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들이 ‘공익 목적’ 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그 치졸함에 화가 나요. 언론사들은 공익을 주장할 수밖에 없겠죠. 그래야 위법성이 조각되니까. 그런데 인터넷에 있는 내용을 확인도 없이 그대로 옮긴 게 공익인가요? 어떤 공공의 이익이 있었나요?”

9월19일 스포츠서울은 “홍가혜씨에게 진심으로 사과합니다”라는 사과문을 게시했다. 사과문에서 스포츠서울은 “세월호 현장에서 해경의 구조 활동 책임이라는 공익적 사안과 무관한 사생활에 관하여 인터넷에 떠도는 허위 사실을 충분한 사실 확인 없이 수차례 보도했다”고 인정했다. 

관련된 허위사실은 △연예부 기자를 사칭해 아이돌 그룹과 사진을 찍었고 △티아라 전 멤버 화영의 사촌언니라고 주장했으며 △다수 야구선수들의 애인 행세를 했고 △사망한 아무개 야구선수와 일면식이 없음에도 자신의 통장으로 관련 모금을 진행했으며 △도쿄 거주 교민 행세를 했다는 내용 등이다.

스포츠서울뿐 아니다. 수십 개 언론사가 기사를 쏟아냈고 이 중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이투데이, 아시아경제, 한국경제TV, 더 팩트, 스포츠월드 등 20여 곳의 언론사가 홍씨와 소송 중이다. 해경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된 홍씨가 1심과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대부분의 기사는 삭제됐다. 

▲ 스포츠서울의 사과문. 사진=스포츠서울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스포츠서울의 사과문. 사진=스포츠서울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하지만 남아있는 기사를 통해 당시 홍씨에 대한 보도태도를 확인해볼 수 있다. 정성희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2014년 4월30일 “연극성 인격장애 홍가혜”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 같은 허위사실을 단정적으로 쓴 다음 “인격장애의 정도에 비추어 교도소보다는 병원으로 가야할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일련의 허위사실은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4년 4월18일 인터뷰 다음날인 2014년 4월19일 홍씨가 잠적 상태라는 기사가 쏟아졌다. 전남지방경찰청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홍씨는 19일, 담당형사와 두 차례 통화했다. 이런 사실은 보도되지 않았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다. 

홍씨는 일련의 과정이 조직적으로 진행됐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MBN인터뷰 직후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은 해경에 전화를 걸어 인터뷰 내용의 진위를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전남지방경찰청 지능팀이 한 일은 스포츠월드 김용호 기자와의 통화였다. 

김 기자는 홍씨에 대한 허위사실을 제기하고 유포한 당사자다. 당시 김 기자는 트위터에 “저는 홍가혜 수사했던 형사에게 직접 그녀의 정체를 파악했다. 인터넷에 알려진 것 이상이다. 허언증 정도가 아니다. 소름 돋을 정도로 무서운 여자”라고 썼다. 이틀 뒤 홍씨는 유치장에 갇혔다. 

홍씨가 언론사로부터 첫 사과를 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1251일, 3년 5개월이다. 그 동안 홍씨는 가장 유명한 일반인 중 한 명이 됐다. 지난 5월에는 홍씨의 결혼소식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홍씨에게 직접 연락했던 언론사는 부산일보가 유일했다. 홍씨는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가십거리”라며 씁쓸해했다. 

지난 15일 제주도 자택에서 홍씨를 만났다. 인터뷰는 3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아래는 일문일답.

