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배우 A 사건’이라고 알려졌던 영화계 성추행 사건의 2심이 1심과 달리 유죄 판결이 나며, 가해자로 지목된 배우 조덕제씨에 대한 해명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2심 판결이 난 13일부터 20일까지 일주일 동안 네이버에서 ‘남배우 성추행’으로 검색되는 기사는 520여 건이다. 2심 판결 이후 스스로 나선 조덕제씨의 해명 기사, 문제가 된 영화의 감독 인터뷰가 연이어 보도됐다.

해당 사건은 2015년 4월 영화 촬영 도중, 여성 배우가 조덕제씨의 상의 속옷을 찢은 행동 등에 항의하고 고소한 건이다. 2016년 1심에서 무죄판결이 난 이후, SNS에서 ‘영화계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지고, 피해자가 피해를 호소하며 관련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해 사건을 공론화하기도 했다.

문제는 피해자가 1년 남짓 피해를 호소할 때는 조용했던 언론이, 가해자로 지목된 남자 배우가 해명에 나서니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언론은 성추행 상황을 자극적으로 묘사하고, 사건과 관련 없는 ‘조덕제 인성’ 기사로 어뷰징을 하기도 했다.

우선 언론은 성추행 상황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적으로 묘사했다. “조덕제 ‘여배우 성추행 절대 아냐, 바지에 손 넣은 적 없어…증거도 명백’”(동아일보), “성추행 남배우 조덕제, ‘팬티 안에 손? 절대 NO’ 여배우 측은 황당무계”(제민일보), “성추행 남배우 조덕제 ‘바지 벗기고 가슴 만져’ 女 추궁에 무릎 꿇고 사과”(뉴스타운) 등이 그 사례다.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10월19일자 방송)은 해당 사건을 전하면서 불필요한 자극적인 삽화를 넣은 화면을 방송했다. 남성이 여성의 상의를 찢어 여성의 상반신이 상당 부분 노출된 삽화였다. 이에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모니터링 보고서를 내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나 다름없는 묘사”라고 지적했다.

▲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모니터링 보고서 화면 캡쳐.
▲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모니터링 보고서 화면 캡쳐.
이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이나 ‘포털 뉴스제휴평가규정’에서도 주의를 요하는 사안이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35조 성표현 조항에는 ‘방송은 성과 관련된 내용을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묘사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포털 뉴스제휴평가규정에서도 선정성과 관련해 ‘상업적 목적으로 선정적으로 자극적인 내용을 과도하게 보도하거나 강조하는지’를 평가요소에 반영하고 있다.

성추행 사실과 관련 없는 가해 지목자에 대한 ‘인성’을 언급한 기사도 여럿이다. “여배우가 언급한 조덕제 인성, ‘실제로 욕도 못한다’”(화이트페이퍼), “조덕제 인성, 女 배우가 언급한 발언 들어보니 ‘실제로 교회 성가대 활동’”(KNS뉴스통신) 등이다. 조덕제씨를 고소한 여성 배우에 대한 추측성 보도도 있다. “조덕제 상대 여배우 ‘백종원의 식당’ 배탈 합의금을 요구? 추측일 뿐 ‘기자회견도 대리인’”(서울경제)는 추측성 보도로 상대 여성 배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준다.

반면 1심 판결이 있었던 2016년 12월1일부터 2017년 9월30일까지 10개월 동안 네이버에서 ‘남배우 성추행’으로 검색한 결과, 관련 보도는 28건이었다. 해당 사건에는 피해자가 대리인을 통해 피해를 호소하고, 여러 여성단체와 한국영화산업노동조합, 씨네21 등 다양한 단체와 함께 포럼을 열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지난 10개월 동안 28건을 보도한 언론이, 가해자로 지목된 배우가 억울하다며 나서자 일주일 만에 500건이 넘는 기사를 낸 것이다.

▲ '영화계 성추행' 사건 1심 판결이 있었던 2016년 12월부터 2017년 9월까지 10개월동안 관련보도는 30여 건이 되지 않는다.
▲ '영화계 성추행' 사건 1심 판결이 있었던 2016년 12월부터 2017년 9월까지 10개월동안 관련보도는 30여 건이 되지 않는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이 사건은 작년에 피해자가 피해를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부각되지 못했는데, 판결 이후 가해자로 지목된 남자배우의 주장은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다”며 “언론이 성추행, 성폭력 사건을 보도할 때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말에 더 주목하는 방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언뜻 보면 가해자 본인이 억울하다고 주장하니 담아주는 게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그렇다면 왜 피해자가 피해를 호소할 때는 보도하지 않았나 생각해봐야 한다”며 “또한 지나치게 자세한 묘사를 하는 보도는 성추행 사건을 피해자 중심적으로 보지 않고, 소비하는 것에 집중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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