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실험하고 있는 직접 민주주의 제도를 방송통신위원회 정책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27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방통위 정책방향 및 과제 정립을 위한 의견수렴 토론회’를 개최했다. 방통위의 방송통신 정책방향 수립을 앞두고 학계, 시민사회의 견해를 듣기 위해 열린 토론회다.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대표는 “방통위 출범 이후 몇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책방향이 구체적이지 않고 두루뭉술하다”고 지적한 뒤 ‘시민참여 논의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 대표는 “현 정부의 공론화위원회 등  집단지성을 통한 정책은 민주주의 시스템을 진전시켰다고 평가 받는다”면서 “방통위에서도 공론화위와 같은 국민을 정책현장으로 참여시키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 생활에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사업자 간 이해관계가 치열해 방통위가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지상파 재송신, 지상파다채널서비스(MMS), 유료방송 결합상품, 망중립성 등 문제에 대해 숙의를 통한 정책결정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 고삼석 방통위 상임위원은 27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과에서 ‘방통위 정책방향 및 과제 정립을 위한 의견수렴 토론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 고삼석 방통위 상임위원은 27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과에서 ‘방통위 정책방향 및 과제 정립을 위한 의견수렴 토론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제작 자율성’ 방안에 대한 개선을 요구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소속 의원 162명은 공영방송 이사회와 사장선임 구조 개선과 함께 ‘노사동수 편성위원회’를 설립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심영섭 교수는 “노조와 사측이 동수로 편성위원회를 만들 것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과 제작자율성을 확보하는 건 별개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제작 자율성 확보를 위해서는 제작 자율성에 대한 개념을 법에 명시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심영섭 교수는 “과거 방송법 개정 과정에서 제작 자율성에 대한 내용이 명시되긴 했지만 정의가 불명확하고 선언에 그친 상태”라며 “제작자율권이란 제작실무자가 자율권을 갖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발제하고 제작할 수 있는 권리,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 스케이트장으로 쫓겨나는 등의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권리”라고 말했다.

4기 방통위가 ‘공공 서비스 복원’을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상파는 공공재인 전파를 활용한 무료보편 서비스임에도 국민 95%가 돈을 내고 IPTV나 케이블을 통해 지상파 방송을 시청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지상파 UHD방송이 도입 됐지만 지원 규모가 미미해 제대로 시청할 수 있는 가구는 1%도 되지 않는다.

강혜란 대표는 “공공서비스 활성화는 특정 사업자를 편드는 게 아니다”라며 “현재 매체 상황이 완전히 역전된 상태다. MMS(지상파다채널서비스, 무료 지상파 채널을 확대도입하는 개념)나 UHD 플랫폼 안정화사업과 같은 공공서비스 복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진= 금준경 기자.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진= 금준경 기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역할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심영섭 교수는 “정치심의와 표적심의가 문제였고, 이를 어떻게 없앨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면서도 “동시에 불법 콘텐츠 등 당연한 위법사항에 대해서는 규제를 할 행정권한을 어디까지 규정해야 할지 근거를 방통위가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대호 성균관대 교수는 정부가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사고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많이 접속한 사이트가 ‘WARNING’(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불법·유해사이트 차단 화면)이라는 농담이 있다”면서 “사이트 수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앞으로는 모든 공무원들이 사이트 검열만 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우리는 뭐든 잘못되면 정부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정부는 모든 걸 통제하고 규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면서 “정부만 책임지는 게 아닌 학교와 가정에서 교육을 통해 책임을 지는 미국식 제도를 본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방통위가 방송산업의 공공성에 대한 고민은 하고 있지만 통신ICT분야에서는 산업진흥을 앞세우며 프라이버시 보호에 소홀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방통위가 개인의 동의 없이 사실상 개인정보를 가공해 활용하게 하는 ‘비식별화 가이드라인’과 같은 이전 정부의 문제적 정책을 이어받은 점 등을 지적하며 “방통위가 개인정보보호에 관심이 없다”고 비판했다.

토론회에 앞서 고삼석 방통위 상임위원은 “다음 달 4기 방통위가 출범한 지 100일을 맞는다”며 “그때에 맞춰 방통위의 주요 정책과제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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