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24일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한 방송사 사장 선임을 앞두고 특정 사장 후보가 찾아와 ‘방송 장악’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충성맹세”에 가까운 다짐을 했다고 폭로했다. 그가 한겨레에 기고한 글(“청와대는 ‘방송 쪼인트‘를 이렇게 깠다”) 가운데 다음과 같은 대목이 논란이었다.

“2006년 어느 날 풍경이 떠오릅니다. 모 방송사 사장 선임을 앞둔 시기였습니다. 한 사장 후보가 저를 만나자고 집요하게,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연락이 왔습니다. 해당 방송사 출신이지만 한나라당과 연관성이 깊고, 누가 봐도 아주 보수적 성향의 인사였습니다. 무엇보다, 청와대가 인사에 끼어들기 어려운 상황인데 만나자고 하니, 만날 이유가 없어 피했습니다. 그런데 위계를 써서 제가 참석한 저녁 모임에 엉뚱하게 나타나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피하기 힘든 경로를 통해 어쩔 수 없이 만났을 때 그가 던진 말은 충격이었습니다. 현재 사장이 방송을 장악 못해 비판적 보도가 많다, 확실히 장악해서 대통령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되게 하겠다, 임기 말인데 (방송 장악이) 중요한 문제 아니냐, 거기엔 내가 적격이다, 특히 노조 하나는 확실히 장악해서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 그럴 사람은 나 밖에 없다, 나를 밀어 달라, 이런 얘기였습니다. 사실상의 충성맹세이자 은밀한 다짐을 한 것입니다. ‘사장 선임 결정권을 가진 분들은 이사회 이사들이니 그 분들 만나 (선거 운동) 잘해 보시라’고 돌려보냈지만, 씁쓸했습니다. 방송에 대한 시각이 섬뜩했습니다. 그분이 이 정권에서 아주 잘 나가고 있고, 그분도 명예가 있으니 누구인지 밝히지 않겠습니다. 이 얘기를 소개드리는 이유는, 참여정부 청와대에도 그런 인사들이 줄을 댔는데 방송장악에 노골적인 이 정권 아래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지 한 번 짐작해 보시라는 뜻입니다.”

▲ 한겨레 2010년 12월24일자 기고.
▲ 한겨레 2010년 12월24일자 기고.
오마이뉴스는 추가 취재를 통해 2010년 12월29일 “양 전 비서관을 만난 인사는 뜻밖에도 김인규 현 KBS 사장이었다”고 실명 보도를 했다. 양 전 비서관도 다음날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익명의 그 인물은 김인규 KBS 사장이 맞다”고 인정했다.

김인규 전 KBS 사장은 즉각 KBS 홍보실을 통해 “터무니없는 모략이며 적반하장”이라며 “오히려 나는 ‘공영방송의 사장 선임에 정권이 개입해서는 좋을 것이 없다’는 입장을 강력히 피력했다”고 주장했다. KBS는 양 전 비서관과 오마이뉴스를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소송은 흐지부지됐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김인규 전 KBS 사장 재임 시절(2009년 11월~2012년 11월) 3년치 임원회의록을 보면 KBS는 칼럼이 나오고 일주일 뒤인 2010년 12월30일 긴급 간부 회의를 열고 양 전 비서관의 폭로와 오마이뉴스 보도에 대한 대응에 나섰다. 김 전 사장은 “양정철과 오마이뉴스에 대해 형사 및 손배소를 걸어라”며 “이기면 그 돈으로 좋은 데 쓰겠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 김 전 사장은 자신이 2006년 11월 KBS 사장 선거에 출마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김 전 사장은 “정연주 (KBS 사장의) 재임 시 본인은 KBS 이사였다. 진종철 KBS 노조위원장이 입후보해달라고 요청했다”며 “그는 ‘이 정권(노무현 정권)과 정(연주) 사장은 코드가 안 맞다. 신임을 잃었다’고 말했다. 사원 상대 여론조사 결과를 보여주더라. 내가 1위(594표)로 압도적이었다. 이것을 보는 순간 흔들렸다. 4000명 가운데 1000명이 응답한 결과였다”고 말했다.

