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당사자 민원 없이도 명예훼손성 게시물을 삭제하도록 하는 통신심의 규정 개정을 추진했던 배경에 청와대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게시물에 대응하기 위해 심의규정 개정을 추진했을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가 작성한 ‘명예훼손 정보에 대한 방통위 심의 관련 쟁점’ 문건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통신심의 규정 개정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문건은 JTBC가 11일 보도한 ‘청와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동향파악 문건’과 함께 작성된 것이다.

▲ 박근혜 전 대통령 ⓒ연합뉴스
▲ 박근혜 전 대통령 ⓒ연합뉴스

2014년 9월경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문건은 명예훼손 심의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직권 또는 제3자의 신고만으로도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고 있다.

문건이 작성되기에 앞서 2014년 1월 방통심의위는 ‘통신심의규정 제10조 2항’을 신설해 명예훼손 게시물에 대한 심의 기준을 마련했다. 기준은 ‘당사자’ 또는 ‘대리인’의 신고가 있을 때만 심의를 청구하도록 하는 친고죄 방식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방통심의위가 신설한 조항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며 “위와 같은 행정실무는 법적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청와대는 상위법인 정보통신망법에는 명예훼손 정보에 대해 ‘반의사불조치’를 요건으로 한다는 점을 들어 “상위법의 위임한계를 벗어난다”고 지적하는 ‘검토의견’을 냈다. 

즉, 당사자의 문제제기를 필요로 하는 방식은 상위법과 충돌하니 방통심의위 직권 또는 제3자의 민원만으로 심의를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청와대의 ‘검토의견’은 1년도 지나지 않아 실행에 옮겨졌다. 2015년 7월 방통심의위는 자신들이 만든 ‘통신심의규정 10조 2항’에 대한 개정을 추진했다. 당시 심의규정 개정을 추진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추천 방송통신심의위원들과 방통심의위 사무처는 ‘상위법과 조화’를 근거로 심의규정 개정을 추진했다. 청와대의 ‘검토사항’과 같은 내용이다. (심의규정은 정보통신망법과 상하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조화를 이룰 필요가 없다는 게 다수 법률학자의 견해다.)

방통심의위는 정부부처가 아닌 민간기구의 성격인 데다 위원들의 논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그러나 문건은 이 같은 절차를 무시하고 청와대가 의사결정의 배후에 있다는 정황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왜 청와대가 ‘명예훼손 심의규정’에 집착했던 것일까.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비망록의 해당 시기 기록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과 연관됐다는 점이 드러난다.

비망록에는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 이후 쏟아지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부정적인 게시물에 대한 대응방안을 고심한 흔적들이 나온다. 2014년 8월27일에는 “다음 아고라: 음란성 패러디 삭제- 검색어 조치”라는 메모가 있고, 9월23일에는 “VIP 7시간 관련 주름수술설 (사이버수사팀)”이라는 메모도 있다. 

▲ 김영한 비망록에 담긴 2014년 10월2일 메모.
▲ 김영한 비망록에 담긴 2014년 10월2일 메모.

이때부터 청와대가 방통심의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2014년 8월부터 비망록에는 ‘방심위’가 등장한다. 8월26일 ”‘다음 아고라- 방심위 통신분야 인적구성’” 메모가 쓰였다. JTBC 보도에 따르면 직후인 9월 청와대는 방통심의위 내부 상황 및 직원들에 대한 동향파악 문건을 작성했다. 

9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을 향한 모독적인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어 10월2일에는 “방심위- 피해자 본인신청이 있는 경우에만”이라는 메모가 나온다.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성 게시물에 대해 본인이 직접 신청을 하지 않는 한 게시물 삭제를 할 수 없다는 점을 알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종합하면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을 다룬 부정적 게시글에 대한 대응을 시작하면서 방통심의위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고,  심의규정 개정까지 검토했다는 퍼즐이 맞춰진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통신심의 규정을 개정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은 당시부터 나왔다.

규정 신설 후 1년도 안 돼 이를 만든 기관이 개정을 추진하는 점부터 이례적이었다. 명예훼손 글에 대해 타인이 대신 심의에 나서면 가장 많은 이익을 보는 집단은 권력자였다. 방통심의위가 당사자 신고 없이 인터넷 게시글의 문제를 판단해 삭제한다는 것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무리수이기도 했다. 시민사회와 야당의 거센 반발로 심의규정 개정은 우여곡절 끝에 ‘공인을 제외한다’는 단서조항을 붙여 2015년 12월 통과됐다.

당시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과 방통심의위 사무처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자를 위한 심의규정 개정이 아니라는 입장을 여러차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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