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공론화위원회의 ‘신고리 5·6호기 공사재개’와 ‘원전 축소’ 권고를 둘러싸고 조선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 등 주류 일간지들이 오락가락하는가 하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조사결과만 옳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시민참여단 설문조사가 공사재개로 나오자 “집단지성, 과학의 승리”라 흥분하더니 원전축소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월권”, “조사하라 한 적 없다” 등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드러냈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 방침과 함께 원전 해체시장을 지원하겠다고 밝히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원전 해체 시장 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던 과거 주장에서 거의 180도 입장을 뒤집었다. 말바꾸기와 왜곡이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공론화위 혼자 처리할 일 아니다 → 공론화위 결정에 찬반진영 다 따라야

원전학계 및 업계에 대한 일방적인 편들어주기식 편파보도 외에도 이들 신문은 스스로 주장했던 원칙도 뒤집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공론화위원회 활동 자체에 대한 말 바꾸기이다. 대부분의 신문들은 공론화위원회의 활동이 개시된 3개월 전만 해도 이 기구를 법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7월25일자 신문들은 사설로 썼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짜 사설에서 “에너지 구성은 전문 지식과 여러 고려 사항들 사이의 최적 균형을 찾아내는 고도의 안목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시민배심원들이 상식만 갖고 감당해내긴 어렵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도 이날 사설에서 “시민배심원단 존재의 법적 구속력도 모호하다”며 “2조6000억원 정도의 예산을 좌우할 정책 결정을 하려면 국민이 선거로 선출한 국회의 동의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법적 근거를 알 수 없거나 허약한 배심원단·공론위가 혼자 처리할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경제지인 매일경제도 같은 날짜 3면 머리기사 ‘비전문가에 맡겨진 신고리 운명…국가갈등 인기몰이식 해결?’에서 “대통령이 앞장서서 탈원전을 외치는 상황에서 위원회가 과연 얼마나 공론화 과정을 공정하게 관리할 수 있으며, 위원회가 짜놓은 틀 안에서 시민 배심원단이 객관적인 결론을 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현장. 사진=연합뉴스
▲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현장. 사진=연합뉴스
이랬던 신문들은 신고리 공론화위가 설문조사결과 건설재개를 권고하자 갑자기 환영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지난 21일자 1면 머리기사 ‘탈원전 드라이브, 국민理性이 제동걸다’에서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의 “과학이 공포를 이겼다”는 선동적인 주장을 실었다. 

중앙일보 역시 같은 날짜 사설에서 “공론화위원회가 원전 반대 분위기가 강조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시민참여단은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며 “우리 사회의 수준이 ‘숙의 민주주의’가 작동할 만큼 성숙했다는 증거”라고 극찬했다. “앞으로 국민의 삶과 관련된 주요 정책을 결정할 때 이런 집단 지성의 힘을 활용할 기회가 많아지길 바란다”고까지 했다. 중앙은 “미래를 염두에 두되 현실을 잊지 않을 만큼 우리 국민들의 집단 지성 수준이 높다는 점을 확인한 것은 큰 성과”라며 “이제 정부와 정치권, 찬반 양 진영은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과를 받아들이라고 촉구한 것이다.

매일경제 역시 같은 날짜 기사에서 “정부의 무리한 건설 중단 밀어붙이기에 시민참여단이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고 보도했고, 사설에선 “공사 중단을 요구해온 반대파들이 공론조사 과정을 문제 삼거나 결과에 대한 불복운동을 벌인다면 절대로 안 될 일”이라고 촉구했다. 앞선 주장과 영 딴판이다. 매경은 지난 23일자 사설에서도 “권고안의 핵심은 시민참여단이 숙의를 거치면서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합리적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했고, 압도적인 차이로 공사 재개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점”이라고 평가했다.

“공론화위 혼자 결정할 일 아니다”, “짜놓은 틀 안에서 객관적 결론 낼 수 있겠나”라던 신문들이 돌연 “집단지성 수준이 높다” “숙의과정 합리적”이라고 돌변한 것이다. 입맛에 맞는 결론이 나오니 그동안 인정하지 않던 공론화위를 치켜세운 것이다.

