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이승만과 백선엽을 다룬 KBS 다큐 프로그램은 거센 논란을 불렀다. 친일 행적과 독재자를 미화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MB 특보 출신 김인규 전 KBS 사장 재임 시절(2009년 11월~2012년 11월) 3년치 임원회의록에도 KBS로 향하는 비난 여론을 방어하기 위한 KBS 임원들의 전략 그리고 김 전 사장의 역사관도 담겨 있었다.

KBS는 2011년 6월24일부터 이틀 동안 6·25 특집다큐 ‘전쟁과 군인’을 방영했다. 6·25에 참전한 공로로 여러 훈장을 받았던 백선엽이 KBS 스튜디오에 직접 나와 6·25 영상을 보면서 과거를 술회하는 형식의 다큐였다. 그러나 일제가 항일 세력을 소탕하기 위해 괴뢰정부 만주국 산하에 만든 간도특설대에서 독립군 토벌에 부역한 그의 구체적인 ‘친일’ 행적들은 감춰졌다.

백선엽 다큐 방송 이후 KBS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은 비난 글로 뒤덮였다. “잔악한 친일 행위자인 백선엽을 영웅시하는 다큐멘터리가 공영방송 KBS에서 방송됐다는 사실이 매우 불쾌하다”, “한국전쟁 당시의 전공(戰功)을 집중 부각해 이를 방송에 내보냈다는 것은 숭고한 희생을 바탕으로 조국을 지켜낸 다른 호국 선열을 모욕하는 행위”라는 비판이었다. 이와 같은 시청자 의견은 당시 주말 동안 900여 건이 접수됐다.

▲ 김인규 전 KBS 사장이 2012년 7월26일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 회장 자격으로 평양 방북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김인규 전 KBS 사장이 2012년 7월26일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 회장 자격으로 평양 방북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비난 여론에 KBS 임원들 위축
“죄 지은 것 같이 주눅 들고 그래”

2011년 6월27일 KBS 임원회의에서도 “백선엽 특집에 대한 비판 글이 많아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오는 등 이 문제가 논의됐다.

김인규 전 사장은 ‘홍보 대응’이 부실했다고 지적했다. 김 전 사장은 “한림대학교에서 (미공개) 영상물 3000분 분량을 발굴한 것을 계기로 했다며 ‘비극의 영상’ 등의 타이틀을 달았어야 했다”며 “(그렇게 제목을 달면) 제목에 백선엽도 안 들어가고 임팩트는 강해진다. 홍보 대응을 잘못했다. 비판에 대해 미리 대비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김 전 사장은 “‘백선엽이 아니라 3000분짜리 필름 공개다’라고 제작진이 기자회견을 했어야 했다”며 “그런 준비는 하지 않고 쉽게 가려고만 한다. 프로그램 만든 동기가 뭐야? 백선엽을 위해 만든 거야? 시대·이념적으로 문제될 것 같았으면 대응을 했어야지”라고 질책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KBS를 사랑하고 아낀다면 공격에 대비해 무장돼 있어야 한다. 옆구리 찌르고 들어오면 받아칠 것은 치고…. 백(선엽) 장군 친일 문제…. 영웅 만들기 위한 거냐? 아니면 새로운 발굴 영상이냐? 편성 책임자들이 나서야지. 자신 없으면 프로그램을 내지 말았어야지.(고함) 무슨 큰 죄를 지은 것 같이 주눅 들고 그래.” 내용과 콘텐츠 적절성 여부보다 홍보 대응, 프레임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실제 KBS는 이날(6월27일) 임원회의 이후 “자료 조사 과정을 통해 한림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에서 한국전쟁 당시 미공개 영상자료 3000분가량을 발견했다”며 “이 가운데 백선엽씨의 영상이 포함돼 있어 백씨가 프로그램의 주요 테마로 나오게 됐을 뿐 ‘미화할 의도로 만들어졌다’는 일부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 전 사장 지침에 따른 대응이었다.

▲ 2011년 6월25일 오후 방송된 KBS 백선엽 다큐 ‘전쟁과 군인’ 2부부 ‘싸움의 능선을 넘어’ 편. 사진=KBS
▲ 2011년 6월25일 오후 방송된 KBS 백선엽 다큐 ‘전쟁과 군인’ 2부 ‘싸움의 능선을 넘어’ 편. 사진=KBS
“교수들 동원해서” 이승만 여론 띄우기

김 전 사장이 백선엽 다큐보다 깊은 관심을 보이고 공을 들였던 것은 ‘이승만 다큐’였다. KBS는 2011년 9월28일부터 30일까지 사흘 동안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초대 대통령 이승만’ 3부작을 방영했다. KBS 새노조를 포함해 진보·역사 단체의 거센 반발에도 KBS는 방송을 강행했다.

