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한국의 국정교과서 비판 기사를 쓴 외신 기자에게까지 외교부 재외 공관을 동원해 사실을 왜곡하는 여론전을 펼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주재 총영사관에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하는 보수단체 관제 성명과 시위를 지원한 정황도 드러났다.

12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015년 12월3일 주오스트리아대사관이 외교부를 비롯해 교육부 장관 등에게 전달한 ‘주재국 언론인 면담(올바른 역사교과서 홍보)’ 공문을 입수해 공개했다.

공문 내용을 보면 대사관 담당 참사관은 오스트리아 주요 일간지인 ‘디프레세’(Die Presse)에 “독재 세탁 : 박 대통령 입맛에 맞춘 역사 수업”이라는 국정교과서 비판 기사를 쓴 논설실장을 12월2일 오찬에 초청해 한국의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입장을 설명했다.

지난 2015년 12월3일 주오스트리아대사관이 외교부를 비롯해 교육부 장관 등에게 전달한  ‘주재국 언론인 면담(올바른 역사교과서 홍보)’ 공문. 사진=박경미 의원실 제공.
지난 2015년 12월3일 주오스트리아대사관이 외교부를 비롯해 교육부 장관 등에게 전달한 ‘주재국 언론인 면담(올바른 역사교과서 홍보)’ 공문. 사진=박경미 의원실 제공.
그런데 이 참사관은 디프레세 논설실장에게 기존 (검정) 역사교과서들이 북한과 마르크시즘(Marxism)을 미화하고 저자의 개인적이고 편향된 역사관이 반영됐다고 주장하면서, 국정 역사교과서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객관적이고 공정한 사실로 저술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전달했다.

이 참사관은 “기존 교과서들은 민주적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아 저자들의 개인적이고 편향된 역사관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며 “우리 대통령님은 역사 왜곡이나 미화는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면담 결과에 대해 주오스트리아대사관은 외교부 등에 “디프레세 논설실장은 ‘올바른 역사교과서’에 대해 납득하는 태도를 보였다”며 “특히 올바른 역사교과서 저술에 있어서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투명하게 진행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교과서를 만들 것이라는 설명에 대해서는 공감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대사관은 또 “역사교과서 정책에 대한 해외 홍보에 있어서 민주적 절차 및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와의 차이점을 부각하는 것이 많은 설득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는 ‘올바른 역사교과서’ 정책 관련 당지 언론 보도를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각종 계기마다 이 정책의 당위성과 필요성에 대해 적극 설명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주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이 2015년 12월24일 작성한 ‘북가주 한국전 참전단체 역사교과서 국정화 지지 성명서 발표’ 공문에는 12월22일 한 식당에서 총영사와 보훈단체 회원들의 면담 결과와 함께 이날 이들 단체가 발표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지지 성명서까지 첨부돼 있다.

총영사는 외교부 장관 등에게 보훈단체와 주요 면담 내용에 대해 “젊은이들의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양하기 위해 역사교육의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며 “당일 오찬에 참석한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미북서부지회, 대한민국 6·25 참전 국가유공자 미주총연합회, 해병대 전우회 북가주 지회, 월남전 참전회 북가주지회 등 5개 참전용사 단체는 공동명의로 우리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지지 성명서를 발표했다”고 보고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 국민의 반대 목소리가 거셌던 지난 2015년 10월15일 교육부가 전국단위 일간지에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의견광고를 집행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 국민의 반대 목소리가 거셌던 지난 2015년 10월15일 교육부가 전국단위 일간지에 낸 의견광고.
또 같은 해 12월8일 주로스앤젤레스총영사관이 외교부에 보낸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당관 앞 시위’ 공문에는 12월4일 공관 앞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위가 열렸는데 이에 앞서 보수단체(자유대한민국지키기 국민운동본부 미서부지회 등)가 장소를 선점해 맞대응을 했다고 나와 있다.

공문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부터 영사관 정문 앞에서 민족통신, LA시국회의 등 동포 약 25명이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에 보수단체 회원 약 20명이 30분 전에 정문 앞을 선점해 맞불집회를 하면서 시위자들이 구호를 외칠 때 애국가 제창 등을 하며 대치했다.

이에 대해 박경미 의원은 “재외 공관까지 나서서 관제 성명서와 시위를 지시한 정황이 포착된 것”이라며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위가 열리기 30분 전 이미 장소를 선점해 맞불시위를 했다는 것은 공관 측의 관제 데모 정황이 있다고 충분히 의심을 살 만하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이 또 2015년 12월15일자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 관련 대통령 지시사항에 대한 교육부 공문도 공개했는데, 이에 따르면 ‘대통령 보고 여부’는 2015년 5월부터 12월까지 ‘청와대 교문수석실 서면보고(수시)’, 2015년 10월5일부터 11월 6일까지 ‘청와대 교문수석실 주재 일일회의’로 기재돼 있다.

박 의원은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발표한 것이 10월12일이었고 국정화 비밀TF 운영이 시작된 것은 방침이 발표되기도 전인 10월5일부터였는데, 그때부터 청와대 일일보고가 시작됐다는 점을 뒷받침한다”며 “2015년 10월28일 국회 교문위에서 당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의원들의 질의에 ‘청와대 일일상황 점검 회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는데,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이어 “박근혜 정부가 국정 역사교과서의 추진과 홍보를 위해 비상식적인 선까지 동원하며 전방위적으로 뛰었다는 것이 교육부 공문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며 “새로 출범한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이번에 제기된 내용을 면밀히 조사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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