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HIV)에 대한 편견을 담은 보도를 자제하자는 보도 가이드라인이 나온 지 십여 년이 지났지만 언론 보도는 여전히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에이즈 보도가 잇따른 데에는 에이즈와 관련한 사건이 연달아 터진 데 있다. 10월10일 MBC ‘뉴스데스크’는 단독으로 ‘에이즈 여중생 성매매’ 뉴스를 보도했다. 10월19일 에이즈에 걸린 20대 여성이 부산에서 십여 명의 남성과 성매매를 한 혐의로 구속됐다는 사실이 부산일보를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이 여성이 7년 전에도 성매매를 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후 ‘에이즈’가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관련 보도에선 에이즈에 대한 편견이 그대로 드러났다. 10월10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에 대해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 등 시민단체는 “(MBC는) 에이즈 환자들이 익명으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앱을 통해 질병을 전파한다고 주장한다”며 “이는 감염인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의도적으로 질병을 전파한다는 범죄자 낙인을 찍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해당 리포트에서는 ‘에이즈에 걸린 사람이 혈액이나 체액을 통해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법 조항을 인용했는데, 시민단체는 “어떤 맥락도 없이 해당 법 조항을 인용하면서 에이즈 환자의 성관계 자체를 불법인 것처럼 보이게 보도했다”고 지적했다. 해당 법 조항은 에이즈 감염인이 에이즈 감염을 목적으로 성관계를 할 경우 적용되는 것이다. 또한 에이즈 환자라고 하더라도 콘돔 등을 사용하면 에이즈 감염에서 안전한데, 언론 보도는 마치 에이즈 환자와 성관계를 하면 무조건 에이즈에 걸리는 것처럼 전했다.

이런 보도는 MBC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울신문도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드러냈다. 서울신문은 지난 19일 “부산 에이즈 감염 여성 성매매 ‘돈 주고 죽음을 샀네’”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의 제목은 ‘에이즈=죽음’이라고 단정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질병리본부는 2012년 “에이즈는 고강도 항바이러스제 치료법이 발견돼, 평균수명 30년 이상의 만성질환이 되었다”며 “에이즈에 걸리더라도 약만 잘 먹는다면 에이즈 환자 상태로 이행되지 않고 건강한 감염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발표했다.

▲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기사 제목들.
▲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기사 제목들.
이에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는 지난 20일 성명을 통해 “언론 보도는 안전한 성관계를 하지 않은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정부의 감염인 관리대책에 비상이 걸렸다면서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언론은 에이즈 감염인을 ‘에이즈녀’로 낙인찍기 바쁘고, 질병 전파 가능성을 부각하며 가해의 책임만을 묻고 있다”며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무조건의 범죄자로 만드는 지금의 상황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근 에이즈 관련 사건 보도에선 성매매 남성에는 면죄부를 주고, 성판매 여성에게만 낙인을 찍는 행태도 문제로 지적됐다. 에이즈가 성매매로 전파된 것과 관련해 성구매자들도 범법을 저질렀지만 언론은 마치 성을 판매한 여성에게만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부산일보의 ‘성매매 에이즈女 부산 유일 집중관리 대상자였다’ 등의 기사가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 부산일보 한 기자는 “다수의 남성 데스크로 구성된 신문들이기에, 다수의 성매매를 한 남성들에게 관대한 것 같았다”면서 “성을 판매한 여성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성을 산 남성들에게는 에이즈 증상을 검토해보라는 둥 친절한 기사가 나오는 것이 황당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에이즈가 검색어 1위를 하면서 에이즈 증상, 에이즈 예방법 등이 나왔지만 ‘성매매를 하지 마라’는 기사는 적다”며 “에이즈 환자를 완전히 비정상인으로 묘사한 것에 비해 성을 매매한 남성에 대한 비판은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해마다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고, 이를 자극적으로 전하는 보도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에서는 2006년 ‘언론인을 위한 에이즈 길라잡이’를 발간하고, 계속해서 업데이트하고 있지만 소용이 없다. 질병관리본부는 △감염인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용어 △자극적이고 위협적인 용어 △공포감을 조성하거나 에이즈와 관련 없는 혐오적 이미지 △감염인의 감염 경로 △성 정체성 △사생활 보도 등을 자제하라고 지적했다.

▲ 질병관리본부가 펴낸 '언론과 미디어를 위한 HIV AIDS 보도 길라잡이'
▲ 질병관리본부가 펴낸 '언론과 미디어를 위한 HIV AIDS 길라잡이'는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다. 

정율 인권재단 ‘사람’ 활동가는 10월18일 한겨레 칼럼 ‘에이즈 다루는 언론의 태도가 더 무섭다’에서 “2012년 질병관리본부에서 낸 책자의 4페이지 정도만 기자들이 읽었더라면 이런 보도는 없었을 것”이라며 “더 이상 편견에 근거한 정보가 퍼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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