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영 KBS 사장이 2009년 보도국장 시절 국가정보원으로부터 ‘국정원의 노무현 전 대통령 뇌물 수수 혐의 수사 개입 의혹’을 보도하지 말아달라는 청탁을 받고 현금 200만 원을 수수했다는 의혹에 KBS가 발칵 뒤집어졌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는 지난 23일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로부터 이와 같은 조사 결과를 보고 받고 검찰에 수사 의뢰할 것을 국정원에 권고한 상황이다.

국정원 개혁위는 이날 “당시 KBS 담당 IO(Intelligence Officer·국내 정보 담당관)가 KBS 보도국장을 상대로 불보도 협조 명목으로 현금 200만 원을 집행한 것에 대한 예산 신청서·자금 결산서 및 담당 IO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고대영 KBS 사장은 23일 “국정원 관계자로부터 돈 받은 사실이 없으며 더군다나 기사를 대가로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KBS 내부에서는 금품 수수 의혹에 신빙성이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 고대영 KBS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고대영 KBS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이하 KBS 새노조)는 24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태에 대해 “전례없는 저널리즘 파괴 행위”라고 비판했다. 성재호 본부장은 “담당 국정원 IO는 언론사를 10년 이상 담당한 인물”이라며 “그런 사람이 국정원 자체 조사에서 현직 KBS 사장을 상대로 허위 진술을 했으리라고 생각진 않는다”고 말했다.

고 사장이 과거 ‘정보원’ 역할을 하다가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는 점도 신빙성을 높이는 부분이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고대영 KBS 해설위원이 미국 대사관 측에 이명박 당시 후보와 정치권 관련 정보를 전달했다는 미국 국무부 비밀 전문이 지난 2011년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Wikileaks)에 의해 공개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고 사장은 보도본부장이던 2011년 보도본부 간부들과 함께 현대자동차그룹 인사들에게 골프 접대를 받아 내부에서 큰 비판을 받았다. 

성재호 본부장은 “고 사장은 보도본부장 시절 현대차 골프 접대를 받은 전력이 있다”며 “이런 점에 비춰보면 국정원으로부터 돈 200만 원을 수수하는 데 그쳤을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 사장에 대한 국정원의 청탁이 있었다면 ‘KBS 불보도’로 실제 이어졌을까. 조선일보는 2009년 5월7일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혐의를 수사 중인 검찰 고위층에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 기소할 것을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고 이는 노 전 대통령 수사 국면에서 보도 가치가 높은 기사였다.

24일 KBS 새노조에 따르면, 국정원이 불보도 청탁을 했다는 ‘국정원의 수사 개입 의혹’은 2009년 5월7일 당일 KBS에서 보도되지 않았다. 

KBS는 지난 23일 “당시 국정원과 검찰이 (국정원의 수사 개입 의혹을) 부인함에 따라 기사 자체가 작성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대영) 보도국장이 기사 삭제나 누락을 지시하거나 관여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새노조는 단신으로 정치권 반응을 다룬 기사를 소속 부서장이 승인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국정원 개혁위는 “보도국장이 현금을 수수하고 불보도 행위를 한 것은 뇌물죄 해당 여지가 있어서 검찰에 수사 의뢰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법률원 신인수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개혁위는 예산신청서, 자금결산서, 담당IO 진술 등을 확보했다고 했는데 이는 단순히 일회적 사건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라며 “국정원 개혁위는 관련 문서와 예산·결산서 등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고 밝혔다.

신 변호사는 “만약 고 사장이 국정원으로부터 부정한 돈 200만 원을 받고 관련 보도를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면 형법상 ‘수뇌 후 부정처사’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며 “아직 공소시효가 남았기 때문에 검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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