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가 사장 및 편성·시사교양·보도 최고책임자에 대한 임명동의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소유와 경영의 완전한 분리, 방송 취재·제작의 자율성 확보를 위한 노조 투쟁의 성과물이며 지난 9월 대주주의 사임에 따른 후속 조치이기도 하다.

구성원 신뢰받는 책임자라야 방송 독립성도 확대된다

방송 자유는 방송기관의 자유가 아니라 국민의 방송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공적 과제 수행을 위한 자유이다. 방송 주권을 실현하라고 국민이 맡긴 자유이다. 방송사는 영업활동보다 공적 책무를 이행하기 위한 기관이다. 국민을 대표한 정부가 방송 사업을 허가하고 승인함으로써 사회적 계약을 하는 셈이다. 때로는 규제하거나 지원하면서 그 책무를 원활하게 수행하도록 한다. 위임받은 주체는 방송사업자만이 아니다. 방송사 구성원들의 집합이 공적 책임을 수행할 주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취재와 제작 및 편성자가 함께 위임을 받은 것이다.

방송제작자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방송의 권한을 프로그램으로 생산하고 편성하여 제공하는 방송 책무의 구체적 담당자다. 당연히 보도와 제작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하는 데 참여할 권리이자 의무가 있다. 그것이 책임을 이행하기 위한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방송법에서도 ‘방송프로그램 제작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취재 및 제작 종사자의 의견을 들어 방송편성규약을 제정하고 이를 공표’하도록 하고 있다. 구성원들이 함께 그 책무를 수행하도록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특정집단이나 세력으로부터 독립하고 외부의 간섭 없이 방송할 내용을 기획하고 취재하여 프로그램을 제작 편성 전송하는 자유이다. 정치 권력이나 소유주를 비롯한 자본 권력, 사회의 제 세력으로부터의 독립까지를 포괄한다. 제작·편성의 자율성은 방송의 자유라는 직업적 가치를 공유하고 부당한 개입에 집단적 조직적으로 저항할 힘을 실어준다.

▲ 지난 9월1일 열린 방송의날 축하연 당시 고대영 KBS 사장(왼쪽)과 김장겸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 9월1일 열린 방송의날 축하연 당시 고대영 KBS 사장(왼쪽)과 김장겸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조직의 책임자를 임명하는데 구성원들의 의지를 반영하는 것은 자율성과 독립성을 더 확고하게 한다. 경영진과 방송사가 받는 외적 간섭과 압력을 막아주는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내적 견제 장치가 작동하는 것이다. 편성·제작진들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할수록 외부적인 자유도 확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발적 참여와 창의적 에너지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조직 역량은 높아진다. 동의와 내부적인 공감대가 없이는 조직을 이끌 지도력을 발휘할 수도 없다.

더 이상 고대영·김장겸 체제가 버틸 명분은 없다

KBS와 MBC 노동조합이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을 벌인지 이미 두 달째다. 보도를 비롯하여 프로그램 제작은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취재를 제대로 못 하니 뉴스의 질이 형편없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부족하여 녹화뉴스로 땜질을 하기도 했다. 재방송 또는 편집한 프로그램으로 시간만 메우는 경우도 허다하다. 시청자의 권익보호와 민주적 여론형성 및 국민문화의 향상을 도모하도록 규정한 방송의 공적 책임은 수행되지 못한다. 방송주권이 원천적으로 침해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장들은 도무지 공영방송을 정상화시키려는 최소한의 의지와 책임감도 없다. 물러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은 방송주권을 훼손하면서 그동안 권력의 나팔수 노릇을 한 현 사장체제의 책임을 물을 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방송 주권의 실현자로서 역할을 맡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매주 금요일 ‘돌마고 파티’라는 집회를 열어서 퇴진을 요구했다. 현 사장들이 임명한 보직자들마저 가담한 내부 구성원들도 현 체제가 물러나야 한다며 제작을 거부한다. 방송주권자로부터도 불신받고 방송책무의 공동 수행자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한다. 어떤 빌미로도 고대영·김장겸 체제가 더 버틸 명분이 없다.

▲ 서울 양천구 목동 SBS 본사 모습. ⓒ 연합뉴스
▲ 서울 양천구 목동 SBS 본사 모습. ⓒ 연합뉴스
‘탄압받는 언론인 코스프레’ 그만두고 ‘공영방송 정상화’ 받아들일 때

SBS는 대주주의 방송 개입의 책임을 지고 회장과 경영진이 물러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내부구성원의 동의를 통해 사장과 주요 본부장을 임명하겠다는 마당까지 왔다. 내적 자율성과 독립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는 방송 책임을 이행하는 주체로서 조직 구성원들의 집합을 인정하는 셈이다. 방송사 제작과 편성의 주체로서 내부 구성원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믿음은 더 깊어졌다. 일반기업과는 달리 방송조직이 가진 특수성이다. 영리추구가 목적이 아니라 방송 주권 실현의 대행자이기 때문이다.

특히 공영방송은 그 책임이 더욱 무겁다. 그 조직 자체가 방송의 공적 책임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 공영방송 사장들이 자사 뉴스를 앞세워 정권의 방송장악이라며 사실호도로 버텨봐야 구차해질 뿐이다. 구성원들의 저항으로 정상적인 경영을 해나갈 수도 없다. 조직체계는 무너졌고 회복도 불가능하다. 권력에 의해 탄압받는 언론인 코스프레는 씨알도 안 먹힌다. 선동적 정치세력의 불쏘시개 노릇을 해봐야 더욱 초라하고 비참해질 뿐이다. 강제로 쫓겨나는 모습을 보여 값싼 동정을 구걸한들 소용없다. 오히려 국민들의 분노만 키울 것이다.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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