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레기와 국레기. 솔직히 글로 옮기기 거북스런 말이다. 누가 누구를 ‘쓰레기’라 정죄할 권리가 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쓴다. 한 시대를 담아내는 민중의 언어 앞에 겸손하자는 뜻만은 아니다. 기레기와 국레기라는 말이 실제로 현실을 꿰뚫고 있는 살풍경이 무장 벌어지고 있어서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의 어느 의원이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위원장이라는 분”이나 “이효성 씨”라고 불러대는 치기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 당의 또 다른 의원은 전국언론노동조합을 “정권의 홍위병”이라고 살천스레 부르댔다. 홍위병인 언론노조 뒤에서 “정권 실세들이 기획해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것이야말로 적폐”란다.

두 의원은 모두 언론인 출신으로 그 당의 대변인 노릇도 했다. 특히 언론노조를 ‘홍위병’으로 모욕한 국회의원은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강효상이다. 그가 편집국장 시절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을 소신껏 수사하던 검찰총장의 사생활을 들춰내 결국 수사가 흐지부지 됐다.

▲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KBS와 MBC 노조의 파업을 놓고 언론인 출신 두 국회의원이 방송통신위원장을 훌닦는 작태는 ‘기레기’와 ‘국레기’라는 말의 적실성을 새삼 확인해준다. 물론, 모든 기자와 국회의원이 쓰레기는 결코 아니다. 기자들이 도매금으로 욕먹고 있지만, 애면글면 진실을 보도하고 권력을 감시하는 젊은 기자들을 나는 얼마든지 증언할 수 있다. 나름대로 나라에 헌신하는 국회의원도 있을 터다. 기레기와 국레기는 내가 칼럼에서 써온 ‘언론귀족’과 ‘정치모리배’를 ‘순화’한 말일 성싶다.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의 강효상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은 기레기와 국레기가 만난 상징이다. KBS와 MBC 구성원 대다수가 문재인 정부의 조종을 받고 있다고 정말 생각하는지 ‘팩트’를 중시한다는 그의 ‘기자 경력’에 언론계 선배로서 묻고 싶을 정도다.

딱히 강효상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기레기와 국레기들이 말살에 쇠살을 늘어놓으며 말끝마다 ‘국가’나 ‘안보’를 들먹이는 행태를 보자면 부끄러움이 무엇인가를 일러주고 싶다. 강효상이 오랜 세월 기레기로 활동해온 조선일보와 지금 몸담고 있는 자유한국당이 대한민국 국기를 문란케 한 국정원의 범죄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아예 모르쇠를 놓고 있다. 과연 그들이 ‘보수’라 할 수 있는가. 차라리 내가 보수를 자임하고 싶을 정도다.

얼마 전에는 국정원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상대로 ‘와해 공작’을 벌인 사실도 드러났다. 국가안보의 중추기관이 ‘전교조 교사’로 위장해 인터넷에 전교조를 ‘폭로’하는 ‘양심선언’ 글을 올리는 범죄까지 모의했고 언죽번죽 실행했다. 그 글을 올리며 외국인 명의로 아이디를 조작하고, 추적을 피하려 인터넷주소 우회 프로그램까지 동원했다. 국정원이 안보는 뒷전인 채 내부에서 불법 공작을 한창 벌일 무렵에 조선일보는 “늙고 작아지는 전교조… 20대 조합원 2.6%뿐” 따위의 기사들을 내보냈다.

▲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촬영한 국정원 로고. ⓒ 연합뉴스
▲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촬영한 국정원 로고. ⓒ 연합뉴스
범죄 사실이 드러나도 보도조차 않는 기레기들과 딴전만 피우는 국레기들을 어떻게 보아야 옳을까. 기레기와 국레기의 활갯짓은 언론사에서 편집국장과 논설위원을 했다는 윤똑똑이들의 천박한 수준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너그럽게만 보기엔 ‘촛불 정부’의 갈 길이 멀고 시간은 짧다. 바로 그곳에 기레기와 국레기의 노림수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개혁 정책을 힘 있게 펼쳐가기보다 ‘신중하게 좌고우면’케 함으로써 집권 첫해를 넘기려는 의도가 깔렸다고 보아야 옳다.

가령 전교조는 아직도 법외노조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은 아직도 철창에 있다. 이영주 사무총장은 내내 수배 중이다. 현실적인 요건을 몰라서가 아니다. 신중해야 옳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촛불 정부라면 지금보다 치열해야 옳다. 장관과 수석들에게 묻는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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