이 프로그램 기획의 시작은 김 전 사장이었다. KBS 새노조는 2010년 7월 중순 김 전 사장이 6·25 특집 방송팀과의 점심 자리에서 “이승만이 대단한 사람이고 방송에서 한번 다뤄봐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고 폭로했는데 실제 임원회의에서도 김 전 사장은 “압력이 아니라 정확히 기억하는데 6·25 특집이 끝나고 제작진에게 밥을 산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이승만을 재조명하는 게 어떠냐고 나왔다”(2011년 9월28일 임원회의 발언)고 말했다.

2011년 7월6일 임원회의에서 KBS 홍보실장은 “한마디 드리고 싶다”며 “백선엽 때문에 KBS 이미지 악화됐다. 이승만 다큐가 8월에 나간다는데 KBS 수신료 인상 관련, KBS가 정치권에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반 시청자 상대 이미지 관리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조대현 KBS 부사장(조 부사장은 2014년 6월 길환영 전 KBS 사장이 세월호 보도 통제 논란 이후 박근혜에게 해임된 뒤 후임 사장을 맡는 인물)은 “여론을 잘 들여다보면 특정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일 뿐”이라며 “잘 파악하고 말하라”고 경고했다.

김 전 사장은 “미화하는 거면 이승만 특집 방송하면 안 된다”면서도 “미리 (이승만이) 부당하다고 하면 안 된다. 무조건 안 된다는 건 안 된다”고 말했다. 다시 홍보 측에서 “(수신료 인상을 위해) 정치권에 힘을 기울여 왔는데 8월에는 외적 이미지 개선을 위해 힘쓰자는 것”이라며 “‘이승만’ 그런 내용이 아니라 이벤트가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의견을 개진했다.

김 전 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강행했다. “백선엽 건은 갑자기 나와서 모르겠지만 이승만 건은 다르다. 영상물이 발견되는 등 ‘이승만 다큐 이렇게 만들었다’ 이런 칼럼이 나와야 한다. 홍보 쪽과 KBS 방송문화연구소에서 그런 노력을 해야지. 교수들 동원해서. 긍정, 부정적으로 (모두) 다루는 데 못 나가는 이유가 뭐냐? 미화하려 한다? 왜 미화냐?”

2011년 7월20일 임원회의에서도 역사 다큐에 대한 김 전 사장의 발언이 나온다. 전날 방송된 KBS 시사기획 창(“친일의 길, 항일의 길” 편)을 칭찬하며 “친일, 항일 다큐 이렇게 확실히 하는데 무슨 백선엽 논란이야. 억지 중의 억지다. 어제 같은 프로그램의 관계자들이 분명히 나서라. 친일(파의) 아들, 그 자손까지 역사적 심판 내렸다. 이런 프로에 대해서는 백선엽 반대파들이 한마디도 얘기 안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 2011년 8월19일자 조인석 당시 KBS 다큐멘터리국장(현 KBS 부사장)의 조선일보 기고.
▲ 2011년 8월19일자 조인석 당시 KBS 다큐멘터리국장(현 KBS 부사장)의 조선일보 기고.
이승만 다큐를 둘러싼 논란은 보수 언론이 더욱 확산시켰다. 김태익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2011년 8월16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생애와 제1공화국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는 결국 광복절 날 KBS의 전파를 타지 못했다”며 “이 프로그램은 ‘독재자 이승만’을 미화하는 것이며, 방송을 강행할 경우 김인규 사장 퇴진 운동을 벌이겠다는 좌파 민간단체들의 엄포에 KBS가 눈치를 본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전 사장은 8월16일 임원회의에서 이 칼럼을 지적하며 “이승만 다룬 조선일보 논설은 사실과 다른 게 많다”며 “압박에 의해 (이승만 다큐가) 안 나간 것으로 하고 악의적으로 썼더라. 홍보(실장)가 없으면 누군가 제기해야지. 나만 봤느냐”고 물은 뒤 “그것(조선일보 논설)은 KBS에 우호적인 게 아니다. 이왕 내려면 잘 만들자는 의도에서 그런 건데 KBS의 정체성을 건드리는 심각한 칼럼”이라고 비난했다.

