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처음으로 청탁을 받고 기사배열에 자의적으로 손을 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개인의 일탈’이 아닌 조직적 문제라는 진단을 내리고 개선방안도 빠르게 발표했다. 그러나 네이버의 진단과 대책은 본질을 벗어나 있다. 네이버의 이례적인 행보에는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지난 20일 오후 사과문을 냈다. 스포츠매체 엠스플뉴스가 한국프로축구연맹 관계자가 네이버 이사에게 기사를 내려달라는 청탁을 했다는 정황을 보도하고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네이버는 “스포츠 담당자가 외부의 기사 재배열 요청을 일부 받아들인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며 잘못을 시인했다. 기사배치 조작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반발하고 나선 네이버가 이례적인 행보를 보인 것이다.

▲ 엠스플뉴스의 네이버 기사배치 조작의혹 기사 갈무리.
▲ 엠스플뉴스의 네이버 기사배치 조작의혹 기사 갈무리.

사과문에서 한성숙 대표는 ‘스포츠 섹션’의 특수성을 설명하는 데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했다. 스포츠 섹션의 경우 총괄 담당자가 뉴스 편집자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스포츠 중계 영상 등을 이해관계자들로부터 구입하고, 조직이 일원화 된 게 ‘구조적인 원인’이라는 진단이다. 언론사에 비유하면 ‘광고국’과 ‘편집국’이 합쳐져 외압이나 청탁에 약한 구조가 됐다는 이야기다.

네이버가 이날 발표한 대책 역시 이 같은 특수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업 제휴와 뉴스 서비스가 혼합된 조직 분리, 기사배열 책임자 일원화가 대표적인 대책이다. 또한 일반 뉴스 섹션에서만 운영되던 뉴스편집자문위원회를 스포츠, 연예부문까지 확대하고, 내부 투명성위원회를 통해 배열을 점검한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뉴스편집의 경우 AI추천기술을 확대도입해 편집자가 배열하는 영역을 축소하겠다는 방안이 나왔다.

그러나 문제 진단과 대책 모두 사안의 본질을 벗어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이번 논란을 ‘스포츠 섹션만의 특성’으로 볼 수 있느냐부터 따져야 한다. 언론사의 경우 광고국과 편집국이 일원화돼 있다면 외압이나 청탁에 의해 기사를 건드릴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지만, 분리된 조직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문제다. 담당자를 징계하고, 조직을 개편한다 해도 고위 관계자가 외압이나 청탁을 받을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네이버가 밝힌 검증절차 강화로는 국민적 의심을 거두기에는 역부족이다. 한 대표는 “네이버에 투명성이라는 가치를 다시 세워가겠다”는 취지를 강조했지만 사후검증 대상을 확대하고 내부에 투명성 위원회를 설립한다고 의혹이 해소되는 건 아니다. 이미 일반 뉴스 영역에서 오랜 기간 외부위원들을 통해 기사배열을 검증하는 편집자문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지만 뉴스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심영섭 한국외대 외래교수는 “네이버의 대책은 ‘알아서 잘 하겠다’는 것인데 편집이 얼마나 투명하게 이뤄지는지 알지 못하는 게 문제”라며 “기존의 위원회는 여야추천을 받아 어느 쪽에 유리한 기사가 많은지 적은지를 따질 뿐 제대로 검증이 되지 않았다. 기술검증을 해야 하는데 네이버가 제출한 자료를 믿는지, 아닌지만 판단하는 ‘신앙’의 문제가 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 한성숙 네이버 대표. 사진=네이버 제공.
▲ 한성숙 네이버 대표. 사진=네이버 제공.

인공지능 편집을 강화하겠다는 대책은 오히려 네이버가 바라는 방향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그동안 인공지능 편집 확대 카드를 만지작거리던 네이버가 이번 논란을 계기로 인공지능 편집을 전면에 도입할 명분을 얻게 된 것이다.

실제 뉴스 편집 공정성 논란에 시달려온 네이버는 편집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왔고 인공지능 추천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네이버는 2013년 PC 메인화면을 편집하지 않는 ‘뉴스스탠드’를 도입했고, 최근에는 ‘채널’이라는 이름의 모바일판 뉴스스탠드를 도입했다. 현재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기계가 자동으로 기사를 추천해주는 방식을 시범서비스 중인데 인공지능 기술은 공정성 논란에서 자유로워질 뿐 아니라 ‘체류시간’을 늘리는 데 최적화된 알고리즘을 통해 상업적 목적도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에 의한 뉴스수용자 맞춤형 편집이 바람직한 방향인지에 대해선 이미 여러 차례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다양한 뉴스 소비를 저해하고 개인의 편향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인공지능 알고리즘 역시 제작자의 의도가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정’하다는 건 ‘신화’에 가깝다.

비판이 이어질 경우 네이버가 추가적인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이는데 언론의 ‘플랫폼 독점’ 비판과 정치권의 ‘기사 불공정성’ 문제제기가 뒤엉킬 가능성이 있다. 압력에 의해 권한을 포기하는 방식의 대응은 정당이나 업계 추천을 받는 위원회의 범람으로 이어지고,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도 높다.

전문가들은 ‘실질적 투명성 강화’와 ‘견제장치 확보’와 같은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심영섭 교수는 “여야 추천 위원이 기사배열 결과를 전달받는 게 아닌 알고리즘에 대해 전문적이고 중립적인 이용자위원회를 통해 기술검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이번 논란은 급작스럽게 튀어나왔지만 본질적으로 새로운 사안이 아니다”라며 “비판에 떠밀려 각 사안별로 대응하고 빠르게 대책을 발표할 게 아니라 차분하게 내부 편집방침, 직원들 전문성 등을 점검하고 다면적인 평가를 한 후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황용석 교수는 대안으로 “투명성 확보를 위해 학술적 검증과 더불어 자체 검증을 통해 건강한 긴장관계가 유지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면서 “외부의 압력이나 요청이 왔을 때 이를 기록해놓고 내역이나 현황을 공개하는 것과 같은 제도를 고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 학계 관계자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네이버가 차라리 언론행위를 하고 있다고 선언하는 게 대책”이라며 “자신들이 플랫폼이기 때문에 중립적이라고 하다 보니 불거진 문제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와 신념에 따라 이러한 결과를 보여준다’고 공표하고 검증받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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