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1주년·태극기 집회 잇따라’

10월28일 MBC 뉴스데스크 리포트 가운데 일부다. 촛불 1주년 ‘행사’를 다뤘다. 28일 뉴스데스크에서 촛불 1주년 리포트는 단 한 개. 그런데 리포트 제목에 촛불 1주년과 태극기 집회를 동등하게 배열했다. 이런 방식도 문제지만 더 황당한 건, 리포트 내용이다.

“오후 6시부터 열린 촛불집회 1주년 행사에는 시민 수천 명이 참여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던 1년 전 촛불집회 기록을 담은 영상을 시작으로 시민들의 자유발언과 촛불 집회 당시 무대에 섰던 가수들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주최 측인 박근혜 정권 퇴진행동 기록기념위원회는 당초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계획했지만 논란 끝에 취소했습니다.”

10월28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캡처
10월28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캡처
MBC가 이날 뉴스데스크에서 언급한 ‘촛불 1주년’은 대략 이게 전부다. 주최 측 추산 5만 여명이 참여했다고 밝혔지만 MBC는 ‘근거도 불분명하게’ 시민 수천 명이 참여했다고 했다. 그 흔한 시민 인터뷰도 없다. 박근혜 정권 퇴진행동 기록기념위원회 관계자가 연단에서 한 발언만 짧게 소개했다. 시민들은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적폐청산’을 외치며 또 다른 촛불집회를 이어갔지만 MBC는 ‘모른 척’이다. 대다수 구성원들이 파업 중이라고는 하지만 ‘기본’이 안 된 내용을 리포트로 내보내는 건 촛불시민에 대한 모독에 가깝다.

사실 이날 MBC가 뉴스데스크에서 공을 들인 건 ‘다른 집회’였던 것 같다. 보수단체들의 태극기 집회. 일단 리포트 내용을 한번 보자.

“참가자들은 서울역 광장과 덕수궁 앞에 모여 박 전 대통령의 석방과 전술핵 재배치를 촉구했습니다.”

“또 다음 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과 관련해 한미동맹 강화를 굳건히 하고 북한의 위협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전작권을 준비도 안 된 한국군이 단독으로 행사한다는 것은 허울뿐인 군사 주권인 것이고 결국 북한 김정은 정권이 가장 바라는 것이다.” (이 마리아/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발언)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가 정확히 어떤 단체이고 어떤 상징성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MBC는 이날 뉴스데스크에서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관계자 발언을 비중 있게 내보냈다. 그 정도로 가치가 있다는 게 현재 MBC 보도국 수뇌부의 판단일 터. 그 판단 앞에 화가 나거나 분노하기보다 그냥 헛웃음만 나온다.

동의는 못하지만 ‘촛불 1주년’과 ‘태극기 집회’를 동등하게 바라볼 수도 있다. 그러면 리포트를 별도로 가는 성의는 보였어야 했다. MBC와 함께 ‘언론계 적폐청산’ 대상으로 지목된 KBS조차 이 정도로 ‘막가파 보도’는 하지 않았다. 지금 MBC 뉴스가 얼마나 정상궤도에 벗어나 있는지는 28일 KBS 뉴스9와 비교해 보면 단적으로 알 수 있다.

10월28일 KBS 뉴스9 화면캡처
10월28일 KBS 뉴스9 화면캡처
“오늘(28일)은,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첫 촛불집회가 열린지 1년 되는 날입니다.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정치 변화를 이끈 촛불집회 1주년을 기념해, 오늘(28일) 광화문 광장에 다시 나온 사람들은 ‘적폐 청산’을 외쳤습니다.”

KBS 뉴스9 리포트 제목은 ‘촛불 집회 1주년…다시 광화문’이다. 뉴스9 헤드라인이다. 이른바 태극기 집회는 리포트 말미에 한 줄 언급됐다. KBS는 최소한의 선은 지켰다. 물론 ‘촛불의 완성은 국민통합으로 귀결돼야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에 방점을 찍는, 기자가 보기에 ‘KBS 경영진의 희망은 담은 듯한’ 별도 리포트를 내보내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상식과 합리의 영역’에 속한다.

반면 MBC는 뉴스데스크 중반부에 촛불 1주년을 태극기 집회와 함께 다뤘다. 리포트 구성도 이상하고 내용도 비상식적이다. MBC는 이 리포트에서 ‘촛불 1주년’이라 쓰고 ‘태극기 집회’라 읽고 싶었던 걸까. MBC뉴스의 황당함과 어이없음은 그동안 여러 번 논란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C뉴스는 변함없이 정상궤도에서 벗어난 채 ‘그들만의 비정상성’을 유지해왔다.

이제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도 머지않아 끝이 날 것으로 보이지만 ‘정상궤도’에 올라서기 전까지는 그래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동안 MBC에서 ‘비정상적 리포트’를 계속 접하게 될 수도 있다. 공공재인 전파를 이렇게 낭비해도 되는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어서 현재 ‘비정상적 리포트’ 제작에 동참하는 MBC기자들에게 당부 하나 드린다.

타방송사 리포트와 본인들 리포트를 비교하고 모니터 좀 하시라. 얼마나 이상한 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 대열에서 이탈하시라. 본인 이름으로 나간 리포트는 평생 남는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싶다. ‘부끄러운 언론인’으로 기록되지 않기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도 반드시 기억하길 바란다. 진심으로 드리는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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