▲ 홍가혜씨가 10월15일 제주도 자택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 홍가혜씨가 10월15일 제주도 자택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요즘 근황은 어떤가.
“6월에 제주도로 이사를 왔고 아기를 가졌다. 세월호 이후 스스로 정한 기한이 3년이었다. 3년상을 치른다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태교에 전념하고 싶다. 글 쓰고 그림 그리면서 지낸다. 소송은 변호사가 맡아서 한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해도 재판기록이나 수사기록을 봐서 문제다. (웃음)”

-지난달에 스포츠서울로부터 공개사과를 받았다. 진행과정이 어떻게 되나.
“작년에 20여 곳 언론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다. 사실 더 빨리 소송을 진행하고 싶었는데 비용이 없었다. 한두 개 언론사가 아니니까 비용이 꽤 들더라. 사람들은 내가 악플러들 고소해서 돈을 번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악플러들에게 받은 배상금으로 언론사 상대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왜 스포츠서울이 처음 사과를 하게 된 건가. 
“처음 조정에 넘겨졌던 언론사가 스포츠서울이다. 올해 4월 즈음에 스포츠서울의 대표 격인 사람이 나왔다. 저는 그 날 제정신이 아니었다.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을 처음 보는 날이었다. 그 사람이 기사를 쓴 것도 아닌데 화가 되게 많이 났다. 많이 울었고 온갖 분노의 말을 쏟아냈다.”

-그런데 조정이 된 건가?
“이후에는 조정에 가지 않았다. 조정 며칠 전부터 예민해지고 신경이 쓰였다. 두 번째 조정기일에서 대표 격인 사람이 ‘홍가혜씨가 화를 내고 우는 모습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생각해보니 그럴만하다. 언론사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사과하고 싶다. 피해회복에 발 벗고 나서겠다’고 말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조정에 응했다.”

▲ 2014년 4월30일 동아일보 칼럼.
▲ 2014년 4월30일 동아일보 칼럼.
-다른 언론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조선일보는 반론보도를 해주겠다고 했다. 반론보도는 오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응할 필요가 없다. 언론사들 답변서를 보면 공익을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을 펼친다. 제 인터뷰를 검증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언론사들이 한 건 인터뷰 검증이 아니다. 제 사생활에 대한 허위사실을 기사화했다. 그런 기사가 MBN 인터뷰 이후, 일주일 동안만 3500여건이 넘는다. 저한테 물어보거나 찾아 온 언론사는 없었다.”

-공익목적이었다는 답변서를 봤을 때 기분이 어땠나.
“사익을 공익으로 포장하는 그 치졸함에 분노가 치밀었다. 언론사는 공익을 주장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위법성이 조각되니까. 하지만 인터넷에 있는 내용을 확인도 없이 그대로 옮긴 게 공익인가. 어떤 공공의 이익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클릭수를 끌기 위한 기사였을 뿐이다. 당시 기사도 화나지만 지금 언론사들의 태도가 더 화난다.”

-가장 악질적인 언론사는 어디였나.
“스포츠월드다. 김용호 기자는 저에 대한 허위사실을 트위터에 썼고 기사화했다. 사람들이 스포츠서울과 스포츠월드를 헷갈려 하는데 스포츠월드였으면 조정에 응하지 않았다.”

당시 김용호 기자는 4월18일 오후 6시 “내가 홍가혜의 정체를 공개한 이유”라는 제목의 기자칼럼에서 “밑바닥 인생을 살던 홍가혜는 성공을 위해 계속해서 거짓말을 했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았다”며 “과거 그녀의 거짓말에 걸그룹 티아라는 현제 재대로 활동을 못할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 이를 용서해줬더니 지금 그녀의 거짓말은 더 커져서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고 썼다. 

그러나 이 기사는 문제가 많다. 김 기자는 자신이 홍씨를 “용서해줬다”고 썼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재판기록을 보면 김 기자는 홍씨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해 “홍씨가 트윗에 화영의 사촌언니라고 직접 언급한 적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직접적인 표현은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영의 사촌언니라고 소문났다”고 증언했다. 

