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한 설비를 둘러싸고 현장 작업자들이 2년 넘게 개선 민원을 넣어온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타이어 및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이하 노동청)의 ‘안전불감증’을 향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사고 발생 사흘 전까지 같은 민원이 제기된 것으로 밝혀져 노동청이 문제를 안이하게 넘겨왔다는 책임론도 부각되고 있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은 지난해 3월10일부터 ‘A 혹은 Q 반바리’라 불리는 정련공정 설비에 ‘집게 장치’ 개선 작업을 해오고 있다. 집게 장치는 설비 내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옮겨지는 고무 원단이 끊어지거나 제대로 운반되지 못할 경우 고무 원단을 들어올려 운반을 원활하게 하는 설비다.

▲ 한국타이어는 이에 지난해 3월10일 설비 15대 중 집게장치 개선이 필요한 9대에 대한 ‘정련 반바리 기계 집게장치 설치계획’을 노동청에 보고했다. 노동청은 진현배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 법규부장의 민원을 접수해 공장점검에 나갔다.
▲ 한국타이어는 이에 지난해 3월10일 설비 15대 중 집게장치 개선이 필요한 9대에 대한 ‘정련 반바리 기계 집게장치 설치계획’을 노동청에 보고했다. 노동청은 진현배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 법규부장의 민원을 접수해 공장점검에 나갔다.

집게 장치가 있을 경우, 작업 노동자는 기계 가동 중에 문제가 생겨도 직접 손으로 고무를 들어올리는 수동 작업을 할 필요가 없다. 반복 동작 등의 이유로 생기는 근골격계 질환, 컨베이어·롤러에 끼이는 협착 사고 등 산업재해가 예방되는 효과도 있다.

지난 22일 발생한 금산공장 컨베이어 협착 사망사고 경우, 피해 노동자가 직접 고무를 이동시키는 등 기계가 가동 되는 도중 수작업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집게 장치 또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최아무개씨(33)는 금산공장 정련공정에서 ‘Q 반바리’ 2호기 관리 업무를 맡았다.

대전공장 설비 개선은 한 정련공정 노동자의 집요한 문제제기때문에 추진됐다. 진현배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 법규부장은 2015년 8월 경부터 한 달에 1~2번 꼴로 노동청을 방문해 근로감독관 등에게 집게 장치를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공장 측엔 현장 반장 등을 통해 10여 년간 반복해서 건의했다. “구동 중인 설비에 사람이 접근해선 안되는데도 수동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진 법규부장은 산재예방지도과에 공식적으로 두 차례 민원을 제기, 담당 근로감독관은 2015년 말부터 2016년 초까지 두 차례 대전공장 방문조사를 진행한 후 회사로부터 설치 계획안을 받았다. 한국타이어는 이에 지난해 3월10일 설비 15대 중 집게장치 개선이 필요한 9대에 대한 ‘정련 반바리 기계 집게장치 설치계획’을 보고한 것이다.

그러나 개선 작업은 대전공장에 한해서 진행됐다. 사측은 진 법규부장 등 금속노조 측 간부들의 금산공장 출입을 불허했다. 당시 금산공장 노동자들은 정련공정 안전 문제 전문가로 알려진 진 법규부장에게 방문을 요청했다. 진 부장은 2015~2016년 간 여러 차례에 걸쳐 금산공장 방문을 시도했으나 모두 무산됐다. 진 부장은 이에 “금산공장이 많이 낙후됐다고 하는데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노동청에 중재를 요청했지만 사측은 거부했다.

노동청은 대전공장에서 1년 넘게 개선이 진행되는 동안 금산공장에까지 확대해 지침을 내리지 않았다. 진 부장은 “대전공장에 지침이 들어가고 금속노조에서 문제제기를 많이 해 노동청도 해당 설비 위험 문제는 알고 있었을 것”이라면서 “우리 지적을 조금이라도 귀기울여 들었으면, 세밀히 들여다 봤으면 조치를 취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 지적했다.

진 부장은 사고가 발생하기 3일 전인 지난 19일, 담당 근로감독관과 관련 문제로 직접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이 개선 계획을 지키지 않는다며 노동청에 강력한 관리감독을 요구한 것이다.

▲ 진현배 법규부장은 사고가 발생하기 3일 전인 지난 10월9일, 담당 근로감독관과 관련 문제로 직접 실랑이를 벌인 후 언쟁 내용을 문서에 기록했다.
▲ 진현배 법규부장은 사고가 발생하기 3일 전인 지난 10월9일, 담당 근로감독관과 관련 문제로 직접 실랑이를 벌인 후 언쟁 내용을 문서에 기록했다.

공장은 진 부장 민원에 따라 지난 8월 및 10월까지 ‘A 반바리’ 두 대에 집게 장치를 설치하고 지난 6월까지 지게차 통로 확대 작업을 한다고 노동청에 보고했다. 진 부장은 이 계획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노동청에 항의하다 근로감독관이 책임있는 답을 하지 않는다고 여겨 언성을 높였다.

진 부장은 이와 관련해 “노동청 산재예방과는 말 그대로 산재를 예방하기 위한 부서인데 사고가 발생하면 후속조치 처리를 해주는 부서가 돼버렸다”면서 “회사가 2015년 당시 금산공장 점검만 하게 해줬다면 사람이 이렇게 허망하게 가진 않았을 것”이라 비판햇다.

그는 또한 “집게 장치가 100% 사고를 예방하진 않을 것이다. 아무리 설비가 완벽해도 안전사고는 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안전 관리 매뉴얼, 프로세스, 프로그램을 잘 짜서 안전 환경을 만들면 사망은 중상으로, 중상은 경상으로, 경상은 아차사고로 끝이 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노동청 관계자는 “금산공장에도 집게장치 설치 계획을 갖고 있었다”며 “사고가 나지 않았으면 이번주에 TFT(한국타이어 작업 환경 개선을 위한 노사정협의체)를 통해 평가위원회를 열고 집게 장치 안건을 상정해 금산공장에도 확대 설치할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집게 장치 설치가 계획보다 늦어진 이유는 설비가 워낙 크고 비싸 지연될 수 있는 것”이라면서 “한국타이어가 1979년에 지어져 공간이 매우 협소해, 지게차 통로 확대 작업도 공장을 확대하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노동부는 구체적인 법 위반이 확인돼야 시정명령 등을 내릴 수 있다”면서 “대전·금산공장 감독관들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우리들도 사람이다 보니 이런 사고를 예측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진 부장은 컨베이어 협착 사고를 당한 산재 피해자다. 정련공정에서만 22년 가량 일한 그는 1998년 4월5일 작업 도중 컨베이어 벨트에 양 팔이 딸려 들어가 골절상을 입었다. 그는 지난 2015년엔 지게차 충돌 사고로 경추와 요추를 다쳐 현재까지 후유증이 남아있다. 그는 “지게차 사고도 한국타이어에서 매우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노동청과 공장에 더 개선을 요구하고 있지만 제대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