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을 공영방송답게! 공영방송 조합원들이 파업을 하는 이유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공영방송이 정권의 실정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했다. 그 결과 두 정권은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부정과 무능의 열차로 폭주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헬조선’이 됐다. 시민들이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을 탄핵한 이유다. 그리고 시민들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시민들이 대통령 탄핵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할까? 시민들은 분명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적폐를 청산하고 평등하고 공정한 새로운 민주국가를 건설할 것을 요구했다.

▲ 지난해 12월3일 제6차 박근혜정부 퇴진을 바라는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청와대 사랑채 인근 경찰차벽 최전선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해 12월3일 제6차 박근혜정부 퇴진을 바라는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청와대 사랑채 인근 경찰차벽 최전선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홍보 방송으로 전락한 공영방송, 신뢰도·영향력·경쟁력 모두 잃었다

그 적폐의 중심에 언론이 있었다. 아니 지금도 공영방송을 비롯하여 많은 언론들이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 공영방송의 적폐부터 청산하고 정상화하자는 것이다. 국정원 개혁TF 활동 결과로 국정원이 공영방송에서 정부에 비판 발언을 하는 인사들을 퇴출시키도록 했고 이에 공영방송들이 호응했음이 밝혀졌다. 공영방송을 홍보방송으로 만들려 했던 것이다. 

미디어오늘이 보도한 ‘김인규 임원회의록’에 보면 KBS가 국정원의 요구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혹간 있었던 KBS의 정부 비판 프로그램에 보인 알레르기 반응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사실 공영방송이 장악된 근거는 당연히 국정원 문건이나 ‘김인규 임원회의록’만이 아니다. 정권에 유리하도록 KBS를 활용하라는 이병기 실장의 지시가 담긴 청와대 문건도 그중 하나다. 근거는 차고 넘치고 앞으로도 계속 더 드러날 것이다. 그러니 공영방송 정상화를 공영방송 장악이라 오도하는 자유한국당이나 적폐세력들의 억지에 일일이 대응하거나 민감해할 필요는 없다. 시민들은 다 안다.

언론만의 문제는 아닐지 모르지만 언론이 제구실을 했다면 두 정권이 그렇게 폭주를 막았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공영방송의 정상화는 시대적 과제다. 문제는 공영방송은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는 동안 신뢰도, 영향력 모두 추락했다는 점이다. 새로운 매체의 변화에 대응할 엄두를 내기는커녕 있던 자산인 신뢰도도 까먹은 것이다. 경쟁력이 약해졌다. 수용자들은 지상파에서 유료방송으로 그리고 모바일로 이동하고 있다. 공영방송 파업 초기에 ‘공영방송 정상화가 중요해?’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왔던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공영방송 정상화는 급속히 진행되어야 할 시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공영방송이 최소한의 잠재력까지 상실하기 전에 정상화를 진행하고, 변화하는 환경에 적절히 대응하도록 해야만 한다. 공영방송 구성원들이 파업이라는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다.

▲ 지난 9월4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진행된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의 총파업 결의대회에 참석한 조합원들이 KBS를 다시 국민의 방송으로 돌려놓겠다는 문구를 새긴 손수건을 펼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 9월4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진행된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의 총파업 결의대회에 참석한 조합원들이 KBS를 다시 국민의 방송으로 돌려놓겠다는 문구를 새긴 손수건을 펼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경영진 교체’보다 더 중요한 건 ‘편성 자율성’ 확보

현재 공영방송의 파업은 적폐의 중심들이 물러나라는 것이다. 이들은 물러나야만 한다. 그렇다고 공영방송 정상화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상화가 지향하는 바를 명확히 해야 한다. 파업을 지지하는 돌마고(돌아와라 마봉춘 고봉순) 집회 현장에서 ‘공영방송 구성원들 편하라고’가 아니라 ‘시민들이 살자’고 파업을 지지하는 것이라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답해야만 한다.

물론 정상화의 목표는 지난 적폐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다. 공영방송 정상화는 적폐 경영진을 퇴진시키고 민주적인 경영진을 선임하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어떤 경영진이 선임되더라도 언론 활동에 부당하게 개입할 길을 막아야 한다. 편성 자율성(내적 자유)을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권이 앞으로도 민주적이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있을 방송법 개정 논의가 경영진 선임방식(지배구조)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 편성권은 취재보도제작편성 종사자의 집단적 권리로서 보장받아야 한다. 소수의 경영진이나 그 경영진이 임명한 간부진들이 결정하는 권한이어서는 안 된다. 이들은 결국 외부의 압력에 굴복할 가능성이 높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편성권은 현장을 잘 알고 진실에 눈감기 어려운 일선 제작 종사자들의 집단적 권리로서 부당한 지시에 저항할 수 있는 권리여야 한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MBC 사옥과 여의도에 위치한 KBS 사옥.
▲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MBC 사옥과 여의도에 위치한 KBS 사옥.
시간은 공영방송 편이 아니다

그러나 편성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도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우리는 지난 정권 시절 당연히 언론이 했어야 할 부당한 권력 비판이나 사회 제 주체들의 다양한 목소리 전달에 실패했다. 정권이 공영방송 장악이나 종편 도입으로 그렇잖아도 기울어져 있던 언론 현장을 더욱 현격하게 기울어지게 한 결과다. 그런 시절이 9년이었다. 그리고 실질적인 피해자는 시민들이었다. 그러니 시민들이 권력에 장악된 공영방송에서 고통을 겪었던 언론인들의 현실에 공감하면서도 정상화를 주장하는 언론인들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9년 동안 무뎌진 비판의 칼을 어떻게 다듬을지, 그리고 그 칼을 어디로 어떻게 휘두를지 궁금할 것이다.

공영방송의 구성원들은 공영방송 정상화가 시민들의 삶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정상화 이후 빠른 시간 내에 이를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 지금 매체 환경의 변화를 고려하면 시간은 지상파(공영방송)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의 신뢰가 우선되어야 공영방송이 새로운 플랫폼으로 진출하여 또다시 공익에 기여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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