▲ 김용호 스포츠월드 기자의 법정 증언 내용. 사진=이하늬 기자
▲ 김용호 스포츠월드 기자의 법정 증언 내용. 사진=이하늬 기자
-김용호 기자가 왜 그런 트윗을 썼다고 생각하나.
“왜 그렇게 조작하다시피 해서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수백 번 생각해 봤지만 모르겠다. 나는 그 사람이 아니니까. 다만 김용호 기자 자신이 의도했든 아니든 국가가 가리고 싶어하는 사실을 가려준 훌륭한 도구였다고 생각한다. 청와대가 해경에게 인터뷰 진위여부를 확인하라고 지시했고 그 사이에 김용호가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그리고 전남지방경찰청은 김용호와 통화한 내용을 내사해 윗선에 보고하고 체포 구속 과정에 그 내용을 첨부했다. 경찰은 김용호 발언을 검증하지 않았다.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를 공격한 비열한 수법이었다. 내 사생활을 조작한 걸 수사랍시고 하고 언론에 거짓발표를 하는 등의 여론몰이, 여론플레이가 이렇게 시작됐다.”

-김용호 기자와 만나거나 통화한 적이 있나.
“2012년 8월1일에 통화를 했다. 당시 제가 트위터에 ‘나는 티아라 화영의 사촌언니가 아니고 야구선수 애인이 맞다’고 글을 썼다. 그리고 전화하라고 번호를 남겼더니 전화가 왔다. 그때 티아라 화영의 사촌언니가 아니라고 분명히 이야기를 했다.”

-다음 상황으로 넘어가보자. 그리고 나서는 홍가혜가 잠적했다는 보도가 많이 나왔다.
“사실이 아니다. MBN 인터뷰 다음날인 4월19일 담당형사와 두 차례 통화를 했다. 담당형사는 21일 월요일 오후 2시까지 출석하라고 했다. 나는 버스 시간을 고려해서 오후 4시까지 출석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문자도 보냈다. 그런데 이후에도 내가 잠적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출처는 경찰이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실제 당시 홍씨의 통화기록을 보면 홍씨는 전남지방경찰청 지능팀 임아무개 형사와 4월19일 오후 7시23분과 8시2분에 각각 6분48초, 17분30초간 통화했다. 문자를 보낸 시각은 오후 9시34분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잠적했다는 보도가 계속되자 홍씨는 임 형사와 약속했던 21일 오후 4시가 아닌, 20일 오후 10시10분께 경찰에 자진 출석했다. 

-당시 상황을 좀 설명해 달라. 
“제가 잠적했다는 기사가 계속 나왔다. 심지어 전남지방경찰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홍가혜 위치추적을 하니 마니 하는 뉴스를 봤다. 제가 잠적했다고 보도한 언론사 중에서 제게 전화해서 확인한 곳은 없었다. 경찰 말만 듣고 기사를 쓴 거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사정을 모른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거짓말 안 했는데 왜 숨어?’ 이런 거다. 제게 저주를 쏟아 부었다. 저는 잠적한 적도 없는데. 억울했다.”

- 경찰에서는 어떤 입장이었나?
“20일 밤에 경찰에 가서 왜 잠적 기사가 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건 언론사 마음대로 하는 거라고 했다. 경찰이 언론사 탓을 했다.”

홍씨에 대한 체포와 구속은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경찰은 4월19일 홍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홍씨는 20일 오후 11시께부터 21일 오전 3시까지 연이어 조사를 받다가 “체포영장이 발부됐다”라는 말과 함께 바로 유치장에 수감됐다. 경찰은 22일 도주우려가 있다며 홍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23일 오후 홍씨는 구속됐다. 

▲ 2014년 4월19일 홍가혜씨와 임아무개 형사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사진=홍가혜 제공
▲ 2014년 4월19일 홍가혜씨와 임아무개 형사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사진=홍가혜 제공
-그렇게 교도소로 가게 된 건가.
“유치장에 10일 있고 이후 목포교도소로 갔다. 문제는 사람들의 인식이다. 사람들은 체포영장,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유죄로 생각한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허언증 환자’가 거짓 인터뷰를 한 다음에 잠적하고 결국 구속된 거다. 그러면서 나는 사회와 완전히 단절됐다.”

