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여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법원 일정을 챙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민사, 형사, 가사, 행정법원을 오가며 그 날 있을 재판 중 미처 알지 못했던, 눈에 띄는 사건을 체크한다. 아침 세수를 하듯 법원 출입 기자에겐 ‘일상적 의식’ 같은 일이다. 하지 않아도 큰 일 나지 않지만, 찝찝한 그런 일처럼.

반쯤 눈을 감은 채 치르는 의식 중에도 유독 눈에 띄는 사건이 있었다. 법원 출입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선 일상다반사였던 소송이다. 첫 인상은 강렬했던 이 사건의 정식 명칭은 ‘국가귀속결정처분취소 사건’, 피고는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다. 원고는 다수의 친일파 후손들이다.

그 즈음이었다. 법원에 친일파 후손들의 소송이 밀려들어왔다. 친일재산조사위의 ‘재산(토지) 환수 결정’에, 친일반민족행위자진상조사위의 ‘친일파 결정’에 불복한 소송들이다. 전자는 ‘돈’, 후자는 ‘명예’를 문제 삼았다. 광복 60년이 지나서야 시작된 청산 탓에 사료는 부족했고, 분명한 친일 증거도 왜곡된 명분으로 배척당했다. 일부 정치권, 일부 언론, 일부 판사도 때론 교묘하게 때론 노골적으로 여기에 동참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해 이명박 정부에서 끝난 조사위의 4년(2006~2010)은 가시밭길이었다. 이 과정에 친일파 후손의 패소를 담은 단발 기사, 기획 기사도 썼지만, 부족하다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일종의 자기안위이자, 다짐으로 검찰로 출입처를 변경한 다음에도 수첩 한 편에, 책상 한 편에 끝까지 관심을 가져야할 대상 4개 중 하나로 기록해뒀다. 언젠가는 밝혀지지 않은 친일재산 취재를 해보겠다는 마음이었다.

해산된 친일조사위 관계자에게 가끔 연락해 자문을 받았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조사위는 더 이상 조사할 권한도 없었고, 관련 자료를 이관 받은 국가기록원에선 정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는 친일청산이 완벽하게 이뤄졌다고 여긴 것일까. 조사위가 끝내지 못한 업무를 수행할 부처조차 없다. 그나마 법무부는 소송 업무를 인계 받았지만 전담팀조차 없다.

국가 기관의 협조를 받는 건 애당초 불가능했다. 꽤 긴 시간에 걸쳐 단초를 알만 한 사람을 수소문해 이야기를 들었다. 친일파가 소유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 일대 토지대장을 입수하는데도 장시간이 걸렸다. 천 장이 넘는 토지대장을 분석하고, 추적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지만, 미약한 출발이라도 해야 했다.

같은 부서 정경윤, 박원경, 화강윤, 주범, 이용한, 김태훈 기자와 팀을 나눠 전국을 누볐다. 간혹 ‘꽝’이 난 장소에서 한숨을 쉬기도 했지만, “한 곳만 더 가보자”는 영상기자의 말에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친일재산을 발견했다. “한 명만 더 만나보자, 한 번만 더 뒤져보자”는 말에 이완용의 소유 부동산이 2200만㎡, 여의도 7.7배라는 사실을 밝혀냈고, 역사적 모순이 뒤엉킨 단종태실지, 적산을 보도할 수 있었다.

[관련기사 : [마부작침] 단독공개! 친일파 재산보고서① 친일파 이완용 재산 전모 최초 확인…여의도 7.7배]

정부가 포기한(하지 않은) 친일재산을 보도한 건 성과라고 평가받았지만, 답답한 현실을 마주해야했다. 환수된 이완용의 친일재산은 0.05%에 불과하다는 건 불편한 진실의 작은 조각일 뿐이었다. 찾지 못한 또 다른 친일파의 재산이 계속 대물림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적폐 청산을 두고 “정치 보복”, “국민을 피곤하게 한다”는 세력을 보면 기시감이 든다. 10년 전, 법원 출입 당시 적폐 중에 적폐라는 친일청산을 두고 “뒤늦은 보복, 논란을 부추겨 화합을 해치는 행위”라고 반대했던 이들이 있었다. 광복 직후, 이승만 정권도 비슷한 이유로 친일청산을 하지 않았다. 의도적 부작위로 친일 청산은 실패했고, 후과는 처참했다.

▲ 권지윤 SBS 기자
▲ 권지윤 SBS 기자

가늠할 수 없는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가며 모순된 역사, 왜곡된 역사 위에 살아가는 건 후대다. “60년 전 제대로 청산만 했어도, 그게 어렵다면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만 청산을 시작했더라도..”라는 공허한 후회를 다시 후대에게 넘길 순 없다. 데스크인 진송민 기자와 이번 취재를 두고 나눈 얘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왜곡된 역사가 낳은 건 괴물이다. 시간이 걸려도 단죄의 정의를 세우는 게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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