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최종 결정을 코앞에 두고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생회가 돌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전문가의견을 경청하지 않은 독단적 결정이라고 비난하고 나서 논란을 낳고 있다.

특히 이들이 주장하는 논리가 3개월 전 원자력학계를 중심으로 한 과학기술계 교수들 주장과 거의 판박이어서 서울대 공대 학생들이 원전 이해관계자들을 일방적으로 두둔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서울대 공대 학생회는 지난 10일 운영위원회를 열어 문재인 정부의 독단적인 탈원전 정책 추진과정에 대한 공과대학 학생회 입장서를 가결하고, 앞서 지난달 29일엔 ‘탈원전 정책의 반지성적인 추진 과정을 규탄한다’는 서울공대 학생 대표자회의의 입장서를 가결했다고 밝혔다.

서울대 공대 학생회는 입장서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 이후 몇 개월 새 많은 탈원전 정책들이 급작스럽게 추진되고 있다면서 “이 과정에서 관련 분야 연구에 종사해 온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는 배제되었으며, 50년을 이어 온 대한민국의 원자력 산업은 고사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현 정부의 정책 결정은 이미 결정된 ‘탈원전’ 기조 아래에서 전문가의 의견이 배제된 채 진행되고 있다”며 “소통을 중시한다는 정부는 정작 관련 분야 전문가인 과학기술계로부터는 귀를 닫은 채 정책 결정을 빠르게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서울 공대 학생회는 “우리 예비 공학도들은 국가의 미래와 직결된 에너지 정책이 전문가의 의견 없이 졸속으로 결정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탈원전 추진이 산업과 학문을 위협한다고도 했다. 서울 공대 학생회는 “정부의 급작스러운 탈원전 정책 추진은 관련 산업과 그 기반이 되는 학문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며 원자로 제염‧해체 예산이 증액된 반면, 원자로 관련 예산은 삭감됐다는 것을 들었다. 특히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의 2017년 후기 대학원생 모집에서 5명을 모집하는 박사과정에 1명만이, 37명을 모집하는 석·박사통합과정에 11명만이 지원했다고 이들은 전했다. 서울 공대 학생회는 “50년에 걸친 노력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을 이룩한 원자력 산업계와 학계이지만, 정부의 독단적인 정책 추진으로 인해 쌓아왔던 탑이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며 “문재인 정부의 독단적인 탈원전 정책 추진과정을 규탄하며, 과학기술계의 의견을 경청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사진=연합뉴스
▲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사진=연합뉴스
서울 공대 학생 대표자회의는 입장서에 “우리는 학문적 양심을 지니고 현실과 타협하기를 거부하기에 두렵다”며 “정권에 따라 학문의 필요성 자체가 도전받고 산업의 흥망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에서 참된 과학자와 공학자가 설 수 있는 곳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이런 학생들의 주장을 두둔하는 사설을 12일자에 실었다. 중앙은 “원전 종사자 중 관련 전공은 10%뿐이고 나머지는 기계·화학·재료·물리·제어·컴퓨터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한 공학도들이다. 학생들 주장대로 탈원전이 원자공학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라며 “문 대통령은 학생들의 외침을 흘려듣지 말기 바란다. 지도자의 안목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서울대 공대 학생회의 이런 ‘외침’의 내용과 성격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원전업계의 이해관계자로 볼 수 있는 서울대 공대생들까지 나선 것에 대해 시선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서울 공대를 나온 ‘선배’ 격의 일부 인사나 관련 분야 전문가도 서울 공대 학생회 주장을 반박했다. 서울대 공과대 전자공학과 81학번이었다는 김재삼씨(반도체분야 종사 회사원)는 공대생들의 주장을 보고 11일 자신(필명 김석진)의 페이스북에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후배들이 낸 성명서이지만 반박하지 않을 수 없다”며 반론을 폈다.

김씨는 “탈핵과 온난화가스 저감은 인류 보편의 길이자 기술발전의 방향이며 에너지의 분산화이자 민주화의 길”이라며 “미국, 유럽, 중국 등 많은 나라가 그 길을 가고 있다. 이를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상징인 서울대 공대가 반대의 길로 간다는 것은 그들이 학자적 양심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김씨는 “원전과 석탄발전은 좋은 발전원이 아니다”며 “부하 조정이 힘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원전은 부하조정이 불가능하고 한번 고장나면 대량의 전기 발전이 손실되고 복구하는데 오래 걸린다”고 강조했다.