-교도소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그 질문이 제일 싫다. CCTV가 24시간 작동하는 독방에 한 달 정도 있었다. 그때는 인권이나 그런 걸 몰라서 감옥은 다 그런 줄 알았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생활할 때는 거짓말쟁이 취급을 당했다. 제가 무슨 말을 해도 거짓말이라는 시선이었다. 너무 수치스러웠다. 나는 거짓말한 게 아닌데.
저에 대한 인식이 바뀐 계기가 있다. 다 같이 저녁 뉴스를 보는데 제 소식이 나왔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홍가혜씨 인터뷰 발언 대부분이 사실이고 구조를 촉구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주장하며 나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일순간 그 방에 있던 사람들이 숨을 안 쉬었다.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홍씨는 이 부분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훔쳤다. 

-많이 억울했을 것 같다.
“오히려 감옥에 있을 때는 억울하다는 생각을 별로 안 했다. 명예훼손하면 다 체포되고 구속되는 줄 알았기 때문에. 나중에 교도관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구속되는 경우는 처음 봤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놀랐다. 정말 힘들었던 건 출감 이후였다. 교도소에서는 세월호 참사 수습이 잘 되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나와 보니 세월호 유가족 엄마들이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었다. 유가족들이 저를 미워하는 줄 알았는데 대부분 제 편을 들어주셨다. 어머니들이 제게 ‘빨리 못 꺼내줘서 미안하다’고도 하셨다.”

-악플러들을 고소했다. 하지만 얼마 뒤 ‘홍가혜법’이 논란이 돼 또 한번 언론의 표적이 됐다. 
“이 부분은 안상돈 검사를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세월호 당시 수사 총책임자가 안상돈 광주고검 차장검사다. 그리고 2015년 4월 대검찰청 형사부에서 합의금 목적 고소를 처벌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고소 남발 사례 중에 제가 있었다. 당시 형사부 검사장이 안상돈 검사다.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언론은 이런 부분은 보지 않았다. 이건 제 생각이지만 그 검사 입장에서는 제가 얼마나 싫었겠나.”

▲ 홍가혜씨가 10월15일 제주도 자택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 홍가혜씨가 10월15일 제주도 자택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여전히 일부 사람들에게는 ‘합의금 목적 고소’라는 인식이 있을 수 있다. 어떻게 보나.
“제가 합의금을 목적으로 악플을 유도한 다음에 고소를 했으면 모를까 그런 게 아니었다. 합의를 요구한 것은 가해자들이었고 경찰이나 검찰에서도 합의를 종용했다. 이 과정에서 합의금은 제가 받은 피해에 대한 정당한 권리다.”

-3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악플러 고소로 시작을 했다. 그러다보니 악플러들 위에 언론사가 있는 게 보였다. 이제는 언론사 위에 국가기관이 보인다. 의도했든 안 했든 당시 정부가 원하던 방향대로 흘러갔다. 해경에 불리한 인터뷰를 했던 저는 마녀가 돼서 사회와 분리됐다. 이후에도 ‘홍가혜 법’이라든지 이런 식으로 여론플레이를 했다.”

-언론으로부터 입은 피해가 크다. 최근에도 홍가혜씨를 다룬 기사가 종종 보인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최소한 사실 확인 노력이라도 했으면 이렇게 원망하지 않는다. 5월에 제 결혼 관련 기사가 나왔는데 이해가 안 된다. 저는 일반인이다. 기사가 안 났으면 좋겠다. 세월호 참사 때나 지금이나 저는 가십거리로 소비된다. 정작 보도돼야 하는 건 제 결혼이 아니라 당시 인터뷰 본질은 무엇이고, 제가 받은 피해는 무엇인지, 그 이후에 제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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