▲ 김인규 전 KBS 사장이 2012년 7월26일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 회장 자격으로 평양 방북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김인규 전 KBS 사장이 2012년 7월26일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 회장 자격으로 평양 방북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김 전 사장은 “고민하는데 이춘발(KBS 이사)한테 전화가 왔다”며 “사장 입후보하라는 권유 받았다. 추광영, 방석호, 이춘호 (KBS) 이사 등 승산이 있어 보였다. 이기욱(KBS 이사)은 경기고 후배고. 6표만 얻으면 되는데”라고 말했다.

김 전 사장은 양 전 비서관에 대해 “양정철이는 기자실에 못 박은 놈”이라며 “내가 (KBS)뉴미디어본부장 때 방에 몇 번 왔다. 내가 그를 만난 날 일기가 여기 있다”며 자신의 수첩에 적힌 기록을 토대로 2006년 11월2일 오후 양 전 비서관과의 만남을 술회했다.

“그는 첫째 왜 방송통신위원회 한나라당 추천(이사)을 거부했냐고 물었다. (양 전 비서관과의 만남은) KBS 면접 1주일 전이었다. 양정철이 계속 개입했다. 이춘발, 박동영 등 (KBS) 여권 이사들에게 다 연락했더라. 당일 인사동으로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가보니 양정철도 있었다. 오후 10시20분 2차로 그 옆 2층 맥주집으로 갔다. 나를 오라고 한 사람이 ‘김 선배, 양정철 붙잡아놨으니 하고 싶은 얘기 다 하시오’라고 하기에 갔다. 그(양정철)의 질문 요지는 ‘KBS 노조가 왜 김 선배를 밀고 있는가?’, ‘사장이 되면 KBS에 무엇을 할 것인가?’, ‘정연주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사장이 되면 정권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등이었다. 나는 KBS 사장을 왜 정권 재창출과 연계 시키나? 5공 땡전 뉴스로 KBS도 망했지만 정권도 망했다. 정연주는 충성맹세했다고 하더라. 내가 못한다고 했다. 최선을 다하겠으니 간섭 말라고 했다. 난 충성맹세하고 그러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랬다간 한 표도 안 나온다. 말도 안 돼서 헤어졌다.”

그러면서 김 전 사장이 (양정철 칼럼에) “어떻게 대응하지”라고 묻자 비서실장은 “일단 법무실에서 댓글을 달죠. MB 캠프에서도 ‘충성’ 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전 사장이 “양정철이 형사 처벌 되느냐”고 묻자 법무실장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사장은 “KBS 사장 선임 과정에 정치권이 얼마나 개입했는지 다 까겠다”며 “정치부 기자 오래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을 아는데, 이번에도 당대표 등 여러 사람이 김인규가 낫다고 했다. 걱정 말고 전략에 말려들까 우려되는데 조심하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김 전 사장은 이어 “양정철과 오마이뉴스에 대해 형사, 손배소 걸어라. 이기면 그 돈 좋은데 쓰겠다”고 공언했다.

김 전 사장은 재차 “‘KBS 개혁 어떻게 하실 거죠’라고 하길래 좋은 질문이라 생각돼 열심히 답했다”며 “이춘발도 양정철에게 잘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김 전 사장은 “이 기회에 KBS 사장 인선에 정치 개입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KBS 임원회의록에 따르면, 이날 회의석상에는 ‘사장 후보 여론조사 결과’ 문건이 있었고 그 조사를 주도했던 진종철 전 시청자권익보호국장(2006년 당시 KBS 노조위원장)도 회의에 배석해 조사 배경 등에 대해 설명했다. 