▲ 중앙일보 2017년 7월25일자 사설
▲ 중앙일보 2017년 7월25일자 사설
▲ 중앙일보 2017년 10월21일자 사설
▲ 중앙일보 2017년 10월21일자 사설
’한 입으로 두말하는’ 모순적인 보도태도는 조선일보에도 나타난다. 조선은 지난 21일자 사설에서 “다행히 신고리 공사 재개 결론이 났지만 복잡한 에너지 정책을 비전문가들의 단기간 공론화로 결판 짓는다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같은 날짜 4면 기사에서도 “헌법상 대표 기구도 아닌 비전문가 집단이 중요한 국가 정책을 결정할 권한이 있느냐”고 썼다. 과학이 공포를 이겼다면서, 공론조사는 옳지 않다는 주장이다. ‘부당한’ 공론조사이니 건설재개 권고결정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인지 갸웃거리게 한다. 자기 스탭이 꼬인 것이다.

건설재개는 수용, 원전축소는 월권? 탈원전도 안돼?

문제는 이들 신문이 이런 말바꾸기식 주장으로 건설재개라는 공론조사 결론을 수용하라고 했으면 과반 의견이 나온 공론화위의 ‘원전 축소’ 권고사항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도 조선 중앙 매경 등 주류 일간지들은 건설재개 권고만 옳고 원전 축소 권고는 안 된다고 구분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21일자 4면 ‘공론화위, 원전 축소 권고 ‘월권 논란’’에서 “공론화위가 주어진 권한 범위를 넘어 논란을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조선은 지난 23일자 사설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을 고수하는 것을 두고 “나라를 위해서도 정부를 위해서도 옳지 않다”고 썼다.

‘찬반 양측 모두 결과를 수용해야 한다’던 중앙일보는 23일자 사설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건 국민이 사실상 레드카드를 꺼낸 탈원전에 대해 공론화위의 ‘원전 축소’ 권고를 명분 삼아 계속 밀어붙이려는 정부 태도”라며 “원래 공론화위의 역할은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의 판단이었지 원전 정책의 장기적 향배 결정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의 이런 이중적 태도는 칼럼니스트와 경제부장 등 간부들의 실명 칼럼에서도 엿볼 수 있다. 전영기 칼럼니스트는 이날 23면 ‘전영기의 시시각각’이라는 칼럼 ‘임종석 비서실장이 해야 할 일’에서 “19%포인트라는 압도적 격차로 원전 재개 결과가 나왔는데도 청와대·정부는 ‘건설은 재개해도 탈원전은 그대로’라는 또다른 여론몰이에 골몰하고 있다”며 “궤변과 닮았다”고 주장했다. 궤변의 이유를 두고 그는 △신고리 5·6호 원전 건설 중단여부 결론을 내기 위해 공론화위가 설치됐는데 △5·6호기 공사중단 여부만 묻지 않고 원전 정책 설문을 슬쩍 끼워넣었으며 △원전 축소와 탈원전은 전혀 다른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 중앙일보 2017년 10월23일자 34면
▲ 중앙일보 2017년 10월23일자 34면
김종윤 중앙일보 경제부장도 ‘서소문 포럼’ 칼럼 ‘탈원전 공론조사 정식으로 하자’에서 “에너지 산업 근간을 바꾸는 탈원전 정책을 끼워넣기 식 조사로 확정하는 건 월권 논란마저 부르는 성급한 조치”라며 “탈원전을 밀어붙이고 싶으면 별도의 공론조사를 정식으로 하라”고 썼다.

