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00일 동안 고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관계자 4인을 업무상과실치사로 재판에 넘겼다. 유족이 최종책임자로 고발한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사고 관련 살수 행위에 직접적 책임이 없다는 이유로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는 17일, 지난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 집회 현장에서 백 농민에게 직사살수를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구은수 전 서울청장, 신아무개 총경(전 서울청 기동본부 제4기동단장), 한아무개 경장(전 충남청 제1기동대 살수요원), 최아무개 경장(전 충남청 제1기동대 살수요원) 등 4명에게 업무상과실치사죄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 2015년 11월14일 쓰러진 백남기 농민에게 경찰이 직사살수를 가하는 모습. ⓒ민중의소리
▲ 2015년 11월14일 쓰러진 백남기 농민에게 경찰이 직사살수를 가하는 모습. ⓒ민중의소리

검찰은 백 농민을 향한 직사살수가 △시위 군중 해산 목적을 위한 필요최소한도로 사용 △가슴 윗부분 겨냥 금지 등의 운용지침을 어긴 것에 초점을 맞췄다.

검찰은 백 농민이 “시위대와 떨어져 혼자 밧줄을 당기고” 있었음에도 살수요원이 “피해자의 머리에 약 2,800rpm 고압으로 약 13초 가량 직사살수했고 (백 농민이) 넘어진 후에도 다시 17초 가량 직사살수”를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검찰은 백 농민의 사인을 “직사살수에 의한 외인사”로 인정했다. 검찰은 “‘직사살수→두개골 골절 및 급성 외상성 경막하 출혈→급성신부전(합병증)→심폐정지에 의한 사망’까지 단계별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두개골 골절, 안와골절 등의 경우 모두 오른쪽 머리 부위에 동일한 외력이 가해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밝혔다.

강신명 빠진 살수 지휘라인 ‘서울지방경찰청→제4기동단→충남살수9호차’

이에 따라 살수요원이었던 한 경장과 최 경장에겐 “현장상황에 따라 운용지침을 준수해 살수해야 함에도 살수차 점검을 소홀히하고 운용지침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됐다.

검찰은 당시 현장지휘관이었던 신 총경에 대해선 △‘가슴 윗부분 겨냥금지’ 규정 등 지침 위반 행위를 방치한 과실 △살수차 내 시야가 차단된 상황에서 무경험 살수요원들에게 고압 직사 살수를 지시 △거리‧수압 조절, 시야 확보 등의 현장 감독 책임을 방치한 과실한 점 등을 들어 업무상과실치사죄를 적용했다.

▲ 2016년 11월5일 오전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던 종로 르메이에르 빌딩앞에서 열린 노제에 참석한 백도라지(아이 안은 사람)씨와 유족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2016년 11월5일 오전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던 종로 르메이에르 빌딩앞에서 열린 노제에 참석한 백도라지(아이 안은 사람)씨와 유족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구 전 서울청장의 경우 “살수 승인, 혼합 살수의 허가, 살수차 이동․배치를 결정하는 등 집회 관리에 대한 총 책임자로서 현장지휘관, 살수요원을 지휘・감독하여야 할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주의의무가 있었다”며 기소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특히 구 전 서울청장이 “시위참가자들의 머리를 겨냥하지 않도록 지휘하지 않은 채 계속 살수만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구 전 청장의 지휘를 받은 신 총경은 검찰 수사에서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지휘과정에서 머리 겨냥 살수 금지 등에 대한 주의 촉구를 하였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백 농민 사망 사고의 최종 법적 책임자는 구 전 서울청장이다. 강신명 청장에겐 구체적·직접적 주의의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 검찰은 “그날(사고 당일) 관련 문건이 있는데 최종 책임자가 구은수 전 서울청장으로 돼있다”며 “살수 승인허가도 서울청장, 무선 지시도 서울청장으로 기재돼있다”고 밝혔다.