진 전 국장은 2010년 12월31일 사내 게시판에 “김(인규) 사장은 임원회의를 통해 당시 만남에 대해 일기식의 메모를 해둔 내용을 장시간에 걸쳐 자세히 공개하며 그(양정철)의 발언이 사실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며 “우리는 김 사장의 일기 형식의 구체적인 메모 내용과 평소 보여온 인품을 신뢰하며 김 사장이 그 같은 상식 이하의 발언을 하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양씨는 자신의 발언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 전 국장은 정연주 전 KBS 사장 퇴진 운동을 주도했고 정 전 사장이 부당 해임을 당한 뒤 부임한 이병순 사장 시절 KBS홀 팀장과 시청자사업팀장 등을 지냈다. 

▲ 이명박 대통령이 2013년 2월6일 청와대에서 열린 디지털방송 전환 유공자 포상에서 김인규 전 KBS 사장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이명박 대통령이 2013년 2월6일 청와대에서 열린 디지털방송 전환 유공자 포상에서 김인규 전 KBS 사장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0년 12월31일 임원회의에서 김 전 사장은 “정연주라는 방송 모르는 사람이 정치적 이념으로 무리하게 팀제(를 도입,) 위계질서를 흐트러뜨렸다”며 “치유에 기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 뒤 “(KBS 새노조에서는) 망나니(양정철) 떠드는 얘기 받아서 (성명) 내고…. 후배들이 양정철 누구인지 아느냐? KBS 사장 선거 개입의 장본인이 선거 개입 말라는 사람에게 ‘충성맹세 했다’고 하니, 출마하려는 수작 같은데 법적으로 출마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사장은 이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며 양정철씨를 두고 “한마디로 ‘청와대 개입의 장본인’이고 노무현 재단에서 쫓겨났다”며 “수원 출마 예정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김 전 사장의 반발은 왜 소송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김 전 사장은 2012년 2월23일 임원회의에서 “이춘발씨가 중간에서 설레발해서 소 취하했다”고 밝혔다.

해당 임원회의록을 어떻게 봐야 할까. 김인규 전 사장 본인이야말로 MB 특보 출신으로 2009년 11월 KBS 사장 임명 당시 ‘낙하산 인사’ 논란을 불렀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긴 어려워 보인다. ‘충성 맹세’ 논란 당시에는 김 전 사장이 인사 로비를 하려했다는 또 다른 증언도 나온 상황이었다. 

당시 참여정부에서 제3기 방송위원회 부위원장과 위원장 직무대행을 지냈던 최민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1년 1월2일 한겨레에 “2006년 10~11월쯤 방송위원회 동료 위원이 ‘김인규씨가 만나고 싶어 한다’고 하기에 거절했다”고 밝혔다. 최 전 의원은 “그후 며칠 있다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정보통신부 사람들과 만나기로 돼 있어 호텔 입구를 들어서는데 김 사장이 다가와 ‘저 김인규입니다, 차나 한잔 마시며 얘기하고 싶다’고 인사를 했다. 김 사장에게 ‘싫다, 바쁘다’고 응대하면서 그냥 호텔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밝혔다. 

[김인규 임원회의록으로 본 KBS ①] 수신료 인상 앞두고 김인규는 왜 방상훈을 만났을까?

[김인규 임원회의록으로 본 KBS ②] MB·김인규 앞 김재철 “큰형님 무너지면 화살은 MBC로”
[김인규 임원회의록으로 본 KBS ③] “김미화에 강력 대응해야. 기자들을 불러라”
[김인규 임원회의록으로 본 KBS ④] 김인규 “KBS가 동성애 드라마하는 건 무리”
[김인규 임원회의록으로 본 KBS ⑤] KBS 김인규 “노무현 차명계좌 장기적으로 취재하라”
[김인규 임원회의록으로 본 KBS ⑥] 김인규 “나가선 절대 안 되는 4대강이 나갔다”
[김인규 임원회의록으로 본 KBS ⑦] 김인규 “조선일보, 기자들 행사 동원력 놀라워”
[김인규 임원회의록으로 본 KBS ⑧] 김인규 “이승만 다큐가 편향? 그럼 김대중도 못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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