당히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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