김재삼씨는 11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 원자로에 대한 근본적인 안전보장이 안되는데 전문가들은 이를 안전하게 할 방법과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며 “더구나 핵폐기물이 적어도 10만년 이상을 보관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답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뿐만 아니라 서울인근의 전력 사용량이 가장 많으니 그렇게 계속 원전을 짓고 싶다면 이쪽으로 옮길 자세도 돼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김씨는 정부가 과학기술계와 소통하지 않는다는 서울 공대생 주장에 대해 “공론화위원회를 만든 것이 소통의 방법”이라며 “그리고 소통은 대중들과 더 해야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씨는 “이미 정부는 공약으로 탈핵을 하겠다고 공약해서 투표로 사실상 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공론화 과정을 거칠 필요없이 결정을 하면 된다”며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 지금처럼 밥그릇에 걸려있는 사람들의 힘이 세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원전이 안전하고 값싸고 아무 문제가 없었다면 원전을 없애자는 공론이 나왔겠느냐”고 반문했다.

▲ 서울대 공대 학생회 이미지. 사진=서울 공대 학생회 페이스북
▲ 서울대 공대 학생회 이미지. 사진=서울 공대 학생회 페이스북
전문가 의견을 배제했다는 주장에 대해 김씨는 “전문가라는 것은 우월한 지위에서 담론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라며 “그렇다면 그들은 적어도 원전기술의 안전성과 폐기물 처리 방안에 대해 설득이 돼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설명이 안되니 반대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탈원전 정책으로 관련 산업과 학문에 위협을 주고 있다는 서울 공대생 주장에 대해 김재삼씨는 “산업에는 늘 사양산업이 있고, 새 산업이 나온다”며 “새로운 전력기술이 나오면 원전기술 없어지는 것이고, 그 학문도 사양학문이 되는 것인데,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밥벌이 논리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원자핵공학과를 나온 학생이라면 기계, 기술 쪽도 다 습득했기 때문에 원자력발전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쓸 곳이 많다. 배운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학생이라면 보편적인 논리로 주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탈원전 정책에 타협할 수 없다는 서울 공대 학생회 주장에 대해 김씨는 “서울공대 선배로서 부끄러운 일”이라며 “서울공대 생 중 원자력 공학과 비중이 10분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며, 이 성명을 낸 학생 대다수는 비전문가이고, 원자핵공학과 학생도 공부중인 학생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마디로 이 성명은 전문가의 성명이 아니다”라며 “자신이 전문가가 아니면 시민적 관점에서 성명을 내야 한다. 전문성을 갖고 말하려면 원전 기술이 안전한지 여부, 핵연료 폐기물 처리 방안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 얘기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전문가도 아니면서 전문가 관점에서 주장했다”며 “결과적으로 이들의 밥그릇을 두둔하는 주장을 서울대 공대생이 한 것이 돼 버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서울 공과대학 원자핵공학과 83학번 출신인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도 이날 저녁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서울 공대생 주장을 반박했다.