조대현 부사장이 “8·15 기획으로 (이승만 다큐가) 편성된 적 없다”고 하자 김 전 사장은 “오늘 중으로 (조선일보 칼럼 상대로) 언론중재위에 반론, 정정 보도 청구하라”며 “아주 고약한 칼럼”이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김 전 사장은 “편성은 안 됐고 가급적 8·15에 맞춰보려고 했는데 (이승만) 자문위원회가 구성돼 있고 현재 보완 중”이라며 “KBS가 좌파 세력에 굴복해서 안 낸 것처럼 말도 안 되게 썼다”고 지적했다.

김 전 사장의 조선일보 칼럼 비난 이후 조선일보에 KBS 입장을 반영한 기고가 실렸다. 조인석 KBS 다큐멘터리국장(현재 KBS 부사장)은 2011년 8월19일자 조선일보 기고를 통해 “초대 대통령 이승만 다큐는 당초 기획대로 방송할 것”이라고 밝혔다. 길환영 KBS 콘텐츠본부장도 8월23일 동아일보 기고를 통해 “KBS ‘이승만 다큐’ 차질없이 방송될 것”이라고 밝혔다. 보수 언론을 통한 여론 작업을 KBS 간부들이 적극 나선 것이다.

▲ 2010년 7월19일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우남 이승만박사 45주기 추도식’에서 참석자들이 분향후 고개숙여 묵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2010년 7월19일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우남 이승만박사 45주기 추도식’에서 참석자들이 분향후 고개숙여 묵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정희 10편도 가능한데”

방송 당일인 2011년 9월28일 임원회의에서 김 전 사장은 “젊은 시절 이승만 그림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전용길 KBS 콘텐츠본부장이 “하와이 등에서 새로 발굴한 화면이 있다”고 하자 김 전 사장은 “홍보실은 최초로 나가는 화면에 선전하라. 뉴스도 내보내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전 사장은 “KBS에 아주 중요한 원칙은 뉴스도 마찬가지지만 확인되고 정확한 것만 낸다는 것”이라며 “강대영 전 KBS 부사장 등의 자문으로 (이승만 다큐) 완성도가 훨씬 높아졌다. 외부 압력에 밀려 방송 연기했다는 건 정말 한심한 말쟁이들의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김 전 사장은 “오늘이 ‘9·28 서울 수복’이다. 이승만 다큐 두고 1년 정도 됐나. 아직도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다큐조차도 제작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친일파 찬양’은 말 같지도 않은 얘기들이다. 그런 식의 논리라면 이희호, 권노갑은 (KBS에) 나가면 안 된다. 하고 싶은 얘기 많지만 쓸데없는 오해를 부를까 참는다”고 말했다.

김 전 사장은 “다큐팀들이 물렸던 것이 박정희 편인데 10편도 가능하지만 박근혜 때문에 내후년으로 미루는 판단을 빨리 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KBS에서 박정희도 다루고 싶지만 2012년 대선 후보로 나설 박근혜 때문에 미룰 수밖에 없다는 것.

이어진 9월28일 KBS 이사회에서 김 전 사장은 “이 시점에서 이승만이 못 나가면 박정희, 김대중도 못 나간다”며 “하늘에 대해 맹세하고 말씀드린다. 지나치게 이념 대립적인 시각에서 보지 말았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방송 이후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친일·독재 찬양 방송 저지 비대위’는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기보다 짜깁기 수준의 다큐에 그쳤다”며 “이승만을 재조명한 게 없다”고 비판했다. KBS 새노조는 10월4일 성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이번 ‘이승만 다큐’는 커다란 후유증을 남겼다. 사장 발언 한마디에 대규모 다큐멘터리가 강요되고 제작 자율성은 실종됐다. ‘승자 이승만 다큐’같은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점은 두고두고 오명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미 부정적으로 평가가 끝난 역사적 인물을 공영방송 KBS를 통해 다시 부활시키려 했다는 점은 ‘과연 KBS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뼈아픈 질문을 한국 사회에 던졌다. 그 대답이 고스란히 부메랑이 돼 KBS에 돌아와 준엄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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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임원회의록으로 본 KBS ⑦] 김인규 “조선일보, 기자들 행사 동원력 놀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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