‘공론화 결과 불복운동은 절대 안된다’던 매일경제 역시 이틀만인 23일자 사설 ‘탈원전 정책, 공론화위 설문 결과만으로 밀어붙일 사안 아니다’에서 “공론화위 권고안에 있다고 해서 탈원전에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공론화위가 원전 축소 설문 결과를 권고안에 담은 것에 대해 월권이라는 지적”이라고 주장했다. 매경은 “공론화위 권고안을 탈원전 정책의 합리화에 이용하려 한다면 자가당착에 빠지는 꼴이 된다”며 “정부는 처음에 밝힌 대로 탈원전을 포함한 에너지 전환 정책을 공론화위 권고안과는 별개로 추진해야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공론화 논의 과정에서 원전정책과 신고리 5·6호기 문제는 구분하기 어려웠고, 조선 중앙 매경 등 자신들이 지속적으로 탈원전 자체를 문제삼아왔다는 점에 대한 설명은 없다. 무엇보다 잣대의 일관성이 결여돼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원전 해체 9조 시장 보인다 → 수익성 없어, 어불성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2일 탈원전 정책을 재확인하는 한편 월성 1호기 중단과 함께 원전 해체 시장 계획을 밝혔다. 그는 “원전해체연구소를 동남권에 설립하여 원전 해체에 대비하는 한편, 해외 원전 해체시장을 선점해 나갈 수 있도록 적극 뒷받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조선·중앙일보는 나란히 문제를 삼았다. 해체 경험도 수익성도 없는데 해체만 육성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신문은 불과 넉달 전, 또는 2년 전엔 정반대의 기사를 썼다.

조선일보는 24일자 사설에서 “세계 원전 해체 시장은 50년간 300조원 규모로 추산돼 30년간 600조원 규모 원전 건설 시장의 4분의 1이 조금 넘는 수준”이라며 “시장 자체가 작은 데다 사업 기간이 15년으로 길고 사업비의 약 40%가 소모성 경비여서 수익성도 낮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거대한 원전 건설 시장은 놔두고 작은 시장을 찾아가겠다는 것은 자동차 산업을 없애고 폐차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식”이라며 “원전 해체는 지금부터 기술을 쌓아가야 하지만 이것으로 원전 건설을 대체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라고 비난했다.

중앙일보도 앞서 23일자 기사에서 “원전을 해체해 본 경험은 전 세계 3곳뿐이고, 그것도 미국(15기)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고 썼다. 황주호 교수의 말을 빌어 “해체를 잘 하려면 충분한 원전 설계·운영 기술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기술력이 검증된 원전 건설은 놔두고 이제 키우는 단계인 해체만 육성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 조선일보 2017년 10월24일자 사설
▲ 조선일보 2017년 10월24일자 사설
이에 반해 조선일보는 박근혜 정부 때인 지난 2015년 6월13일자 사설에서 “선진국들은 앞으로 수십년간 지속적으로 진행될 ‘원전 해체’를 성장 산업으로 키우고 있다”며 “우리 원자력 당국은 2012년부터 10년 동안 1500억원을 투입해 원전 해체 핵심 기술을 축적하는 계획을 진행해오고 있다”고 썼다. 조선은 “고리 1호기 중지 결정을 계기로 원전 폐로 분야에서 국제 경쟁력을 쌓을 수 있도록 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중앙일보의 해체시장 육성 독려는 더했다. 중앙은 지난 6월15일자 20면 머리기사 ‘‘폐로(廢爐)의 경제학’ … 고리 1호기 해체기술 쌓으면 연 9조원 시장 보인다’에서 “폐로 과정에서 뜻밖의 과실을 따먹을 수 있다”며 “ ‘폐로 산업’ 발전 가능성이다. 원전 해체는 세계적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따르면 2015~2019년까지 76곳, 2020년대엔 183곳, 2030년대에도 127곳의 원전이 한계수명에 다다를 전망이라며 거대한 원전 해체 시장이 열리는 셈이라고 썼다. 시장이 약 1000조원에 이를 것이며 “폭증할 수요를 고려하면 도전해볼 만한 블루오션”이라는 김창락 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교수의 말도 인용했다.

이를 두고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탈핵팀 처장은 2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번 신고리 원전 공론화위 활동을 보면서, 한국사회 가장 큰 적폐가 언론 적폐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어떻게 자신의 사적 이해관계에 따라 태도를 180도로 바꾸고 다른 논조의 글을 쓰면서 사실과 다른 기사에 대해 사과는커녕 정정도 하지 않느냐. 이런 사람들이 한국사회 여론을 이끌어간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 조선일보 2015년 6월13일자 사설
▲ 조선일보 2015년 6월13일자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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