검찰이 규명한 직사 살수 보고라인도 ‘서울지방경찰청→제4기동단→충남살수9호차’다. 서울청에서 구은수 전 서울청장과 경비부장이 기동단장인 신 총경과 경비과장·기동장비계장·진압반장 등에게 무전 지시를 내렸고, 이들이 다시 충남살수9호차에 타고 있었던 한 경장, 최 경장에게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갑호비상령’으로 집회 진압, 책임 없나

당시 민중총궐기 집회에 대한 경찰의 과잉 진압을 주장하는 일각에선 강신명 전 청장의 불기소 처분에 대해 즉각 유감을 표명했다. 강신명 전 청장은 11월14일 민중총궐기 집회를 앞두고 ‘갑호비상령’을 발동했다. 갑호비상령은 계엄이 선포되기 전 등의 상황에서 경찰 전원이 비상근무를 명령하는 가장 높은 단계의 비상령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17일 성명을 내 “당시 경찰은 갑호비상령을 발동, 역대 최대의 경력·장비를 동원하고 20만리터가 넘는 물을 살수했다”며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을 정권의 적으로 규정하고 이를 실력으로 제압하고자 한 박근혜 정권의 의도를 충실히 따른 경찰이 야기한 필연적 사건이었다”고 비판했다.

▲ 백남기 농민이 2016년 9월25일 오후 2시 14분경 사망하자 경찰은 사인을 규명하겠다며 부검을 위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쪽으로 진입을 시도했고, 백남기대책위와 가족들은 수백명 시민들의 보호를 받으며 백남기 농민의 시신을 안치실로 이동시켰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백남기 농민이 2016년 9월25일 오후 2시 14분경 사망하자 경찰은 사인을 규명하겠다며 부검을 위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쪽으로 진입을 시도했고, 백남기대책위와 가족들은 수백명 시민들의 보호를 받으며 백남기 농민의 시신을 안치실로 이동시켰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백남기투쟁본부는 “갑호비상령이 내려지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현장 진압에 투입된 경찰관들은 인명피해가 날 수 있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살수차운영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면서 “이렇게 공권력의 남용으로 인명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당사자이자, 최고 책임자가 강신명 전 청장이다. 그럼에도 ‘직접지시’가 없었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은 납득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백남기 투쟁본부는 사실관계를 적극적으로 해석할 시 “미필적고의에 의한 살인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경찰관들이 △살수차 일부 기능이 고장난 상태였다는 점 △살수차 내 시야가 차단됐다는 점 △직사살수가 인체에 치명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 등을 알면서도 지침에 위반된 직사살수를 했다는 점에서다. 백 농민 유족은 사고 발생 4일 후인 11월18일 살인미수 혐의로 강 청장을 비롯한 경찰관 7명을 고발했다.

수사에 700일, 불충분한 해명… 정치권 눈치보기 비판 못 피해

검찰 수사 발표를 종합하면 공권력 남용으로 인정된 행위는 ‘가슴 위 겨냥 금지’ 위반 행위에 그친다. 유족은 △차벽 설치 △살수차 동원 △합성캡사이신(PAVA) 유해성 △최루액 혼합살수 위법성 △직사살수 요건·절차 준수 여부 등 갑호비상령에 따라 동원된 경찰력 전반이 위법했다고 고발했다. 검찰은 이들 쟁점이 모두 적법했다고 최종 판단했다.

검찰 기소는 고발이 접수된 지 700일, 백 농민이 사망한지 388일이 지난 17일 이뤄졌다. 검찰은 2016년 1월부터 12월까지 1년 동안 강신명 전 청장 등 피고발인 7명을 비롯해 참고인 14명을 조사했다.

검찰은 2017년 1월부터 9월까지 9개월 간 관련 동영상을 분석하고 참고인 19명, 피의자 2명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검찰은 “검토할 부분이 많았고 공무집행 과정에서 피해를 입혀 정당성 (쟁점)도 있고, 유사 사례를 수집하고 검토하느라 시간이 걸린 부분이 있다”고 해명했다. 또한 “시위자가 실명해 치상으로 처벌한 유사한 사례가 독일에 있었다. 판결문 원본을 검토하는데 몇 달이 걸렸다”면서 “(백 농민 사망으로) 치상이 치사로 바뀌는 사정 변경도 발생했고, 선례 없는 사건이다 보니 독일 판례를 참고하고 검찰시민위원회 절차를 거차다 보니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2016년 10월10일에 형사사법공조를 요청해 독일의 유사사례 판결을 검토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1년이 가까운 332일이 지난 시점일 뿐만 아니라 백 농민이 사망한 후다.

백남기투쟁본부는 “2015년 11월 유가족과 백남기대책위의 고발 이후 2년이 지난 수사결과지만, 과연 지체된 시간만큼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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