박종운 교수는 “공대생이 이런 발표를 한 것은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누구든지 그런 주장을 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전문성이 떨어진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입장에서 얘기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과학기술계를 배제했다는 서울 공대 학생회 주장에 대해 “어디까지를 과학기술계라고 해야 하느냐. 그리고 전문가가 하는 말이면 다 옳다고 볼 수 있느냐”며 “전문가들끼리도 말이 갈리니 객관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한 현 정부에서는 전문가나 과학기술계를 배제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공론화 과정에서 원전업계와 학계, 연구계, 산업계가 다 들어와 있고, 신고리 5,6호기 건설재개 주장을 넘어 탈원전 반대 주장까지 펴고 있다”고 반박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원자력 산업과 학문을 위협한다는 주장에 대해 박 교수는 “연구개발비 지원 가운데 개발비 지원의 경우 현실성이 있어야 한다”며 “고속로의 경우, 중국 러시아 외에 다른 나라도 연구비가 줄었다. 재처리의 경우 우리는 재처리 공장도 없고, 시설을 설치하기 쉬운 나라도 아니다. 더구나 1980년 대 이후 고속로를 계속 연구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감액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박 교수는 “원자력 학문을 위협한다고 하는데, 왜 꼭 원자력 분야로 핵발전소만 해야 한다고만 생각을 하느냐”며 “다른 분야에 대한 범용성이 떨어지니 그런지 모르지만, 범위를 넓혀야 한다. 반대로 그동안 원자력 발전에만 매달려 안주하며 지낸 것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도 있다. 그래도 변화할 여지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원자핵공학 박사과정 응시자가 저조하다는 주장에 대해 박 교수는 “그런 주장을 이해는 한다”면서도 “하지만 정부 정책이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킬 수 없고, 학계도 마찬가지다. 이 분야와 학문을 위해 다수의 더 큰 피해를 감수하고 원전을 다시 다 지어야 한다는 것이냐. 탈원전이라고 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그 속도 역시 빠르지 않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서울 공대 학생회 성명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적어도 서울대 공대생이 성명을 내는 것이라면 신고리 부지에 많은 사람이 사는데 너무 많은 원전을 지어 우려를 하고 있고, 반대하는 목소리도 많은데 이런 목소리는 반영하지 않고, 학문과 산업의 미래만 봤다는데 있다”며 “부산과 울산 지역에서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차라리 서울 수도권으로 이전하다고 하든지, 이런 점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정권에 따라 학문의 필요성이 도전 받고 산업의 흥망이 좌지우지 되는 상황에서 참된 과학자와 공학자가 설 수 있는 곳은 없다’는 서울 공대 학생 대표자회의 주장에 대해 박 교수는 “핀트를 전혀 잘못 짚은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원자력 정책이 바뀐 것은 세계적으로 중대사고가 났을 때 꺾인 것이고, 우리나라의 경우 정권에 따라 영향을 받은 것은 없다”며 “쓰리마일과 체르노빌 후쿠시마 사고가 났을 때 전세계적으로 꺾인 것이다. 한국은 이번에야 바뀌게 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탈핵팀 처장은 “원자력계는 어른들부터 아이들까지 기업부터 학계, 학생들, 노조, 언론사와 기자들까지 자성과 성찰 하나 없이 이익에 눈이 멀게 되는 걸까요”라며 “자신의 이익보다 사회의 정의와 공익, 미래지향적인 집단이어야 할 학생이 이런 것은 어른들의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 서울대 공대 학생회 입장서. 사진=서울대 공대 학생회 페이스북
▲ 서울대 공대 학생회 입장서. 사진=서울대 공대 학생회 페이스북
이에 대해 이번 성명을 낸 서울대 공과대 학생회장인 홍진우(화학생물공학부) 학생은 탈원전 정책 결정과정에서 전문가 의견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대응을 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홍진우 서울 공대 학생회장은 12일 오전 미디어오늘과 전화인터뷰에서 이번 성명을 낸 배경에 대해 “정부의 탈원전 추진 과정에서 전문가가 배제된다던지 과학기술계 의견을 청취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그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보고 글(성명)을 작성하게 됐다”고 밝혔다.

홍 회장은 ‘이미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해서 토론하고 시민참여단에 설명하고 있지 않느냐’는 반론에 대해 “이번 입장서는 신고리 5,6호기 입장서가 아니다”라며 “탈원전 정책은 이미 만들어졌고, 추진이 되고 있지 않느냐. 이 과정에서 과연 전문가의 의견이 들어갔느냐. 이건 확실하게 아니라고 할 수 있다”고 재반박했다. 홍 회장은 “굉장히 오래 동안 숙고 분석해야 하는 정책임에도, 국가적 차원의 숙고와 토의없이 한순간에 정책이 결정된 과정이 잘못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자력발전소의 안전문제와 사용후 핵연료, 폐기물 처리 방안이 있는지에 전문가도 답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홍 회장은 “노코멘트하겠다”고 답했다. 또한 전공을 하는 학생이라면 오히려 이런 의문점에 대한 우려와 반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서도 홍 회장은 “노코멘트”라고 말했다.

‘산업과 학문을 위협한다’는 주장이 결국 자기 밥그릇을 건드리지 말라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홍 회장은 “다른 분들이 그렇게 해석하는 것에 속상하다”며 “저희 입장서의 핵심 내용은 정책 결정과정에서 전문가 의견을 경청하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과학기술과 관련된 정책결정에 과학기술계 의견 들어보는 것은 당연하다”며 “그런데 그렇게 해석되는 게 속상하다”고 말했다.

▲ 서울대 공대 학생 대표자회의 입장서. 사진=서울대 공대 학생회 페이스북
▲ 서울대 공대 학생 대표자회의 입장서. 사진=서울대 공대 학생회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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