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동안 핵발전의 안전성과 경제성 교육을 받아온 사회에서 단 3개월 만에 이를 뛰어넘기란 처음부터 역부족이었다.”
“이번 조사결과에서 핵발전의 위험성에 절반 이상이 공감하게 했다는 점은 큰 성과라고 본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원자력발전소 공사 재개로 권고 결정을 하자 그동안 신고리 원전 백지화를 촉구하며 참여해온 전문가 시민사회단체 측은 원전 이해관계 집단과 언론의 편파보도라는 현실의 벽을 절감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설문조사 문항 중 원자력정책 방향과 관련해 원전을 축소해야 한다는 견해가 시민참여단의 과반이 넘는 52.3%가 나온 반면, 확대해야 한다는 견해는 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 것에 대해서는 고무적인 반응이었다. 시민들이 핵발전 위험성에 경각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사 재개를 주장했던 측이 원전 축소 조사결과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고리공론화위원회의 설문조사 결과 시민참여단 471명 가운데 59.5%가 공사재개를, 40.5%가 공사중단 의견을 내놓았다. 시민참여단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그는 그동안 원자력학계에 있으면서도 거의 유일하다시피 탈원전 또는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신고리 5‧6호의 위험성을 강조해왔다. 공론화 과정에서도 국내 원전 건설의 위험성에 대해 적극적이고 전문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그러면서도 박 교수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안전성 이외의 이슈가 중요시된 것은 유감”이라며 “그런 논리로 결정할 것이면 탈원전을 무엇하러 하겠다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논리에 맞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공론화위에 대해서도 박 교수는 “정책에 대한 중립을 지켰는지 모르나 이 문제는 단순히 기계적 중립을 가질 사안이 아니었다”며 “정확한 정보는 전달하고 시작했어야 한다. 400만 인구, 다수호기 있는데 대한 안전성 평가를 하지 않았다는 점, 향후 수십년간 이 지역에 원전이 10기가 된다는 점, 한 기라도 문제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분명히 얘기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런 얘기가 없었다면 공론화 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며 “단지 건설중단으로 매몰비용 2조가 날아가고, 전기요금, 일자리 만 중심에 두는 것이었다면 공론화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상희 녹색당 정책기획팀장은 이날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사항을 잘못 설계했다는 얘기가 돼 버린 것”이라며 “공론화위원회 가동 결정도 대통령이 너무 갑작스럽게 말해 판이 벌어지는 바람에 ‘왜 공약을 지키지 않았느냐’고 물을 새도 없이 공론화위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공약을 뒤집은 결과가 나왔다는 점에서 실망할 수밖에 없다”고 아쉬워했다.
다만, 원자력정책 방향과 관련해 원전을 축소해야 한다는 견해가 53.2%나 나온 것에 대해서는 고무적인 목소리가 많았다.
박종운 동국대 교수는 “결론적으로는 설문을 잘한 것으로 본다”며 “앞으로 탈원전을 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토론회는 안해도 될 정도의 결과이다. 신고리 재개 권고 결정 뿐 아니라 탈원전 조사결과에 대해서도 재개 쪽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탈핵팀 처장은 2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원전 축소가 과반수 이상 나온 것은 우리 시민들의 굉장히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라며 “시민들은 지혜롭게 그 방향을 분명히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2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지난 40년 동안 우리 사회가 핵발전 안정성 경제성에 대해 교육을 받아온 상태에서 단 3개월의 공론화기간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뛰어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며 “그럼에도 탈원전 문제에 대한 공감을 얻어냈다는 것이 중요하다. 향후 탈핵정책이 더 가속화될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이상희 녹색당 팀장도 “시민대표단이 안전성을 강조하고 핵발전소가 위험하다는 판단을 한 것은 유의미한 의의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김지형 신고리공론화위원장도 이날 브리핑에서 “특히 시민행동 측 여러분들에게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시민참여단 분들의 다수 지지를 얻어내지는 못했지만 여러분은 원전 문제에 대해 시민들의 지대한 관심을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그 자체가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결과가 나온 이유에 대해 언론의 집요하고 반복적인 편파보도와 원자력 업계 등 이해관계자 집단의 생존투쟁이라는 점도 지적됐다. 박 교수는 “(조선일보를 비롯해) 중앙언론사의 편파적인 보도가 많은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본다”며 “10% 이상 영향은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홍보비 등 자금이 많고 조직이 큰 사람들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구도”라며 “돈과 조직도 많은 데다 죽자 사자 매달리는 사람들에 대해 이기기 어렵다”고 말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은 “처음부터 판이 기울어진 상황에서 원전 확대에 대해 일방적인 홍보를 하고, 언론환경 역시 지극히 안좋았다. 일방적 보도에 가짜뉴스까지”라며 “친원전측은 한수원과 현대건설, 삼성물산, 두산중공업과 같은 대기업이 모여있는 데다 원자력학회와 정부 출연연구소까지 결합해 독점하고 있던 정보를 쏟아낸 반면, 우리는 기껏해야 민간전문가의 재능기부로 하다보니 판이 기울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했다.
양이 처장은 “40년간 원전 안전 홍보를 해온 세력에 대해 한계를 절실하게 느꼈다”며 “이번 공론화 참여 과정에서 원전확대 정책에 이해관계가 있는 세력이 우리 사회 곳곳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반대로 재생에너지의 경우 비율도 2%에 불과하고 종사자도 적은 데다 시민들의 확신도 많이 약했다. 현실의 벽을 절감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양이 처장은 “이 과정도 숙의할 수 있도록 충분히 전달해야 했으나 시간도 부족했고, 우리의 능력에 있어서도 여러 한계가 드러난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연대 대표도 “보수언론과 원전업계가 수출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궤멸적 상황에 들어간다는 식으로 몰아간 것이 결국 영향을 준 것 같다”며 “심지어 합숙토론 마지막 날엔 수출 담당자까지 등장시켜 자신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적극 설명에 나섰다. 막판엔 원전업계에서 공사 중단측에 대해 발표내용이 잘못이거나 거짓이라는 식의 네가티브 전략을 써 진흙탕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능력이 미흡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 나온 것일 것”이라며 “시민사회와 산업계 경쟁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